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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억 빌려 투자한 골프장 좌초 조짐에 경영권 매각도 무산 위기 직면 성장 한계 명확, 실적 악화도 발목

카카오 계열 골프 업체 카카오VX의 경영권 매각이 또다시 좌초 위기에 직면했다. 카카오 측이 우선협상대상자인 뮤렉스파트너스에 3월 말까지 투자확약서(LOC)를 제출하라는 최종 기한을 제시했지만, 뮤렉스가 이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영권 매각이 표류되면서 골프장에 이미 600억원을 투자한 카카오VX는 난처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 골프장 준공 기한이 임박했음에도 자금 부족으로 공사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어 자칫 투자금 전액이 날아갈 위기다.
카카오VX 매각, 또 불발 위기
11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뮤렉스는 지난달 말로 예정됐던 LOC 제출 기한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뮤렉스와 손잡고 카카오VX를 인수하려던 KX그룹이 발을 뺀 것이 타격이 컸다. 배타적 우협 기한은 이미 지난해 8월 말 종료됐으나, 카카오VX는 뮤렉스가 자금 모집에 애를 먹자 기한을 계속 연장해 줬다.
업계에서는 카카오VX 최대주주(지분율 65.19%)인 카카오게임즈가 뮤렉스에 이례적으로 긴 우협 기간을 부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카카오VX 입장에서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중견 사모펀드(PEF) A사는 코스닥 상장사와 손잡고 기업가치 2,500억원에 카카오VX 인수를 추진한 적이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A사에도 우협 자격을 주면서 “다만 뮤렉스가 우선이니 기다리라”며 대기하도록 했고, 결국 A사의 인수 추진은 물거품이 됐다.
뮤렉스는 당초 카카오게임즈 지분 대부분과 원아시아파트너스(17.2%), 큐캐피탈(9.3%), 스톤브릿지캐피탈(3.8%), KB증권(1.8%) 등 재무적투자자(FI) 지분 일부를 포함해 50% 가량의 경영권 지분 인수를 추진했다. 뮤렉스는 과거 야놀자와 함께 골프장 ERP(전사자원관리시스템) 업체 그린잇을 인수한 경험이 있다.
뮤렉스는 카카오VX의 전체 기업가치를 2,100억원으로 봤다. 카카오게임즈가 300억~400억원을 재출자해 지분 10~15%를 다시 확보하고, 나머지 1,700억~1,800억원 중 200억원을 KX그룹이, 100억원을 더시에나그룹이 출자할 계획이었다. KX그룹은 경기 여주 신라CC와 인천 영종도 클럽72, 경기 파주CC를 보유한 회사다.
PF 조달 실패로 멈춘 골프장 개발, 600억 회수 ‘적색등’
KX그룹이 빠지기로 한 결정적 이유는 현재 카카오VX가 개발 중인 골프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카오VX는 2021년 시행사 가승개발 지분을 인수하며 경기도 기흥에 신갈CC 골프장을 개발하려 했으나, 부지 소유주인 전주최씨 종중과의 협상 지연과 FI들의 반대로 인해 프로젝트파이낸싱(PF) 조달에 실패하면서 사업이 지연되고 있다.
가승개발은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리조트 운영 업체 승산과 5대 5로 출자해 설립한 회사였지만, 이후 최대주주가 카카오VX로 변경됐다. 현재 가승개발 지분은 카카오VX와 승산이 각각 55%, 45%씩 보유 중이다. 이후 승산은 지분을 시행사 더블트리에 매각하려 했는데, 종중의 동의를 받지 못해 등기 이전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즉 종중과의 합의가 미뤄지면서 PF를 언제 받을지 기약도 할 수 없게 되자, 이런 사실을 뒤늦게 인지한 KX그룹이 200억원 출자를 철회한 것이다.
해당 골프장 준공 기한은 올해 7월로 예정돼 있다. 카카오VX는 이미 카카오게임즈로부터 600억원을 차입해 신갈CC에 투입한 상태여서, 이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기한을 연장해야만 한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골프장 건설마저 좌초된다면 시장에서 카카오VX의 기업가치는 지금보다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업가치 5,800억→1,500억, ‘디밸류에이션’ 쇼크
카카오VX의 성장 한계도 매각을 가로막는 요소다. 카카오VX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골프 붐이 일면서 카카오의 알짜 자회사로 자리매김했다. 2021년 카카오VX의 연결기준 매출은 1,159억원으로 전년 대비 102.5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도 2억원에서 78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2022년에도 매출 1,777억원, 영업이익 163억원으로 성장세를 이어갔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엔데믹으로 전환돼 스크린골프 업황이 크게 악화되면서 2023년 매출은 1,471억원까지 떨어졌고, 이 기간 영업이익도 77억원 적자전환했다. 2024년 역시 별도기준 매출 1,242억원, 순손실 184억원을 기록했다. 2023년과 비교해 매출은 15% 하락했고 순손실은 69%가량 확대됐다. 매각 초기부터 인수에 적극적이었던 뮤렉스가 펀딩 단계에서 애를 먹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주요 기관투자가들이 카카오VX의 성장성에 의구심을 보이며 출자에 선을 그었던 것이다. 이들은 골프 업황이 이전보다 좋지 않고 인수 뒤 카카오그룹 그늘에서 벗어나면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봤다.
실적이 악화되면서 카카오VX의 기업가치도 떨어지고 있다. 2021년 8월 카카오VX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 방식으로 스톤브릿지캐피탈로부터 200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스톤브릿지는 카카오VX의 기업가치를 5,798억원으로 평가했다. 당시 골프업계가 호황이었던 데다 실적도 상승세를 보인 만큼 기업가치를 높게 인정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2023년부터 실적이 악화되고 업황도 좋지 않았던 만큼 당시의 기업가치를 유지하기 힘들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IB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카카오VX 인수 참여 제안을 받았던 자산운용사 등 FI들은 현재 몸값을 1,500억원 수준으로 보고 있다.
이에 FI들의 엑시트(투자금 회수)도 멀어지게 됐다. 투자자들은 2027년 기업공개(IPO)를 전제로 투자금을 베팅했지만 실적 악화로 인해 IPO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가장 최근에 투자한 원아시아파트너스는 2021년 카카오VX 기업가치를 약 5,800억원으로 보고 1,0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