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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 기술을 빼낸 뒤 중국으로 도피한 애플의 전 엔지니어를 비롯해 중국과 러시아, 이란 등으로 기술을 유출하려 한 이들이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 법무부는 애플의 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왕 웨이바오(35)를 기소했다고 밝혔다. 회사의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된 기밀문서와 자율성 소스 코드, 추적 시스템, 아키텍처 설계 등을 훔쳐 중국회사에 넘긴 혐의다.
애플 핵심 인력도 산업스파이, 도 넘은 중국의 '기술 빼돌리기'
지난 2016년부터 2018년까지 애플에 재직하며 자율주행차 핵심 프로젝트에 참여한 왕씨는 13만5,000명의 애플 직원 중 2,700명에게만 허락된 권한을 바탕으로 사내 데이터에 광범위하게 접속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기소장에 따르면 왕씨는 2017년 11월 실리콘밸리에 위치한 중국 자율주행차 개발 기업 ‘컴퍼니원’ 미국 자회사에 영입된 이후에도 애플을 퇴사하지 않고 약 4개월 동안 애플 직원으로 재직하며 방대한 양의 기술과 소스 코드 등을 빼낸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2018년 4월 왕씨가 애플을 떠나기 전 많은 양의 민감한 독점·기밀 정보에 접근한 것으로 파악됐다. 미 당국이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에 있는 왕씨의 자택을 압수수색한 결과, 그간 회사에서 훔친 기밀 정보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이에 미 법무부는 왕씨를 자율주행차 소스 코드, 추적 시스템 유출 등 총 6가지 혐의로 기소했으나, 왕씨는 압수수색 당일 중국으로 도주했다.
애플이 이같은 홍역을 겪은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왕씨와 같은 시기에 애플에서 근무한 장샤오랑 역시 기술 유출 혐의로 기소됐다. 장씨는 2015년부터 3년간 자율주행차 회로기판을 설계하고 시험하는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려졌다. 기소장에 따르면 장씨는 2018년 4월 애플에 사직서를 제출하면서 중국에 돌아가 전기차 스타트업에 취업할 계획이라 밝혔으나, 사임 전 육아휴직 상태에서 회사에 몰래 들어가 배터리 시스템과 자동차 구동 서스펜션 등 자율주행 부문 기밀 정보가 담긴 파일을 내려받은 것이 발각돼 공항에서 체포됐다.
산업스파이 행위, 우리나라도 예외 아냐
기술 유출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A씨는 반도체 회사 연구원으로 재직하며 기밀 기술인 반도체 습식 세정 장비 제작 기술 등을 부정 사용해 설계 도면을 만들었다. 해당 도면을 통해 A씨와 협력사 직원 B씨 등 6명은 710억원 상당의 장비 14대를 제작해 중국 경쟁 업체 및 연구소에 수출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C씨는 2019년 자신이 근무하던 기업의 임원 승진에서 탈락하자 회사 내 연구원들을 중국으로 이직시켰다. 이후 C씨는 반도체 관련 기밀자료를 열람해 반도체 관련 국가 핵심기술을 개인 휴대전화로 촬영한 뒤 중국으로 유출함으로써 최소 1,000억원 이상의 막대한 손해를 끼치기도 했다.
내부로 침투한 '스파이' 색출 급선무
미국은 이른바 경제스파이법(Economic Espionage Act, EEA)을 제정해 산업 기술 유출에 대응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자율주행 등 국가의 전략적인 핵심기술을 해외로 유출할 경우 간첩죄와 비등한 정도로 간주하고 법정 최고형인 징역 20년, 추징금 최대 500만 달러(약 65억5,000만원)의 높은 형량을 부과하고 있다. 1996년에 제정된 경제스파이법은 산업 기술의 해외 유출 행위에 대해 견제하며 엄격하게 처벌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업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중국은 전랑(戰狼)외교로 인해 동맹국의 기반이 약한 편이지만, 미국은 파이브 아이즈(FVEY),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등 많은 국가와 긴밀한 동맹관계를 맺고 있다. 미국은 이러한 동맹국들로부터 큰 우려와 질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도체법(CHIPS and Science Act) 제정을 강행할 만큼 대외적으로 중국 견제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를 시작으로 현재 조 바이든 정부까지 중국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미국 내에서 발생하고 있다. 지난 2021년 미국의 국가정보국장실 산하 국가방첩안보센터(NSCS)의 국장인 마이클 올란도(Michael Orlando)는 미국 내 중국인이 미국의 핵심 기술을 포함한 지식재산권을 유출해 발생하는 피해액이 매년 200만 달러(약 26억7,800만원)에서 600만 달러(약 80억3,300만원)에 달한다고 발표했다. 미국이 대외적으로 중국 본토를 제재하는 것과 무관하게 미국 내부에서 물이 새고 있는 것이다.
이번 애플의 기술 유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EEA가 제정된 지 28년이 지났음에도 미국은 중국의 산업기술 유출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을 이끌어 갈 핵심 기술들에 대한 산업 기술 유출까지 빈번히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은 동맹국들과 함께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아 올리며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중국은 이미 미국 내부로 침투해 심각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 이처럼 내부에서 물이 새는 현 상황에서 대외적인 중국 제재는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