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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팅 성능 낮춘 H20·L20·L2 개발
미 정부 “수출 차단 목록 업데이트할 것”
반도체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도 타격 전망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가 대중국 수출 규제에 맞는 신형 반도체 칩 개발에 나선다. 미 정부의 수출 규제가 한층 강화된 데 따른 것으로, 기술의 발전을 역행해 ‘저사양’ 반도체 칩을 개발하는 엔비디아의 행보에 많은 기업이 주목하고 있다.
중국 시장 포기 못 하지만,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엔비디아
로이터통신을 비롯한 다수의 외신은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가 6일(현지 시각) 싱가포르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석해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에 맞는 새 반도체 칩을 개발할 계획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날 황 CEO는 “우리는 정부 규제에 알맞은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미 정부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며 중국 수출용 반도체 칩 개발 소식을 전했다. 이어 “새 제품을 무사히 출시할 때까지 미 정부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나아가 엔비디아는 2024년 1분기 중국 시장에 특화된 인공지능(AI) 칩을 출시할 예정이라고 중국 측 고객사들에 전달했다. 다만 엔비디아는 미국 내에서 이를 공식화하지는 않았다. 지난 11월 한 중국 매체는 엔비디아가 최신형 모델인 H100을 기반으로 미국 정부의 수출 통제 조치에 부합하는 사양의 △HGX H20 △L20 PCle △L2 PCle 등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엔비디아가 정부의 규제를 피할 새 제품을 만들면서까지 중국과의 거래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가운데 미 정부는 강한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은 최근 기자 간담회에서 “(중국은)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가장 큰 위협으로, 더 이상 친구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국가안보에 핵심인 반도체와 첨단 기술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동맹국 없이 수출을 통제한다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며 “중국이 독일이나 네덜란드, 일본, 한국 등에서 기술을 습득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우리의 수출 통제가 충분하지 않으면 중국이 미국의 기술을 활용해 핵실험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힘줘 말했다. 엔비디아를 비롯한 일부 기업이 미 정부의 수출 통제 기준을 피한 새로운 반도체 칩 개발에 나선 것과 관련해서는 “업계와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있다”면서도 “중국을 위한 모델을 설계해 출시하면 즉각 해당 모델도 수출 통제에 포함 것”이라고 경고했다.
낮춘 데 ‘또’ 낮추다
이처럼 미 정부의 수출 통제 의지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지만, 엔비디아의 수출 의지 역시 만만치 않은 모양새다. 대중국 의존도가 높은 엔비디아는 지난해 한 차례의 수출 통제로 최신 모델 H100, A100의 중국 판매가 어려워진 후 성능을 낮춰 H800, A800을 출시했지만, 이마저 수출길이 막히면서 큰 타격이 입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 10월에도 일부 반도체 칩의 중국 수출을 막는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여기에는 엔비디아의 중국 맞춤용 칩 H800, A800도 포함됐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미 정부의 추가 수출 통제 조치가 사실상 엔비디아를 겨냥한 움직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엔비디아는 추가 저사양 모델 개발로 대응했다. 중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H20, L20, L2 등 3종 모델이 그것으로, 이들 제품은 AI 작업에 필요한 대부분의 최신 기능을 포함하면서도 정부 규정에 맞추기 위해 컴퓨팅 성능 일부를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H20 모델의 경우 서버 제조업체들이 반도체를 제품에 통합하는 과정에서 일부 문제가 발생해 출시가 지연될 가능성이 큰 상태다.
지난 11월 엔비디아는 올해 4분기 중국 매출 급락이 타지역 매출 상승분을 상쇄할 정도로 클 전망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 정부의 수출 통제가 기업의 수익성을 크게 해치고 있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CNBC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기준 엔비디아 전체 매출 중 중국 매출은 22.24%로 미국(34.77%)과 대만(23.91%)에 이어 세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한다.
동맹국에도 중국 수출 차단 강요하는 미국
미국이 중국으로의 반도체 수출 통제 의지를 다시 한번 강하게 밝힌 가운데 반도체가 국가 산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우리나라도 이같은 총성 없는 전쟁의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됐다. 앞서 러몬도 장관의 발언에서처럼 미국은 자국의 반도체 직접 수출만큼이나 동맹국의 중국 교역에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올해 초 마이클 매콜 하원 외교위원장과 마이크 갤러거 하원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은 러몬도 장관에게 “일본과 한국의 기업들이 우리 기업이 떠난 중국 반도체 시장을 채우지 않도록 협조를 요구해야 한다”는 내용의 서한을 보냈고, 4월 윤석열 대통령의 방미 기간에는 미국이 한국 정부에 해당 내용을 전달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의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기술안보를 주창하는 미국의 강한 외침 속에 중국의 방대한 시장을 포기하기에도 쉽지 않은 기업들의 행보가 전 세계 반도체 생태계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이목이 쏠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