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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뒤집힌 영화 업계, 평균 홀드백 '3개월' "이미 관객들은 등 돌렸다" 홀드백 제도화 실효성 의문 제작사도 소비자도 변했다, 멀티플렉스 '새로운 활로' 모색할 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멀티플렉스(복합 영화관) 업계가 침체기를 맞이한 가운데, 영화가 극장에서 OTT로 이동하는 '홀드백' 기간에 대한 업계 논쟁이 심화하고 있다.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지난해 공개된 일반 한국 영화 상위 37편 중 24편이 평균 3개월 만에 OTT에 공개된 것으로 확인됐다. 홀드백 기간이 점점 짧아지며 영화 소비의 중심축이 본격적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3개월이면 OTT로 간다, 홀드백 기간 단축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KOBIS)에 따르면 작년 개봉한 한국 영화 총수는 664편이며, 1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일반 한국 영화는 41편(애니메이션 4편 제외 시 37편)이다. 이 중 현재 OTT에서 '무제한 스트리밍'이 가능한 작품은 24편에 달한다(개별 결제 콘텐츠 미포함). 이들 작품이 OTT에 공개되기까지 소요된 평균 기간은 극장 개봉일 기준 98일에 그쳤다.
100만 관객 이상을 동원한 영화 중 최단기간 내로 OTT에 공개된 영화는 '비공식작전'이었다. 지난해 8월 2일(이하 모두 작년 월일 기준) 개봉한 '비공식작전' 9월 15일부터 3일간 쿠팡플레이에 공개됐다. 극장 개봉 후 44일 만이었다. 10만~100만 관객 영화의 경우 △카운트(43일) △스위치(48일), △대외비(50일) △용감한 시민(65일) △멍뭉이(79일) 등이 3개월 내에 OTT 스트리밍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OTT 공개까지 100일 이상이 소요된 영화는 △범죄도시3(133일) △밀수(132일) △콘크리트 유토피아(118일) △교섭(105일) 등 8편으로, 대부분이 '흥행작' 축에 속했다.
하지만 흥행작이 무조건 홀드백 기간을 길게 둔다고는 볼 수 없다. ‘한산: 용의 출현’은 2022년 7월 27일 개봉 후 8월 29일(34일), ‘비상선언’은 2022년 8월 3일 개봉 후 9월 27일(56일)에 각각 쿠팡플레이에서 공개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정점에 달했던 지난 2021년에는 극장 개봉용으로 제작된 영화들이 OTT로 직행하기도 했다. △사냥의 시간 △승리호 △낙원의 밤 등이 대표적인 예다. 업계에서는 '극장 개봉 후 3개월 내 OTT 공개'가 시장에서 일종의 뉴노멀(시대변화에 따라 새롭게 부상하는 표준)로 정착했다고 본다.
홀드백 의무화는 무용지물? 가라앉는 멀티플렉스
홀드백 기간이 짧아질수록 관객들은 OTT 서비스를 선호하게 된다. ‘극장에 가지 않아도 곧 OTT에서 볼 수 있다’라는 인식이 관객 사이에서 확산, 극장 방문 수요가 급감하기 때문이다. 홀드백 준수가 침체기를 맞이한 멀티플렉스 업계의 몇 없는 활로로 꼽히는 이유기도 하다. 소비자와 제작사가 영화관에서 속속 등을 돌리는 가운데, 홀드백이라는 ‘안전장치’마저 사라질 경우 멀티플렉스는 그대로 시장에서 소외될 가능성이 크다.
멀티플렉스 업계는 꾸준히 '홀드백 의무화'를 주장해 왔다. 제도상에 홀드백 의무를 명시, 최소한의 경쟁력을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이 같은 요구를 수용한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11월 모태펀드(영화계정) 투자작을 대상으로 홀드백 준수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영상산업 도약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업계에서는 해당 방안의 실효성에 의구심을 품었다. 모태펀드 작품에 한정된 지원책인 만큼 시장 부양 효과가 미미한 데다 사실상 사기업들의 홀드백 협약 과정 내 정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일각에서는 홀드백 의무화가 오히려 콘텐츠의 '불법 소비'를 조장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소비자에게 OTT는 영화표 한 장 수준의 가격으로 원하는 콘텐츠를 무제한 시청할 수 있는 '가성비' 서비스다. 티켓 가격이 꾸준히 인상되는 가운데, 더 이상 영화관은 가볍게 시간을 때울 만한 '매력적인 소비처'가 아니라는 의미다. 소비자의 지갑이 닫힌 현재, 억지 홀드백은 오히려 불법 무료 콘텐츠 수요를 부추길 위험이 존재한다. OTT 공개 기간이 늦어질 경우 영화관을 찾기보다는 '누누티비' 등 불법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콘텐츠를 접하는 소비자가 증가할 수 있다는 의미다.
영화계 격변, 이젠 되돌릴 수 없다
영화 시장이 '격변기'를 맞이한 가운데, 멀티플렉스 업계의 균열은 점차 깊어지고 있다. 지난해 1~9월 기준 국내 영화관 매출액은 9,565억원으로 팬데믹 이전인 2017~2019년 동기 평균치의 70%에 그쳤다. 누적 관객 수도 56.9% 급감했다. 지난해 국내 개봉 영화 중 손익분기점조차 넘기지 못한 영화는 약 90%에 달한다. CJ CGV, 롯데컬쳐웍스 등 주요 멀티플렉스 운영사는 재무 상황 악화로 인해 벼랑 끝에 몰렸다.
업계에서는 차후 멀티플렉스 업계가 영화 개봉의 '최초 관문' 역할을 상실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영화를 제작해 극장에서 최초 공개하고, 제작사와 극장이 수익을 분배하는 전통적인 구조가 무너질 것이라는 분석이다. 콘텐츠 시장이 이전의 형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평도 흘러나온다. 이제는 멀티플렉스 업계도 새로운 '살길'을 찾아 나서야 한다는 의미다.
코로나19 팬데믹의 타격은 영화 업계의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다. 제작사는 더 이상 극장 개봉용 영화를 고집하지 않으며, 소비자는 극장 외 수많은 채널에서 영화를 시청한다. 멀티플렉스 업계를 덮친 먹구름은 과연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기 위한 과도기가 될까, 폭풍을 몰고 올 재난이 될까. 관건은 시장의 '대처'에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