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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OTT 왓챠가 자사 기술을 탈취당했다고 주장하며 LGU+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왓챠 측은 지난해 LGU+가 왓챠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통상적인 투자 검토를 위한 실사의 범위를 넘어선 자사 플랫폼 기술을 요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기술을 LGU+가 자체 OTT에 활용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 신고에 나서게 됐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LGU+ 측은 "회사 서비스에 (해당 기술을) 적용한 사실이 없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지난해 7월부터 시작된 인수합병 절차
앞서 LGU+는 지난해 10월 경영난을 겪던 왓챠에 인수·합병(M&A)을 제안했다. 인수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지난해 말 'LGU+ 왓챠 인수 포기'와 관련한 보도가 하나둘씩 나오는 등 불협화음이 제기됐다. 이에 LGU+는 "해당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면서도 왓챠에는 관련 사실이 기사화되지 않도록 '입단속'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LGU+는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왓챠에 대한 실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LG 지주회사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각종 영업 비밀을 요구했다. 당시 LGU+가 M&A를 위해 요구한 자료는 통상적인 수준을 넘어섰으나, 투자사-피투자사란 지위적 차이가 극명한 상황에서 왓챠는 과도한 기술자료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입장이었다.
지난 5월 초 LGU+는 지주사 승인이 완료됐다며 왓챠측에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 왓챠 입장에서도 지주사 승인이 마무리됐으니 후속 인수합병 절차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확신할 여지가 충분했다. 하지만 승인 후 불과 5일 만에 'LGU+가 자체 OTT 사업을 시작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왓챠 측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LGU+가 400억원 규모 신주 발행으로 왓챠 경영권을 확보하려던 계획이 왓챠의 재무적 투자자(FI)들의 반발과 왓챠 측의 490억원 규모 CB 상환 압박 등으로 인해 중단된 것으로 알려졌다. LGU+는 CB 상환 등의 핑계를 대며 지주사인 LG의 승인을 얻지 못했다고 왓챠측에 투자 철회 통보를 했다. 인수 협상을 돌연 백지화한 것이다.
왓챠 "LGU+가 민감한 자료 지속적으로 요구해"
왓챠는 대기업인 LGU+가 투자라는 미명하에 스타트업인 왓챠의 기술정보와 자료를 탈취했다고 판단, 공정위 신고에 이르게 됐다는 입장이다. 왓챠 관계자는 "LGU+가 인수합병을 위한 실사 명목으로 민감한 자료를 지속적으로 요구해 왔다"며 "심지어 플랫폼 및 유관시스템의 전체적인 설계도 및 데이터 흐름도, 프로그램 구성 정보, 데이터 수집 및 분석 방법이 기록된 핵심 문서 전체에 대한 접근 권한도 요구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왓챠는 LGU+가 투자를 확언했기 때문에 LGU+를 신뢰하고 관련 자료를 제공했다"며 "지금에 와서 투자철회를 통보하는 것은 전형적인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탈취에 해당한다"고 토로했다. 아울러 "LGU+가 요구한 자료는 실사를 위해 단순히 기술을 '검증'하는 문서가 아니라, 기술을 직접 만들 수 있는 수준의 자세한 자료"라며 "왓챠가 OTT 서비스를 선보인 후 7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구축한 모든 노하우와 OTT 서비스를 위한 개발 매뉴얼을 제공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LGU+는 약 6개월에 걸쳐 왓챠의 자료를 취득하는 등 오랜 기간 심사과정을 끌어온 것으로 나타났는데 공교롭게도 LGU+가 왓챠로부터 실사 명목으로 정보를 취득해간 시기(2022. 11~ 2023. 4)는 LGU+의 자체 OTT 사업의 개발 시기(2023. 5. 사업착수)와 겹친다는 게 왓챠 측 지적이다. LGU+가 투자를 약속하면서 필요정보를 빼가는 동시에 자체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정황 증거'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왓챠 측은 "LGU+의 기술 탈취는 스타트업 왓챠의 열악한 지위를 이용한 '갑질' 행위로 공정거래법상 기술 탈취에 의한 '사업활동방해' 행위에 해당한다"며 "LGU+는 잠재적 경쟁자가 될 상황을 숨기고 왓챠에 접근한 후, 왓챠의 핵심 기술과 영업비밀, 노하우을 취득한 것은 기망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LGU+, 기술 탈취 의혹 전면 부인
그러나 LGU+ 측은 기술 탈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LGU+ 관계자는 "미디어 분야 시너지 창출을 위해 왓챠의 지배력을 확보하고자 했으나, 유의미한 시너지가 없고 국내 OTT 시장 환경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인수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또 “비밀유지계약을 통해 통상적인 M&A 절차와 검토에서 필수적인 실사 수준을 준수하며 적법하게 검토를 진행했다”고 강조하며 과도한 기술 정보를 요구하거나 취득한 지식을 서비스에 적용했다는 일각의 의혹을 일축했다.
한편 이번 사례를 두고서 한 투자 은행가는 “인수 과정에서 데이터 유출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의 데이터를 자사의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왓챠가 유능한 투자 은행을 고용했다면 이러한 시나리오를 피해 갈 수 있었겠지만, 스타트업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불가능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움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