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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재해와 보험 손실 급증으로 금융 안정성과 통화정책에 부담 중앙은행, 기후 리스크를 핵심 과제로 인식 필요 회복력 강화를 위한 모델 개선과 감독 확대 요구
본 기사는 The Economy 연구팀의 The Economy Research 기고를 번역한 기사입니다. 본 기고 시리즈는 글로벌 유수 연구 기관의 최근 연구 결과, 경제 분석, 정책 제안 등을 평범한 언어로 풀어내 일반 독자들에게 친근한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기고자의 해석과 논평이 추가된 만큼,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원문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2024년 전 세계에서 발생한 기후 재해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약 3,200억 달러(약 435조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보험으로 보상된 금액은 1,400억 달러(약 190조 원)로, 보험 손실 기준으로는 사상 세 번째로 큰 규모였다. 여기에 일상생활에 직결되는 비용도 가파르게 올랐다. 자동차 보험료는 2023년 20.3% 오른 데 이어 2024년에도 11.3% 상승했으며, 2025년 5월에는 미국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린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됐다.
이처럼 홍수나 국지성 폭풍 같은 재해가 허리케인 못지않은 연간 손실을 일으키면서 금융 안정성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 담보 가치 변동과 위험 프리미엄 확대는 통화정책의 효과적인 전달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중앙은행은 기후 리스크를 더 이상 주변적 문제로 취급할 수 없으며, 금융 시스템의 건전성을 지키기 위해 적극 대응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윤리에서 거시건전성으로
그동안 기후 문제는 도덕적·정치적 논의로만 여겨졌다. 중앙은행의 역할인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과는 거리가 있다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졌다. 홍수·산불·폭풍 같은 극단적 재해가 잦아지고 강도가 커지면서, 과거에는 예외적 사건으로만 보던 위험이 금융 시스템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담보 가치는 흔들리고 현금 흐름의 예측 가능성도 약화됐다. 대규모 홍수 뒤 중고차 시장이 마비되고, 위험 지역의 주택 보험이 급등하거나 사라지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통화정책 효과 역시 제약을 받는다. 중앙은행이 금융 시스템을 지키려면 기후 리스크를 명확히 인식하고 대응해야 한다.
최근 추세는 구조적 변화를 확인시켜 준다. 지난 5년간 전 세계 보험 재해 손실액은 매년 1,000억 달러(약 136조 원)를 넘어섰다. 2024년 유럽과 중동에서 발생한 홍수 피해만 130억 달러(약 18조 원)에 달했으며, 계절과 무관하게 발생한 피해 규모는 10년 평균을 크게 웃돌았다. 그 결과 보험료 인상은 소비자물가지수에 반영되고, 자산 손상은 은행 자본을 갉아먹는다. 반복적 손실 우려는 대출자들로 하여금 특정 지역과 산업에서 철수하거나 대출 조건을 강화하게 만든다.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은 다른 경로를 거치지만, 결국 기후라는 물리적 요인에 동시에 압박받고 있는 셈이다.
