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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인플레이션 오류, 저소득층 피해 집중 물가 예측 실패, 계약·재고·임금 조정 비용 초래 예측 격차 줄이기 위한 교육·소통 실험 필요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2년 6월, 미국 가계는 향후 1년간 물가가 6.8% 오를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시기 연준이 1년 전에 제시한 전망치는 2.1%였다. 이 4.7%포인트의 괴리는 단순한 예측 오차가 아니라,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실질적인 손실로 이어졌다. 일반적인 후생비용 계산에 따르면, 기대와 실제 인플레이션 사이의 1%포인트 격차는 GDP의 0.013%에 해당하는 손실을 초래한다. 이는 왜곡된 계약, 재고 오배치, 임금 재협상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나타난다. 4.7% 괴리는 약 3,700억 달러(약 505조원)의 손실을 의미하는데, 이는 미국이 초중고(K-12) 교육에 한 해 지출하는 예산과 맞먹는 규모다. 문제는 물가 상승 자체가 아니라, 국민이 그 상승을 예측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중앙은행도 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기대를 움직이는 인식의 흐름
가계의 경제 전망은 다양하지만, 그 안에는 반복되는 흐름이 있다. 하나는 인플레이션을 부정적인 신호로 해석하는 경향이다. 공급망 병목, 실질소득 감소 같은 경험이 누적되면서, 물가가 오르면 경기와 고용도 함께 나빠질 것으로 보는 인식이 형성됐다. 다른 하나는 금리 인상을 경기 회복의 신호로 보지 않고, 오히려 비용과 불황의 전조로 받아들이는 흐름이다. 물가를 억제하려는 조치가 불안을 되레 키운 셈이다.
이 같은 인식 변화는 특정 시기에 국한되지 않는다. 2021년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의 병목, 2022년 우크라이나 침공, ECB의 금리 인상 등 주요 사건들이 기대 형성에 영향을 미치면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해석 틀이 뚜렷하게 변화했다. 기대는 단순한 수치가 아니다. 사람들의 해석을 거쳐 형성되며, 동일한 경제 지표도 인식에 따라 정책 수용도가 달라진다.

주: 시점(X축), 요인 점수(Y축)/수에즈 및 파나마 운하의 물류 차단, 우크라이나 침공, 금리 인상 시작, 인플레이션 정점 도달, 금리 인상 종료, 금리 인하 시작(좌측부터)
무너진 정책 신뢰
형성된 ‘기대의 오차’는 단순한 통계 문제가 아니다. 정보 접근성의 차이가 만든 정책의 사각지대이며, 그 부담은 저소득층일수록 더 크다. 위험을 피할 수단도, 장기 계획을 세울 시간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 총재에 따르면, 6%의 인플레이션 충격은 중간 소득 가계에 1년간 3,000달러(약 410만원)의 손실을 안겼다. 평균 두달치 식비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이런 피해를 사후에 복구하기보다, 애초에 기대 격차를 줄이는 편이 훨씬 비용 효율적이다.
2025년 현재 미국 가계의 단기 기대 인플레이션은 3.2%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연준 목표를 상회한다. 실물 물가는 안정세를 보이지만 대중의 불안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2024년 11월, 영란은행의 조사에서 정책 대응에 대한 순 만족도는 –1%를 기록했다.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불만족 응답이 만족 응답을 넘어선 것이다. 경제 지표보다 정책 신뢰의 회복이 더디다는 점을 보여준다.
유로존도 다르지 않다. 유럽중앙은행의 소비자 기대 조사(The euro-area Consumer Expectations Survey, CES)에 따르면, 실물 인플레이션은 둔화되고 있음에도 단기 기대치는 다시 3.1%까지 상승했다. 수치는 안정됐지만, 기대는 그렇지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기대의 높낮이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바탕으로 기대를 형성하고 있는지를 묻는 일이다.
