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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측 주문 0건에 ‘당혹’
뇌관은 3.7조원 규모 PF 보증
PF 정리에도 유동성 회복 요원

롯데건설이 5%가 넘는 고금리를 제시하고도 회사채 1,100억원어치를 단 한 건도 팔지 못했다. 신용등급 한 단계 하향 조정이라는 변수가 있긴 했지만, 시장은 신용보다 우발채무 보증 구조와 현금흐름 리스크를 더 크게 보는 모양새다. 미분양 등 여러 요인으로 유동성 개선이 쉽지 않다는 진단이 주를 이루면서 시장에서는 롯데건설의 자력 회복 가능성에 대한 회의가 커지고 있다.
신용등급 통상적 강등 수준에도 충격 커
2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전날 진행한 공모채 수요예측에서 1,100억원 모집에 단 한 건의 기관수요자 매수 주문도 받지 못했다. 1년물, 1.5년물 등 비교적 짧은 만기에 고금리를 조건으로 내세웠지만, 시장 참여자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롯데건설은 1년물과 1.5년물에 각각 5.4~5.7%, 5.6~5.9%의 희망 금리 밴드를 제시했다.
이처럼 시장 반응이 싸늘한 배경으로는 신용등급 강등이 꼽힌다. 지난 18일 한국신용평가(한신평), 나이스신용평가(나신평), 한국기업평가(한기평) 등 3개 주요 신용평가사는 롯데건설의 무보증사채 등급을 기존 ‘A+/부정적’에서 ‘A/안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지난 2022년부터 확대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우발채무 부담이 해소되지 않고 있단 이유에서다. 한신평은 “롯데건설의 금융비용 확대와 PF 보증 및 미분양 현장 관련 손실 가능성 등 여러 요인이 영업실적 개선에 제약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번 사안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비록 롯데건설이 신용등급 강등을 겪긴 했지만 여전히 ‘투자적격’ 등급을 유지하고 있는 데다, 모회사인 롯데그룹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 규모를 고려하면 안정적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회사채 전량 미매각이라는 결과가 나온 것은 시장의 신뢰가 신용등급 자체가 아닌 ‘유동성 구조’ 전반에 대한 판단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의미한다는 해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 금투업계 관계자는 “같은 등급의 다른 기업들은 일정 수준의 수요를 확보하는 상황에서 롯데건설만이 전량 미매각된 것은 신용 리스크를 넘어 ‘신뢰 리스크’로 봐야 한다”고 짚으며 “투자자들로선 부동산 경기 위축에 따른 잠재 부실이 롯데건설의 재무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롯데건설은 최근 서울 서초에 위치한 본사 사옥 매각에 나서는 등 보유 자산 매각을 통한 유동성 확보에 한창이지만, 이 또한 일회성 효과에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게 시장 참여자들의 주된 시각이다.
대규모 부실 가능성에 시장 우려 지속
업계에서는 롯데건설 위기의 발단이 된 PF 보증 부담에 주목했다. 롯데건설은 2022년 하반기 레고랜드 사태로 PF 유동화 시장이 경색되고 차환이 이뤄지지 않자 직접 자금을 투입해 2조9,000억원 상당의 PF 유동화증권을 매입한 바 있다. 이후 PF 차환 위험이 다소 완화되면서 유동화증권을 다시 시장에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금 부담을 일부 해소했다.
그러나 이후로도 PF 우발채무 부담은 눈에 띄게 줄어들지 않았다. 나신평에 의하면 작년 11월 말 기준 롯데건설의 PF 우발채무 규모는 3조7,817억원에 달한다. 위기설이 돌았던 2022년 말 6조8,000억원과 비교하면 약 3조원이 감소한 수준이지만, 여전히 자기자본(2조6,000억원)을 한참 웃도는 금액이다. 특히 위험도가 높은 도급사업 관련 미착공 및 저조한 분양률 사업장의 우발채무가 2조4,000억원에 달하는 가운데 분양 경기마저 저하되며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우발채무의 만기가 줄줄이 도래한다는 점이다. 롯데건설의 전체 PF 우발채무 중 올해 만기를 맞는 PF는 1조2,847억원상당이며, 1분기와 2분기에만 각각 8,241억원과 2,562억원이 몰렸다. 롯데건설 측은 만기를 맞는 PF는 연장 또는 차환으로 대응한다는 방침이지만, 금융당국 지난해 상반기를 기점으로 PF 기준을 강화하면서 새로운 대출을 일으키기 어려워진 만큼 신용보강 약정 채무를 대신 인수할 가능성도 매우 높게 점쳐진다.

지방 미분양 증가로 현금 유입 차단
이 같은 상황을 예견한 롯데건설은 지난해부터 일부 고위험 사업장 정리와 사업 철수를 단행하며 유동성 위기 확산을 막으려는 노력을 병행해 왔다. 그러나 ‘현금이 도는 구조’의 복원은 요원한 실정이다. 가장 큰 원인은 현장 분양률 저조와 회수 지연이다. 일례로 지난해 롯데건설이 분양한 경기 이천 ‘롯데캐슬 센트럴페라즈스카이’는 전체 4개 타입 중 3개 타입(전용 84㎡)이 미달되면서 청약률이 21%에 그쳤고, 여타 지방 사업장 대부분이 초기 분양률이 50%를 밑돌았다.
통상 건설사들은 분양을 통해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 운영자금을 조달한다. 롯데건설 역시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분양 물량을 공격적으로 확대했다. 지난해 롯데건설은 전년(1만3,082가구) 대비 33% 늘어난 1만7,439가구를 분양시장에 풀었다. 이는 △GS건설(약 1만9,700가구) △현대건설(약 1만9,300가구) △대우건설(약 1만8,600가구)에 이어 네 번째로 큰 규모다.
하지만 미분양과 미수금 증가로 돈이 돌지 않으면서 롯데건설의 현금창출력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롯데건설이 본업으로 실제 벌어들인 돈인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은 2022년 1,783억원에서 2023년 499억원까지 급감했다. 이후 2024년에는 결국 적자(-979억원)를 기록했다. 건설사 현금흐름이 마이너스라는 것은 공사에 쓴 비용이 대금으로 받은 돈보다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