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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경제 책사 스티븐 미란, 극단적 현실 무시에서 비롯된 ‘관세 만능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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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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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미란 CEA 위원장 발언 논란
브레튼우즈 체제에 갇힌 과거형 사고
시장 구조적 변화 반영 없이 이론 강요

최근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주도하는 인물로 스티븐 미란(Stephen Miran)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이 주목받고 있다. 과거 헤지펀드 전략가이자 재무부 고문으로 활동한 그는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타개할 유일한 방책으로 관세를 주창한 바 있다. 학계에서는 그의 발언이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현실 무시의 극단적 사례’로 기록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문제의 ‘미란 보고서’와 ‘트리핀 딜레마’

14일(이하 현지시각)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월가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이 ‘미란 보고서’에서 동력을 얻었다는 가설이 힘을 얻고 있다. 미란 위원장이 지난해 11월 발표한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재구성 사용자 가이드’를 일컫는 미란 보고서는 현재 미국이 트리핀 딜레마(Triffin’s Dilemma)의 한계에 직면해 있으며,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관세 전략이 필요하다는 아이디어를 담고 있다.

해당 보고서에서 미란 위원장은 트리핀 딜레마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미국의 쌍둥이 적자 문제를 설명한다. 트리핀 딜레마란 기축통화국이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해 무역적자를 감수해야 하는 구조적 모순을 의미한다. 기축 통화가 국가 간 거래에 많이 동원될수록 해당 통화 발행국의 적자가 쌓이고, 반대로 기축 통화 발행국이 무역 흑자를 보면 돈이 덜 풀려 국제 결제의 흐름이 경직되는 식이다. 미국이 글로벌 금융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과도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를 감수하고 있다는 게 미란 위원장의 주장이다. ​

이러한 관점에서 그는 관세를 전략적 도구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미란 위원장은 관세가 단순히 보호무역 수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 만연한 불균형을 시정하고, 외국의 통화 가치를 조정하며, 미국의 제조업을 부흥시킬 유일무이한 수단이라고 본다. 나아가 높아진 관세율을 통해 새로운 수입 확장이라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라는 새로운 국제 통화 협정을 제시했다. 1985년 진행된 플라자 합의처럼 주요 교역국들과 협력해 달러 가치를 조정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려는 시도다.​ 미란 위원장은 “인위적으로 유로, 엔, 위안화 등을 대폭 절상시켜야 미국 쌍둥이 적자가 줄어들 것”이라며 “이를 위해 ‘제로 금리’의 100년 만기 미 국채를 강매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상대 국가들이 초장기 미 국채를 떠안기 위해 달러를 매입하면, 기축통화의 위상을 지킬 수 있다는 논리다.

최근 현지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도 미란 위원장은 관세 예찬론을 펼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 관세 발표 직후 글로벌 금융시장이 휘청인 것에 대해 “금융 시장이 과도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일축하며 “트럼프 대통령이 한 일은 미국 경제와 미국 노동자들에게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훌륭한 무역 거래를 만들고, 이러한 무역 거래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한 것”이라고 포장했다. 그러면서 “수십 개국이 우리와 대화를 원하며 무역 협정을 체결하고자 문을 두드리고 있다”며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했다.

소비자 부담 확대-경제 둔화 가능성↑

학계에서는 미란 위원장의 주장을 두고 경제학 원론 수준에서조차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거세다. 미국의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는 단순히 관세를 올린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란 지적이다. 특히 무역적자는 글로벌 공급망의 구조적 변화와 소비자 선호, 기업의 생산 거점 변화 등 복합적 요인으로 형성된 결과물인 만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게 학계의 주된 견해다.

게다가 미란 위원장이 관세 정책의 근거로 삼은 트리핀 딜레마 이론조차 작금의 경제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평이다. 트리핀 딜레마는 1960년대 브레튼우즈 체제에서 기축통화국의 무역적자 필연성을 설명하는 개념이었지만, 오늘날 글로벌 통화 시스템은 변동환율제 아래서 훨씬 복잡하게 작동하고 있다. 과거처럼 미국이 무조건 무역적자를 감수하면서 세계에 달러를 공급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심지어 최근 미국은 셰일가스 개발 등으로 에너지 수출을 늘리며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흐름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고율 관세 정책이 전통적 제조업을 겨냥했다는 점에서도 과거형 사고방식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글로벌 무역 환경이 갈수록 디지털화·서비스화 되는 만큼 관세 인상만으로 무역 수지를 개선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 경제의 큰 축으로 자리매김한 빅테크 기업의 사례를 보면, 수익의 대부분이 해외 법인과 지식재산권(IP)에서 발생해 관세 정책과의 연결성을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가장 큰 문제는 관세가 종국에는 소비자 부담 전가로 귀결된다는 점이다. 세금 부담이 커지면 수입 업체로선 판매가를 높일 수밖에 없고, 이는 물가 인상으로 이어진다. 미국 내 인플레이션 우려가 갈수록 짙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정책은 내수 위축과 경제 둔화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결국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중장기적으로 자국 경제의 경쟁력을 해치는 부메랑이 될 것이란 관측이다.

‘만능 이론’ 주창하며 경제 현실 외면

일각에서는 미란 위원장을 과거 한국에서 소득주도성장론을 주도하던 장하성 전 고려대학교 교수에 빗대기도 했다. 두 인물 모두 경제 구조의 복잡함은 미뤄둔 채, 한 가지 원리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관세 만능 카드로 쌍둥이 적자를 해결하겠다는 ‘미란식 처방’은 이론적 허술함을 넘어 현실 무시의 극단적 사례로 기록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평가다.

미란 위원장이 추진하는 마러라고 합의 구상안도 부정적 반응이 주를 이룬다. 주요 무역국들과 환율 재조정을 시도하겠다는 취지는 높이 사지만, 현재 글로벌 경제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시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하고 파편화돼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 주요 교역국들이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순순히 동의할지도 미지수다. 이미 미·중 갈등, 미·EU 무역 마찰 등 갈등 요소가 산적한 상황에서 환율 공동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는 현실성이 매우 떨어진다.

미란 위원장은 이런 비판의 목소리에도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고 있다. 과거 장 전 교수의 소득주도성장론이 임금 인상만으로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다는 단순한 가정에서 출발했다면, 미란 위원장의 관세·환율 정책은 미국 중심적 사고에 갇혀 글로벌 경제 현실을 외면하는 경향을 짙게 드러낸다. 두 사람 모두 나라 경제를 장기적으로 유지하고 운영하는 책임보다는 단기 성과와 정치적 입지 강화에 경제정책을 이용하는 모습이 닮아 있다는 비판이 거세지는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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