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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이노베이션, 최대 5조 희망 자산 매각보다 일시적 유동성 차입 형태 TRS 제안 안 해, RCPS·PRS 등 거론

SK이노베이션의 5조원 규모 액화천연가스(LNG) 유동화 딜을 따내려는 기관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증권사 중에서는 메리츠증권이 협상에 가장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으며,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브룩필드도 조건을 놓고 SK 측과 줄다리기를 계속하고 있다. 메리츠권의 경우 알려진 바와 달리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을 제안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메리츠가 그 대신 상환전환우선주(RCPS)나 주가수익스와프(PRS) 방식을 제시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SK 발전소 유동화, 메리츠증권 유력
2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SK이노베이션은 LNG발전 사업에 대한 자산 유동화를 추진하며 재무적투자자(FI)들과 협의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의 LNG 유동화는 광양·파주·여주·하남·위례발전소 등 민간 발전소 5곳과 LNG 터미널 등 인프라 자산을 기반으로 현금을 조달하는 걸 골자로 한다. SK이노베이션은 이 자산들을 유동화해 최대 5조원의 자금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증권사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곳은 메리츠다. 이번 유동화 딜에 정통한 고위 관계자는 “메리츠가 5조원을 지원하기 위해 SK와 협상 중인 것이 맞다”며 “증권사는 LP(출자자) 돈을 받아서 투자하는 PEF와 비교해 더 낮은 금리를 제시할 수 있어 상대적으로 유리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만 TRS 방식을 제안하진 않은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TRS는 기초자산 보유로 인해 발생하는 이자, 자본수익 등 총수익을 대가로 약정이자를 수취하는 거래를 뜻한다. 투자은행(IB)업계 한 관계자도 “TRS는 회계상 부채로 잡아야 하기 때문에 빚을 줄여야 하는 SK이노베이션이 택할 수 없는 옵션”이라며 “TRS보다는 회계상 부채가 아닌 PRS 방식이 더 나은 선택지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외국계 PE들, 까다로운 조건 제시
업계에서는 메리츠가 RCPS로 투자하는 방식을 제안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이는 과거 SK E&S가 KKR로부터 투자받았던 방식이기도 하다. SK E&S는 2021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KKR로부터 총 3조1,350억원 규모의 RCPS 투자를 유치했다. RCPS는 SK E&S가 5년 이후 상환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구조로 설계돼 회계상 자본으로 분류됐다.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은 이번에도 RCPS로 투자를 유치하면서 일정 수익률을 보장해 주고, 상환을 못 할 시 사업 부문을 현물로 떼어 주겠다는 조건을 내걸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메리츠가 이번 딜을 따낸다는 보장은 없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5조원이나 되는 금액을 증권사 홀로 떠안을 수는 없으니 재매각을 해야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아직 투자 의사를 철회하지 않고 SK와의 협상 테이블에 남아 있는 KKR, 브룩필드의 존재도 메리츠의 딜 성사를 확신할 수 없게 만드는 요인이다. 업계 관계자는 “두 PEF 모두 여전히 의지가 강하고, 인프라 펀드를 활용하면 기대수익률도 상대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에 여전히 승산이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변수는 거래 조건이다. 업계 전언에 따르면 KKR과 브룩필드 등이 외국계 PEF 운용사 특성상 거래 조건을 까다롭게 요구해 SK이노베이션 측이 다소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질적으로 이번 거래는 자산 매각보다는 일정 기간 유동성을 확보하기 위한 ‘대출성’ 거래에 가깝다. 구조상 차입에 가까운 성격을 띠는 만큼, 조달 금리의 수준이 거래 성패를 가를 핵심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매각가에 대한 이견 차이도 상당하다. SK이노베이션은 5조원을 조달하길 바라고 있으나 KKR과 브룩필드는 3조원 대를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KKR·브룩필드, DIG에어가스에도 군침
업계는 만약 이번 유동화 딜에서 SK이노베이션이 메리츠를 선택할 경우 KKR과 브룩필드는 다시 DIG에어가스 인수전에 집중할 것으로 보고 있다. DIG에어가스는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인프라성 매물이라는 점에서 국내 기업 투자에 관심이 높은 해외 대형 PEF 운용사들이 연달아 출사표를 던진 상태다. 예비 후보 가운데 KKR, 브룩필드, 아이스퀘어드캐피탈은 지난해 매각이 무산된 에어프로덕츠코리아 예비입찰에도 참여하며 국내 인프라 매물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는 곳이다.
매각 대상은 최대주주인 맥쿼리자산운용이 보유한 지분 100%다. DIG에어가스는 지난 1979년 대성산업과 글로벌 산업용 가스 기업인 프랑스 에어리퀴드의 합작으로 설립됐으나 2017년 경영 환경 악화로 MBK파트너스가 1조8,000억원에 경영권을 사들였고, 2019년 맥쿼리자산운용이 2조5,000억원에 MBK로부터 경영권을 인수하며 최대주주가 됐다.
매각 측이 희망하는 기업 가치는 5조원 수준이다. DIG에어가스의 지난해 상각전영업이익(EBITDA) 추정치 2,500억원에 멀티플 20배를 적용한 가격이다. 멀티플 20배는 지난해 매각을 추진했던 산업용 가스 제조사 에어프로덕츠코리아의 예상 매각가 산출에도 적용된 배수다. 이를 기준으로 한 에어프로덕츠코리아 기업가치 역시 최대 5조원으로 전망됐다.
다만 DIG에어가스가 지난해 실제로 올린 EBITDA가 2,106억원으로 추정치를 밑돌면서 매각가가 4조원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산업용 특수가스는 장기 계약을 토대로 안정적인 실적을 기록하는 인프라성 매물로 분류되지만, 반도체·디스플레이·전기차 배터리 등 전방 산업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 업황 부진이 실적 악화로 이어질 수 있는 산업으로 꼽히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