숫자로는 안 보이는 손실
기대 오류가 남긴 손실은 통계에 드러나지 않지만, 그 규모는 작지 않다. 유로존의 경우, 2024년 기준으로 기대와 실제 인플레이션의 차이는 1%포인트에 불과했지만, 그로 인한 경제 손실은 약 1,200억 유로(약 1,931조원)에 이른다.
일상에서도 비용은 감지된다. 인플레이션 급등으로 대출 조건이 빠르게 바뀌면서, 미국의 모기지 견적 유효기간은 2019년 30일에서 2022년 12일로 단축됐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고용주는 실질임금 유지를 위해 빈번한 조정을 단행했고, 이로 인한 행정비용만 250억 달러(약 34조원)에 달한다. 기대 오류로 인한 사회적 비용은 일부 연방 프로그램 예산을 웃돈다.
기대를 ‘배우는’ 교육
이 같은 손실을 줄이는 해법 중 하나는 ‘기대 인식력’을 높이는 것이다. 기대 인플레이션 오류는 저소득층일수록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자산이 적고 대응 여력이 부족해 손실이 고스란히 현실화되기 때문이다. 해법은 추상적인 지표를 일상과 연결하는 교육에 있다. 고등학생은 실시간 물가 데이터를 바탕으로 장바구니 물가를 예상하고, 이를 실제 CPI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대학에서는 등록금과 임금이 물가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계산해 보는 방식으로 확장할 수 있다. 지역 언론이 예측 도구를 제공하면, 성인도 자연스럽게 참여할 수 있다. 2023년 댈러스 연준이 시행한 고등학생 대상 실험에서는 단 4주 만에 기대 인플레이션의 분산이 절반으로 줄었다. 이 프로그램을 전국으로 확대하더라도 초중고 예산의 0.1%도 들지 않는다. 수백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줄이기 위한 투자치고는 매우 적은 수준이다.
쌍방향 소통이 만든 변화
전망치를 단순히 통보하는 시대는 지났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다. BIS 분석에 따르면, 통화정책을 요약한 뉴스 기사는 가계 기대의 13% 정도만 영향을 줬지만, 중앙은행이 직접 제작한 짧은 영상 콘텐츠는 그 효과를 두 배 이상 높였다. 유럽중앙은행 조사에서도 인스타그램 콘텐츠를 본 사람일수록 더 정확한 기대치를 제시했지만, 해당 콘텐츠는 유로존 인구의 4분의 1밖에 도달하지 못했다.

주: 충격 이후 경과된 개월 수(X축), 기대 변화(Y축)/경제성장, 1년 후 인플레이션, 실업률, 예금 금리
이러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영란은행은 청년 포럼에서 쌍방향 예측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시민이 직접 물가 전망을 입력하고, 다양한 시나리오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 결과, 예측이 빗나갔음에도 정책 만족도는 절반 가까이 올랐다. 방향성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방증이다.
예측 실패보다 더 큰 실패
물가를 가르치는 일이 중앙은행의 역할이냐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기대를 방치한 대가는 더 크다. 정책 실패 이후의 긴급 대출, 가격 통제, 채무 조정 같은 조치는 교육보다 훨씬 큰 비용을 초래한다. 정치화 우려도 있지만, 해당 교육은 공개된 데이터와 수치 기반으로 설계돼 논란을 줄일 수 있다. 중앙은행도 예측을 자주 빗맞힌다. 2021년 연준의 경제 전망 요약(Summary of Economic Projections, SEP)은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하지만 중요한 건 정답이 아니라 과정이다. 연준은 2025년 ‘Forecast Derby’를 통해 시민 참여형 예측 대회를 시범으로 운영했고, 6개월 만에 기대 분산을 0.7%포인트 줄이는 성과를 냈다. 완벽한 예측보다 솔직한 소통이 더 효과적이었다.
기대 격차는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수백조원의 손실로 이어지는 구조적 비용이다. 피해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일부를 투자해 줄일 것인가. 교육은 비용이 아니라 수단이다. 이제 선택은 숫자가 말해주고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xpectation Literacy: The Missing Pillar of Monetary Stability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