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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 1일부터 감염병 위기 경보 단계가 '심각'에서 '경계'로 하향되고,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 진료가 종료될 예정이다. 당정은 비대면 진료 공백을 해소하기 위한 시범사업을 진행하되,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 환자'로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보건복지부는 17일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공개했다. 이에 그간 초진 환자를 비대면 진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해 온 비대면 진료 중개 플랫폼 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는 비현실적이며, 국민의 비대면 진료 수요를 외면하는 처사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한시적 허용'이라는 절벽 위에서 위태롭게 버티던 대다수 플랫폼 기업은 활로를 찾아 사업을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재진 환자 중심 비대면 진료 제도화가 관련 업계의 '줄도산'을 부를 것이라는 우려마저 제기된다.
보건복지부, '재진 환자 중심' 시범사업 추진방안 발표
이번 추진방안을 통해 정부는 의원급 의료기관, 재진 환자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실시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드러냈다. 구체적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 참여 대상은 △대면 진료 경험자(재진 환자) △섬·벽지 환자 △거동 불편자 △감염병 확진 환자 △휴일·야간 소아 환자 등이다.
보건복지부의 추진방안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특정 '의원'에서 특정 질환으로 1회 이상 대면 진료를 받은 '재진 환자'에 한해 시범사업 참여가 허용된다. 고혈압·당뇨·정신 및 행동장애·호흡기결핵·심장질환 등 만성질환관리료 산정 대상 11개 질환 환자는 1년 이내, 이외 기타 질환자는 30일 이내 대면 진료 기록이 존재해야 비대면 진료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예외적으로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가능한 환자군도 있다.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한 섬·벽지 환자(섬 363곳, 벽지 116곳)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등 거동 불편자 △법정 감염병 확진 후 치료 기간 중 타 의료 기관 진료가 필요한 환자 △휴일·야간에 진료가 필요한 18세 미만 소아 환자의 경우 초진이더라도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다. 이외 희귀질환자, 수술·치료 후 지속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환자의 경우 병원급의 비대면 진료도 재진에 한해 허용된다.
비대면 진료 이후 약 원격 배송은 △섬·벽지 환자 △거동불편자 △휴일·야간 소아환자 △감염병 확진 환자 △희귀질환자에 한해 제한적으로 허용된다. 비대면 진료만 실시하는 의원, 조제용 의약품만 취급하는 약 배달 전문 약국 등은 원칙적으로 운영이 금지되며, 이를 위해 의사·약사 1인당 월간 비대면 급여 건수를 제한할 예정이다. 아울러 마약류와 오·남용 우려가 있는 의약품은 비대면 진료로 처방할 수 없다.
벼랑 끝에 몰린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정부가 '재진 환자' 중심 제도화에 힘을 쏟는 동안, 플랫폼 업계는 초진 환자 대상 비대면 진료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진료 대상을 재진으로 한정할 경우 90%가량의 이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어도 이용할 수 없게 될 것이며, 관련 업계가 ‘줄도산’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코리아스타트업포럼 산하 원격의료산업협회(원산협)은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자 시절 비대면 진료의 효용을 언급하며 네거티브 규제 혁신을 발표했음에도 불구, 보건당국이 재진 환자만을 위한 ‘포지티브 규제’로 비대면 진료 제도화를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고위험군 약품에 대한 비대면 처방을 제한한 선례를 고려, 비대면 진료에도 ‘네거티브 규제’가 도입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직장인, 워킹맘 등 1,379만 명의 국민이 만 3년간 경험했던 비대면 진료와 이를 운영했던 기업들이 모두 고사 위기에 처했다며 정부가 비대면 진료 제도화 과정에서 국민과 산업계의 목소리를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지난 코로나 팬데믹 동안 이뤄진 3,500만 건 비대면 진료를 통해 비대면 진료의 안전성과 소비자 수요가 이미 입증됐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결국 정부는 비대면 진료 대상을 '재진 환자'로 한정한 시범사업 추진방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원산협은 "(정부의 추진방안이)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운 수준이라 아쉬움을 표한다"는 뜻을 밝혔다. 업계가 국민이 비대면 진료를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해 왔음에도 불구, 이번 시범사업 추진방안에 업계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비대면 진료' 사업, 지속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대다수의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은 처지였다. 비대면 진료가 어디까지나 한시적으로 허용된 상황인 만큼, 정부의 비대면 진료 제도화에 사실상 기업의 생사가 달려 있던 셈이다. 하지만 재진 환자에 중점을 둔 이번 추진방안으로 인해 결국 대다수 기업이 벼랑 끝까지 몰리게 됐다. 초진 제한으로 신규 이용자 유입이 감소하고, 진료 범위 축소 및 약 배송 서비스 제한 등으로 인해 기존 이용자가 이탈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기정사실화된 것이다. 생사의 기로에서 플랫폼 기업들은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서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비대면 진료 전문 기업인 쓰리제이는 내부적으로 비대면 진료 ‘피벗(사업 전환)’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쓰리제이는 성병 검사 키트를 이용자에게 배달 및 수거해 ‘성매개감염병(STD)’을 비대면으로 확인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검사 결과는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이용자에게 전달되며, 건강상 문제가 발견된 경우 비대면 진료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
쓰리제이가 서비스하는 '앳 홈 테스트(At Home Test)'는 이미 해외에서 발전 가능성을 입증한 유망 사업 분야다. 대표적인 앳 홈 테스트 기업인 미국의 ‘에벌리웰(Everlywell)’과 ‘레츠겟체크드(Letsgetchecked)’는 설립 5년 만에 기업가치 1조원을 돌파하며 '유니콘' 반열에 오르기도 했다. 반면 쓰리제이는 가능성을 입증할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비대면 진료 스타트업 가운데 최초로 사업 중단 여부를 검토하는 등 무너질 위기에 놓여 있다.
당초 미래 유망 분야로 평가됐던 비대면 진료 시장에 커다란 먹구름이 드리웠다. 수많은 스타트업들이 생존을 위해 사업을 원점부터 재검토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대다수의 스타트업이 재진 환자 수요를 흡수하기 위해 기존 사업을 유지하되, 타 사업들로 사업 범위를 확장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