꼬리에 숨지 않는 숫자들
통계만 보더라도 상황은 분명하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ational Oceanic and Atmospheric Administration, NOAA)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10억 달러 (약 1조3,600억 원)이상 피해를 낸 재해가 27건 발생했고, 총피해액은 1,827억 달러(약 249조 원)에 달했다. 글로벌 재보험사 스위스리(Swiss Re)는 같은 해 전 세계 보험 손실을 1,370억 달러(약 187조 원)로 추정하며, 최근 수년간 연평균 5~7%의 증가세를 확인했다. 영국에서는 2024년에만 자동차 보험 지급액이 117억 파운드(약 20조 원)에 달했고, 날씨로 인한 주택 보험 청구도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상적 기상 이변이 이미 거대한 지급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지역 사례 역시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2023년 그리스에서 발생한 폭풍 다니엘은 수십억 유로의 피해를 남겼고, 정부는 복구 비용을 50억 유로(약 7조 원)로 추산했다. 그러나 보험 보상은 극히 일부에 그쳤다. 농업 총부가가치의 12%를 차지하는 곡창지대 테살리아가 침수되자 식품 가격, 고용, 농가와 중소기업 대출 전반이 흔들렸다. 이듬해 중부 유럽의 홍수 역시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유럽 당국이 기후 위험을 스트레스 테스트에 반영하고, 은행 포트폴리오 전반에 기후 리스크 관리 체계를 요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중앙은행 발신과 시장의 반응
최근 2년간 중앙은행의 기후 관련 발언은 추상적 권고에서 구체적 감독 지침과 시나리오 제시로 발전했다. 녹색금융네트워크(Network for Greening the Financial System, NGFS)의 시나리오 체계는 물리적 위험과 전환 위험을 더욱 세밀하게 다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포함한 일부 당국은 대형 은행과 함께 파일럿 기후 시나리오 분석을 완료했다. 은행 대출금리와 신용 스프레드에 기후 위험이 반영된다는 연구도 잇따르고 있다. 이는 ‘기후 행동주의’가 아니라 감독 기준이 정교해진 가운데 나타나는 정상적인 위험 관리로 볼 수 있다.
이 같은 발신은 은행 부문을 넘어 금융시장 전체로 파급된다. 2024년 지속가능 채권 발행액은 1조 달러(약 1360조 원)를 다시 넘어섰고, 기후 연계 채권도 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했다. 감독 당국이 물리적 위험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하면 홍수 방재나 전력망 회복 같은 적응 재원 조달이 촉진되고, 전환 경로를 명확히 하면 녹색 투자가 확대된다. 중앙은행의 소통은 특정 산업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후 위험을 외면했을 때 발생할 금융 충격을 줄이는 기능을 한다.

주: 지역별 기후 연설 수(왼쪽 그래프), 지역별 기후 관련 키워드 수(오른쪽 그래프)/아프리카 및 중동(진한 보라) 동유럽 및 중앙아시아(진한 파랑), 동남아시아 및 태평양(청록색), 서유럽(녹색), 라틴아메리카 및 카리브(연한 파랑), 서구 파생 국가(노란색)
더 정교한 모델로
2008년 금융위기는 위험 관리에서 정규분포 가정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드러냈다. 이후 금융권은 ‘두꺼운 꼬리(fat tails)’, 즉 예외적 사건이 실제로는 더 자주 일어난다는 점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최근의 기후 위험 모델링은 이를 넘어, 갑작스러운 충격을 설명하는 ‘점프 과정’과 극한 상황을 다루는 ‘극값 이론’을 신용·시장 위험 모델에 반영하고 있다.
예컨대 바시첵(Vasicek) 모형을 확장하면 지역별 재해의 빈도와 강도, 그리고 그에 따른 금융기관 손실 규모 변화를 추정할 수 있다. 점프-확산 모형은 정책 변화나 기술 혁신으로 탄소 집약 산업 자산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을 포착한다. 이는 학문적 실험이 아니라, 파생상품 평가나 스트레스 테스트가 그랬듯 실무에 자리 잡을 차세대 표준 모델로 평가된다.
이러한 기법은 기후 재해의 특성과 금융 리스크를 보다 정확히 연결한다. 홍수·폭염·국지 폭풍은 온난화와 도시화로 빈도와 강도가 달라지는 비정상적 위험이다. 발생 가능성은 ‘포아송 분포형 점프’로, 손실 규모는 ‘극값 분포’로 모델링해야 실제 보험 데이터와 맞는다. 이를 은행 내부등급법(IRB) 신용 모델에 적용하면 요구 자본 버퍼, 담보 평가, 지역별 대출 한도 같은 기준이 재산정된다. 핵심은 불확실성을 이유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 두꺼운 완충 장치를 마련해 시스템을 견고하게 만드는 데 있다.
