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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윤경림 KT 대표 내정자가 각종 논란에 휩싸인 끝에 사의를 표명했다.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사진이 윤 KT그룹트랜스포메이션부문장(사장)을 여러 차례 설득했으나 결국 윤 내정자의 뜻을 굽히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2월 구경모 대표의 후임을 선발하는 것이 확정되고 한 차례 내분이 있었음에도 사내 융화가 가능할 것으로 점쳐졌으나, 결국 최종 후보 선발 15일 만에 자진 사퇴 형식으로 마무리되면서 KT 내부에 복잡한 사내 권력 암투가 있음을 시사하는 모습이 됐다.
정부, 여권 개입이 원인?
윤석열 정부 관계자들은 윤 내정자에 대해 "구현모의 아바타"라며 직전 KT 대표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는 비난을 이어갔다. 윤 내정자의 사퇴는 KT가 민영화를 거쳤으나 여전히 공기업 체질로 작동되고 있고, 전 KT 대표가 문재인 정권의 인사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모습이 된 셈이다.
실제로 31일 개최될 예정인 정기 주주총회에서도 1대 주주인 국민은행이 윤 정부와 여권의 뜻에 따라 대표 선임에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2대 주주인 현대차그룹과 3대 주주인 신한은행도 여권의 눈치에 찬성표를 던지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 내부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투자한 회사의 경영권에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겠다고 밝혔던 국민연금의 영향력도 주목할 부분이다. 작년 말 기준으로 10.1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어, 실제로는 1대 주주에 해당하는 국민연금에서 적극적인 개입을 위해 자산운용사들의 주총 표결 참여를 타진하고 나서기도 했다.
2002년 민영화, 20년이 지나도 여전히 정부 입김?
공기업 기관장들은 정권이 바뀔 경우 기존 임명자가 사임을 하는 방식으로 물러나는 경우가 흔하다. 때때로 '버티기'를 하는 경우도 있으나, 각종 세무조사 및 공공기관 역량 평가 등을 이유로 사퇴를 압박한다. 정가에서는 국민권익위의 전현희 위원장을 이번 정부 들어서 대표적인 사례로 꼽는다.
KT 대표 임명도 본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여의도 정가의 판단이다. 국민연금이 기존 구현모 대표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주주총회 표결에 참여 의사를 내비치자 국민은행, 현대차그룹, 신한은행 등의 주요 대주주들도 모두 반대로 입장을 정했다. 소액 주주들이 모인 주식토론방 등에서는 소액주주의 의결권을 모아 '국민연금의 횡포'를 이겨내자는 분위기지만, 네이버 카페에 모인 전체 의결권은 0.68%에 불과했다. 국민연금을 포함할 경우 4대 주주가 되는 신한은행이 보유한 5.58%의 1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 개입을 결정했다는 소식에 사실상 KT 그룹 이사진 전체가 퇴출되는 분위기로 바뀌면서 벤자민 홍 라이나생명보험 이사회 의장이 KT 이사회에 사외이사 사임 뜻을 밝혔다. 지난 1월에는 참여정부 청와대 수석비서관 출신인 이강철 사외이사가 사임한 바 있다. 사외이사 내정자였던 임승태 법무법인 화우 고문도 최근 사임 의사를 밝혔다. 13일에는 윤정식 스카이라이프 대표 내정자도 대표이사직을 고사했다. 스카이라이프는 KT의 케이블방송 계열사다.
차라리 민영화되지 않았다면?
주주 토론방에서는 '차라리 민영화되지 않았다면 주주들이 피해 볼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반대 여론이 강하다. 24일 장 종료 현재 KT의 주가는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30,000원대가 깨져 52주 내 최저가에 근접해있다. 경영진 내흥으로 상승 모멘텀을 찾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 소액 주주들의 불만 사항 중 하나다.
KT의 재무자료를 기준으로 볼 때 2022년 4분기에 영업 실적이 크게 악화된 것은 사실이나, 2023년 1분기에는 성장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주가가 52주 최저가로 떨어질 이유가 경영권 분쟁밖에 없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여론 분석에서도 유사한 사정이 관측된다. 대표 내정자였던 '윤경림' 사장의 이름을 중심으로 관련 키워드를 재구성한 결과, 국민연금이 이사회, 주주총회 등을 통해 사의 압박을 넣고 있다는 정보(하늘색 키워드), 구현모 전 대표와 관련된 검찰 수사(붉은색 키워드), 그 외 시민단체를 비롯 외부 단체에서 정부 개입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는 여론(녹색 키워드)으로 나뉜다.
종합하면 윤 내정자 사퇴가 국민연금의 주도하에 이뤄지고 있고,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했던 전 대표가 검찰 수사 대상에 올랐다는 점, 외부에서는 정부의 개입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민영화된 지 무려 20년이 넘은 기업이 여전히 정부·여당의 개입을 받는다는 것은 사실상 민영화로 주주만 바뀐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2000년 민영화됐던 우리은행의 경영진 임명에도 여전히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렇게 공기업처럼 운영하려면 왜 민영화했을까? 왜 주주들의 손에 들어간 회사가 정부의 낙하산에 고액 급여를 줘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