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美 연준, FOMC 회의서 5회 연속 기준금리 동결 결정 점도표 금리 중간값 4.6%, ‘연내 세 차례 인하’ 시사도 매파에서 비둘기파로 돌아선 이유는 '과잉 긴축' 우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5.25∼5.5%로 동결했다. 지난해 9월, 11월, 12월과 올해 1월에 이어 5연속 동결이다. 함께 제시한 점도표에서는 올 연말 금리를 4.5~4.75%로 제시했다. 현재 금리를 정점이라 가정했을 때 세 차례 인하할 것이란 전망이다. 이는 연준이 인플레이션 둔화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과잉 긴축' 가능성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美 연준 5연속 금리 동결, 5.25~5.5% 유지
연준은 20일(현지시간) 공개한 3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성명에서 5.25~5.5%이던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성명문에서는 고용시장을 설명하는 부분이 변경됐다. 앞서 연준은 지난 1월 “일자리 증가는 지난해 초부터 완화됐지만 여전히 견조하다”고 표현했으나 이번 성명문에는 “일자리 증가는 여전히 연조하다”고 수정됐다. 이를 제외하면 성명문은 전과 동일하다. 최근 인플레이션 둔화 속도가 느려졌지만 큰 그림에서 볼 때 1월 FOMC 당시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연준은 이날 성명문과 함께 공개한 경제전망요약(SEP)에서 물가 지표인 연말 개인소비지출(PCE) 상승률 전망을 2.4%로 제시하면서 12월과 같은 수치를 제시했다. 다만 근원 PCE 전망은 12월 2.4%에서 2.6%로 0.2%포인트 높였다. 근원 PCE에 대한 내년, 내후년 전망은 각각 2.2%, 2.0%로 같다. 올해 근원 PCE의 둔화세가 소폭 느려지긴 하겠으나, 결국 내년 이후 중기적인 물가 전망이 달라지지는 않은 것으로 관측된다.
이밖에 성장률과 고용은 사실상 골디락스(goldilocks·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상태) 전망을 제시했다. 올해 미국 국내총생산(GDP) 전망은 2.1%로 봤으며 12월 1.4%에서 대폭 끌어올렸다. 이는 미국의 잠재성장률(1.8%)을 뛰어넘는 수치로, 사실상 이번 긴축 주기에서 눈에 띄는 경제 둔화가 없다는 전망을 제시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실업률 전망은 12월 4.1%에서 4.0%로 오히려 내렸다. 연준은 4.1%의 실업률이 내년과 내후년을 넘어 장기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연내 금리 전망은 4.6%로 12월과 동일하게 제시했다. 다만 내년 최종금리 전망은 3.9%(중간값)로 예상함으로써 지난해 12월에 제시한 예상치(3.6%)에서 0.3% 포인트 높였다. 내년에 0.25% 포인트씩 4차례 금리 인하가 있을 것이라는 당초 예상에서 '3회 인하'로 빈도를 낮춘 것이다. 2026년 말 이후의 장기 금리(longer run)도 2.6%로 예상하며 지난해 12월에 제시한 예상치(2.5%)에서 0.1% 포인트 상향했다.
과잉 긴축 우려에 따른 금리 동결
시장에서는 연준의 이번 금리 동결을 두고 연준이 과잉 긴축을 우려한 데 따른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연준은 금리와 통화량 조정을 별도의 정책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대차대조표 축소'라 불리는 양적 긴축(QT)은 연준이 보유한 채권을 매각하거나 만기 후 재투자하지 않는 식으로 시중 유동성을 흡수한다.
현재 연준은 7조7,000억 달러(약 1경원)의 국채를 비롯해 모기지증권(MBS) 등의 보유 자산을 월간 800억 달러(약 106조원)씩 시장에 내놓으며 긴축을 지속하고 있다. 또한 연준은 지난 2022년 3월부터 기준금리를 올리기 시작했고, 같은 해 6월에 양적 긴축을 시작하는 등 공개시장 계정(SOMA) 포트폴리오 조정을 통해 대차대조표 규모를 줄였다. 2022년 6월 이후 첫 3개월은 매월 475억 달러(국채 300억 달러, MBS 175억 달러)가 축소됐고, 그해 9월부터는 그 규모가 월간 950억 달러(국채 600억 달러, MBS 350억 달러)로 늘어났다.
