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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이제까지 총 22개국에 상호관세 통보 브라질에는 정치적 이유 들어 50% '관세 폭탄' 의약품 200%, 구리 50% 등 품목별 관세 예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브라질 등 8개국에 보낸 상호관세 서한을 추가 공개하며 대외 압박 수위를 끌어올렸다. 특히 브라질에는 미국 기업 대상 규제 강화 조치에 맞대응해 지난 4월보다 무려 40%포인트 오른 50%의 고율 관세를 적용했다.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반도체, 의약품, 구리 등 주요 전략 품목에 대한 추가 관세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자동차, 철강, 알루미늄에 적용되던 품목별 관세가 대폭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필리핀·브루나이는 관세율 상향
9일(현지 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브라질, 필리핀, 브루나이, 몰도바, 알제리, 이라크, 리비아, 스리랑카 등 8개국에 발송한 상호관세 서한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공개했다. 각국 정상에게 보낸 서한에는 오는 8월 1일부터 적용될 국가별 상호관세율이 명시됐다. 이날 공개된 나라를 합쳐 현재까지 미국이 상호관세를 통보한 나라는 총 22개국으로 앞서 지난 7일에는 한국, 일본 등 14개국에 보낸 상호관세 서한을 공개한 바 있다.
이번 발표에서 특히 눈에 띈 국가는 50%의 상호관세를 적용받는 브라질이다. 지난 4월 2일 상호관세 발표 당시에는 10%의 기본 관세만 적용됐지만 3개월 만에 관세율을 40%포인트 상향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자이르 보우소나루 전 대통령이 재판에 회부된 것은 국제적 불명예로 이 재판은 열려서는 안 된다"며 "마녀사냥은 즉시 중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브라질의 관세·비관세 장벽에 대해서도 거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의 디지털 교역 활동에 대한 브라질의 계속된 공격과 다른 불공정 무역 관행 등을 언급하며 "제이미슨 그리어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게 '무역법 제301조'에 입각해 브라질에 대한 조사를 즉시 시작할 것을 명령했다"고 밝혔다. 최근 브라질 정부가 미국의 빅테크에 세금 부과, 데이터 현지화 요구, 시장 진입 제한 등의 규제를 적용한 것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된다.
상호관세율을 나라별로 보면 △알제리·이라크·리비아·스리랑카 30% △필리핀 20% △브루나이·몰도바 25%가 적용됐다. 지난 4월 발표한 관세율과 비교하면 알제리는 변화가 없었고 필리핀과 브루나이는 각각 3%포인트, 1%포인트 올랐다. 이 밖에 △스리랑카 -14% 포인트(44%→30%) △이라크 9% 포인트(39→30%) △리비아 1% 포인트(31%→30%) △몰도바 6% 포인트(31%→25%)씩 각각 하향 조정됐다.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관세 품목 확대
미국은 국가별 상호관세에 이어 품목별 관세에 대한 압박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백악관에서 주재한 내각회의에서 “의약품, 반도체를 비롯해 몇 가지 다른 품목에 대한 발표가 있을 것”이라며 “1년 또는 1년 반의 기간을 줄 텐데 그 기간 안에 미국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매우, 매우 높은 세율의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며 "구리는 조만간 50% 관세를, 의약품에는 이르면 1년 후 2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반도체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관세율이나 발효 시점을 언급하지 않았다. 시장에서는 철강·알루미늄 관세가 25%에서 50%로 오르고 구리에도 50%의 관세율이 예고된 만큼, 반도체 관세율도 25%를 웃돌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미 상무부가 반도체가 포함된 전자제품에 대한 관세 부과 여부를 조사 중이라고 밝혀 스마트폰, 가전 등으로 관세 불길이 옮겨붙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현재는 정보기술협정(ITA)에 따라 대부분의 반도체와 IT·전자제품에 관세율 0%를 적용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거론한 반도체, 의약품, 구리 등은 미국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관세를 부과하는 품목들이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될 경우 상무부 장관이 이를 조사해 위험 완화 방안이 포함된 보고서를 대통령에게 제출하면, 대통령이 90일 이내 관세를 통한 수입 규제 등 적절한 조치를 결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 미국은 이 조항을 활용해 자동차, 자동차부품, 철강, 알루미늄 등에 25~50%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하고 있다.
韓에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언급하며 압박
이미 서한을 받은 한국에 대해서는 방위비 분담금을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내각회의에서 한국을 향해 “스스로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며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연간 100억 달러(약 13조7,000억원)까지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한국은 부유한 나라"라며 "나는 그들에게 수십억 달러를 지급하도록 만들었는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그걸 취소했다"고 비판했다. 무역 협상 국면에서 '방위비 무임승차론'을 내세워 한국에 방위비 분담 협상 재개를 요구한 것이란 해석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인 2019년 11차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협정(SMA) 협상 당시, 미국은 한국에 50억 달러(약 5조7,000억원) 인상을 요구했다. 이는 2019년 한국이 낸 분담금(1조389억원)의 5배를 넘는 규모다. 미국 측의 무리한 요구 탓에 협상은 장기간 표류했고 결국 바이든 전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인 2021년 3월이 돼서야 타결됐다. 그러나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또다시 무임승차론을 꺼내들며 "미국이 한국 방어를 위해 4만 명의 병력을 배치했음에도 한국은 이에 대해 돈을 내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주한미군 병력 규모는 약 2만8,000명 수준이다. 그는 집권 1기 때부터 병력 규모를 부풀려 말해 왔는데 일각에서는 의도적으로 수치를 과장해 정치적 메시지를 강화하려는 전략이란 분석도 나온다. 이에 외교부는 병력 규모를 바로잡으며 "방위비 분담금은 이미 양국 간 협상을 통해 결정된 사안으로 추가 인상 요구는 협정 위반에 해당한다"고 전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관세와 방위비를 패키지로 묶을지는 검토 중"이라며 "해당 사안은 한·미 정상 간 논의를 통해 풀어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