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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 15% 감원, 2분기 부진에 칼 빼든 인텔 연말까지 전체 인력 4분의 1 감축 전망 36조 투자한 오하이오 공장, 수년간 지연 불가피

한때 미국 혁신의 상징이자 실리콘밸리의 선두 주자로 불렸던 인텔이 존립을 건 전환기에 직면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공격적 확장 전략을 밀어붙였지만 최근 생존 모드로 급선회한 것이다. 대규모 구조조정, 투자 축소, 미국 내 핵심 생산기지의 착공 연기까지 단행하며, 미래 성장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로드맵도 긴축 조정 회로로 재편되는 양상이다.
흔들리는 테크 거물, 2분기 29억 달러 순손실
2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미국 IT 기업의 전설로 꼽히는 인텔은 최근 대규모 감원 계획을 발표했다. 올해 2분기 무려 29억 달러(약 4조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직후 인텔은 글로벌 인력을 줄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같은 조치는 올해 5억 달러(약 7,200억원), 내년 10억 달러(약 1조 4,400억원)의 운영비용을 절감하겠다는 리푸 탄(Lip-Bu Tan) 최고경영자(CEO)의 구조조정 전략과 맞물려 있다. 그는 조직의 효율성을 높이고, 기술 중심 문화를 재건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한 바 있다. 탄 CEO는 비대해진 조직을 효율화하기 위해 중간 관리직의 50%를 없애기로 했다.
이번 감원은 인텔 역사상 최대급 인력 감축 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경영진은 이를 통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인공지능(AI)과 차세대 반도체 기술에 투자를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탄 CEO는 전사 메모에서 “레거시 제조업체에서 차세대 혁신 기업으로의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투자자들은 연말까지 최대 170억 달러(약 23조원)의 비용 절감이 가능하다는 점에 일정 부분 기대를 걸고 있지만, 사내 분위기는 침통하다. 수십 년간 안정적이었던 인텔 특유의 조직 구조가 무너지고 있다는 우려에서다.

연말까지 30% 인력 감원
하지만 이번 감원은 시작에 불과하다. 미국 IT 전문 매체 CRN에 따르면, 인텔은 2024년 말 기준 약 10만8,900명이던 전체 인력을 2025년 말까지 약 7만5,000명 수준으로 줄일 계획이다. 자연 감소와 조직 재편 등을 포함하면 작년 말(10만8,900명) 대비 전체 인력의 약 31%가 줄어드는 셈이다.
이 같은 대규모 인력 축소는 인텔이 기존 조직 체계를 근본적으로 재편하고 있다는 방증으로 풀이된다. 중간관리직 비중은 줄이고, 칩 설계 등 핵심 기술 분야에 인재를 집중 배치하는 전략이다. 한때 인텔의 사업 다각화를 이끌 미래 사업으로 꼽혔던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서비스(FS) 부문은 오히려 수익성 악화의 주범으로 떠오르며 구조조정 압력을 더욱 키우고 있다.
오하이오 프로젝트도 사실상 보류
미국 내 반도체 생산 역량 회복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던 ‘오하이오 원(Ohio One)’ 프로젝트도 차질을 빚고 있다. 총 280억 달러(약 36조원)가 투입되는 이 반도체 단지는 애초 2025년 가동을 목표로 추진됐지만, 최근 일정이 대폭 지연된 것으로 확인됐다. 오하이오주 지역방송인 WBNS 10TV에 따르면 첫 번째 반도체 공장은 이르면 2030년, 두 번째는 2031년 이후로 가동이 미뤄질 전망이다. 이는 인텔이 ‘추정 수요 기반’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에서 ‘실질 수요 기반’의 신중한 자본 전략으로 선회한 데 따른 결정이다.
오하이오 원 프로젝트 연기는 정치적 부담으로도 이어지는 양상이다. 오하이오 공장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핵심 지원 법안인 CHIPS 및 과학법의 대표 수혜 프로젝트로 연방 및 주정부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왔다. 그러나 착공 일정이 수년씩 밀리면서, 인텔의 기술 리더십과 전략적 신뢰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수만 명의 일자리를 줄이고, 수십조원의 핵심 투자를 미루며 비용 절감에 전력 투구하는 인텔의 현주소는 단순한 전환기의 일면을 넘어, 뿌리 깊은 위기 국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탄 CEO의 리더십이 구상하는 대전환이 과연 성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아직 불투명하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인텔의 앞길이 그 어느 때보다 길고, 얇으며, 불확실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