발언에서 실행으로
중앙은행의 임무가 물가와 금융 안정이라면 기후 리스크는 감독과 정책의 주요 영역에 포함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이사회 차원의 관리와 데이터 체계를 강화하고, 내부자본적정성평가(Internal Capital Adequacy Assessment Process, ICAAP)와 내부유동성적정성평가(Internal Liquidity Adequacy Assessment Process, ILAAP)에 물리적·전환 위험을 반영해야 한다. 공시 체계 역시 글로벌 기준과 호환되도록 정비할 필요가 있다.
거시건전성 정책에서도 기후 리스크는 중요한 과제다. 시스템 위험 감시 체계에 편입하고, 특정 산업에 대출이 과도하게 집중되면 추가 자본 적립이나 규제를 적용해야 한다. 담보와 유동성 제도 측면에서도 기후 취약 자산은 담보가치를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재해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유동성 위기에 대비한 긴급 자금 장치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기후 금융여건지수(Climate Financial Conditions Index, C-FCI)’ 개발도 요구된다. 재보험 스프레드, 보험료 상승률, 기후 민감 지역의 주택담보대출 지표 등을 결합해 중앙은행의 모니터링 체계에 반영하는 방식이다. 이는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금융 시스템이 기후 위험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주: 국가(X축), 주제 비중(Y축)/녹색 금융((파란색), 기후 위험(주황색)
통화정책과 기후 충격
기후 충격은 은행만 위협하는 것이 아니다. 식품·에너지·보험·운송을 통해 물가에도 직접 반영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은 가뭄만으로도 유로존 산출량이 급격히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에서는 보험료가 소비자물가지수에 반복적으로 반영되며, 물리적 위험이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는 경로를 보여주고 있다. 홍수·가뭄·폭염 같은 기상 요인을 물가 전망 모델에 반영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정책적 접근은 세 가지로 정리된다. 기후 보정 항목을 필립스곡선에 추가해 단기적으로 식품·에너지 가격 변동을 반영하고, 보험료 상승이 물가에 전가되는 과정을 물가 모델에 포함해야 한다. 더불어 재보험사와 재해 모델링 기관과 협력해 정책 논의의 시나리오 일관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
비판과 응답
중앙은행의 기후 대응에는 여러 비판이 제기된다. 대표적으로 “기후 문제는 입법 사안이지 중앙은행 소관이 아니다”라는 정치화 논란이 있다. 그러나 국제금융기구의 법률 분석에 따르면, 기후 위험이 은행 안정성을 위협할 경우 이는 감독 권한 안에 포함된다. 임무 확장이 아니라 신중한 관리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또 “데이터가 부족하고 예측이 불완전하다”라는 모델 불확실성 비판도 있다. 하지만 꼬리 위험에 대한 불확실성은 정책 마비의 이유가 아니라, 더 두꺼운 완충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신호다.
위험이 다른 부문으로 이전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은행 감독이 강화되면 보험사나 비은행으로 위험이 옮겨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지역에서는 보험사가 철수하거나 보험료가 급등하고 있다. 따라서 감독은 은행에 그치지 않고 보험사·비은행까지 포함한 시스템 전반으로 확대돼야 한다.
회복력 구축의 시급성
기후 위험은 더 이상 예외적 사건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이다. 따라서 정책, 감독, 분석 방식도 달라져야 한다. 기후를 가치 논쟁의 문제로만 치부하며 중앙은행의 역할 밖에 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으로 필요한 방향은 분명하다. 위험을 정확히 알리고, 최신 데이터를 반영한 모델을 적용하며, 감독과 정책 과정에 기후 요인을 통합해야 한다. 금융과 시장 전반이 이에 맞춰 대응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일도 중요하다. 대응을 늦출수록 부담은 커진다. 비용은 이미 현실이 되었고, 과제는 금융 시스템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 회복력을 지금부터 어떻게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New Vocabulary of Risk: Why Climate Has Become Central Bank Business | The Economy를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2차 저작물의 저작권은 The Economy Research를 운영 중인 The Gordon Institute of Artificial Intelligence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