전문가들은 현시점 연준이 2019년 머니마켓 사태를 반면교사 삼고 있다고 진단한다. 지난 2019년 9월, 미국 머니마켓 금리가 일시적으로 폭등하면서 연준의 통화정책 실행력에 대한 의구심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2% 초반대를 유지하던 무위험 지표금리(SOFR)의 1일물 금리는 순식간에 5%를 넘어섰다. 이뿐 아니라 연준 정책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는 실효연방금리(EFFR) 기준으로 연준의 당시 목표 범위였던 2.00~2.25% 상단을 뚫기도 했다. 연준이 머니마켓에 대한 통제력을 일시적으로 상실했다는 의미다.
이에 연준은 같은 해 7월, 당초 예정보다 2개월 앞당겨 양적 긴축을 종료하긴 했으나 사태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머니마켓이 한바탕 뒤집어지고 나서야 연준은 서둘러 단기 유동성을 푸는 방식으로 대응에 나섰다. 당시 양적 긴축 과정에서 미국의 명목 국내총생산(NGDP) 대비 은행 지급준비금 잔액 비율은 7% 안팎 수준까지 떨어졌는데, 이 7% 선을 경계로 사태가 터진 것이다.
또한 연준은 이민자 유입 증가 및 노동시장 참여 확대 등과 같은 일시적인 공급 측 요인이 끝나면 긴축의 여파가 갑자기 가파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파월 의장은 지난 1월 31일 FOMC 후 기자회견에서 "(공급 측 회복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을 것"이라며 "이 상황이 중단되면 (통화) 긴축 효과가 더욱 가파르게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패트릭 하커 필라델피아 연방준비은행 총재도 수요를 지탱했던 코로나19 팬데믹 부양책의 반짝 효과가 힘을 잃고 있다고 짚으며 "최근 신용카드 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것은 소득 하위에서 중간 구간의 소비자들이 돈을 소진해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지적했다.
CRE 대출 부실도 연준 결정에 영향
미국의 자산시장 부실도 연준의 비둘기파적 결정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미국 상업용부동산(CRE) 대출 부실이 커지면서 글로벌 금융 위기로 확산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CRE 대출채권담보부증권(CLO)의 1개월 이상 연체율은 지난해 7월 1.7%에서 올 2월 7.4%로 급격히 뛰었다. 7개월 만에 연체율이 4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저금리 시대’였던 10년 전에 이뤄진 것으로, 현재는 금리가 2배 이상 오른 데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까지 크게 위축되면서 시장이 휘청거릴 것이란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현재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팬데믹 당시 재택근무 등으로 인한 공실률 증가, 지속된 고금리 등으로 부동산 담보가치가 대폭 하락했다. 맨해튼, 실리콘밸리 등 주요 상권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공실률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CLO 시장도 위태롭기는 마찬가지다. 월가에 따르면 이미 발생하고 있는 연체 손실의 상당 부분은 CLO의 발행사가 직접 구매하는 방식으로 떠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CLO 발행사들은 연체 대출 가운데 13억 달러(약 1조7,300억원)를 사들였는데, 이는 2022년(4억8,000만 달러)의 3배 규모다. 지난 1월 CLO 연체율이 정점(8.6%)을 찍고 2월에 내려간 배경도 여기에 있다.
미국 중소 은행이 흔들릴 가능성이 커졌다는 우려도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1조 달러(약 1,300조원) 규모의 CRE 대출 가운데 약 70%는 중소·지역은행에서 이뤄졌다. 투자자문회사인 클라로스그룹이 약 4,000개 미국 은행들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82개 기관이 CRE에 대한 대출 비중이 자본의 300%를 넘어가거나 미실현 손실 확대로 인해 자기자본비율이 4% 이하인 것으로 파악됐다. 고금리 환경이 지속됨에 따라 미실현 손실 부담이 증폭된 것이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파산에까지 이르진 않더라도 일부 은행들은 사실상 '좀비 은행'으로 연명하는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