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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OECD 기준 소득대체율 31.2% 그쳐, 평균치의 73.9% 실질 수령액이 월 50만원? 곳곳서 '소득대체율 제고' 요구 2055년 국민연금 적립금 소진, 소득대체율 확보는 사치인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국민연금 가입자가 가입 기간 벌었던 평균 소득 대비 받게 될 연금 수령액의 비율) 관련 논의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정책 기조를 전환하고 정부 예산을 투입해서라도 소득대체율을 제고해야 한다는 주장과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소득을 대체할 수는 없다는 주장이 충돌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재정 고갈 위기가 가시화하는 가운데, 소득대체율과 재정 안정 사이 '딜레마'가 심화하는 양상이다.
바닥 치는 소득대체율, 가난한 노인들
2021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의 공적연금 평균 소득대체율은 42.2% 수준이다. 반면 같은 기간 우리나라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OECD 집계 기준 31.2%(38년 가입 가정)로, OECD 평균치의 73.9%에 그친다. 소득 하위 70% 노인을 대상으로 지급되는 기초연금을 더한 소득대체율 역시 35.1%로 OECD 평균치보다 낮다. 38년의 가입 기간을 보유한 월평균 소득 300만원 직장인의 경우, 공적 연금으로 겨우 월 100만원 남짓한 금액을 수령하게 된다는 의미다.
사적 연금을 합하더라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는다. 국제보험협회연맹(GFIA)가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 앤 컴퍼니(McKinsey&Company)에 의뢰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공적·사적 연금을 합한 소득대체율은 약 47%로 추산됐다. 이는 OECD 권고치 대비 20∼25%p, OECD 평균(58.0%) 대비 11%p 낮은 수치다. OECD가 제시한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적정 소득대체율은 65∼75% 수준이다. 실제 미국(81.3%), 프랑스(60.2%), 일본(55.4%) 등 주요국의 연금 소득대체율은 대부분 50%를 크게 웃돈다.
실질적인 소득대체율이 각 기관의 통계치보다 훨씬 낮다는 점도 문제다. 국민연금연구원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노령연금(국민연금 가입자가 수급 연령에 도달했을 때 받는 연금) 신규 수급자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24.2%에 그쳤다. 평균 가입 기간(18.6년)이 통계 산출 시 활용되는 기준치(OECD 기준 38년, 보건복지부 40년)를 크게 밑돌며 실제 수령액이 급감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령연금 평균 급여액은 52만원에 불과했다. 기초연금 수령액을 합하더라도 근로자 평균 소득의 20%에 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소득대체율 높여라' 곳곳에서 해결책 제시
부족한 연금 수령액으로 노인 빈곤율이 치솟자, 곳곳에서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제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적정 노후소득 보장'이라는 국민연금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정부 차원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보험연구원은 30일 서울 여의도 본원에서 ‘2024년 보험연구원 운영 방향’을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개최, 국민연금 정책 기조의 전환을 제안했다. 목돈 마련을 위한 저축 기간이 종료된 이후에는 연금 상품 전환을 의무화하고, 20년 이상 수령할 수 있는 장기연금 또는 종신연금 선택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추가로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은 지난해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의 연금 재정 안정 방안을 언급, 실현 가능성 유무를 검증해 제출해 달라고 보건복지부에 주문한 바 있다. 김우창 교수가 제출한 연금 재정 안정 방안은 정부의 적극적인 국고 투입을 통해 미래 세대의 부담을 경감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김우창 교수는 정부가 GDP의 2%(약 40조원)를 연금 재정에 추가 투입할 경우, 향후 100년동안 연기금이 고갈되지 않을 것이라 분석했다. 2025년부터 해당 방안을 시행하면 소득대체율을 50%까지 제고할 수 있으며, 2125년까지 연기금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단 해당 분석은 국민연금 보험료를 3%p 인상하고, 기금운용 수익률을 1%p 올리는 상황을 전제로 도출됐다.
당장 재정 말라붙는데 소득까지 보장해라?
그렇다면 소득대체율을 제고하는 것이 무조건 '능사'일까. 일각에서는 국민연금 재정이 말라붙은 가운데 소득대체율까지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상 욕심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지난해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재정추계위원회는 2055년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제기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이 심화하며 인구 상황이 꾸준히 악화하는 가운데, 적립금까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국민연금의 재정 운영 상황이 악화할 경우 소득대체율 확보 난도는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현재 국민연금은 40년 동안 근로하며 월 소득의 9%를 납부하고, 은퇴한 뒤 근로 시 소득의 40%를 연금 급여로 수령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기금 소진 이후에는 상황이 뒤집힐 가능성이 크다. 적립금 없이 연금 지출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재정 운영 형태를 그 해 걷어 그 해 지급하는 완전부과방식으로 전환하고, 보험료율을 2055년 26.1%에서 2080년 34.9%까지 인상해야 한다. 수십 년 내로 소득대체율은커녕 재정의 유지조차 버거운 상황이 도래한다는 의미다.
국민연금의 재정 상황이 꾸준히 악화하자, 일각에서는 연금만으로 노후의 소득 공백을 완전히 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지적마저 제기된다. 나라 곳간과 민생부터가 풍족하지 못한 현재의 우리나라에서는 △보험료율 인상 △정부 재정 추가 투입 등의 방안이 오히려 '리스크'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각계의 입장 차이가 점차 극명해지는 가운데, 제자리를 맴돌고 있는 정부의 '연금 개혁'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