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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주의 지도자 밀레이, 선거기간 반중 발언 쏟아냈지만
IMF 차관 상환 부담에 취임 후 中에 통화스와프 갱신 요청
브릭스 가입 철회·나토 가입 추진 등 美·中 간 줄타기 외교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아르헨티나가 최근 '차이나 머니'를 얻기 위해서 실리 외교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극우 성향의 밀레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비난하는 등 강경 발언을 쏟아냈지만, 취임 직후 중국 정부에 직접 서신을 보내 통화스와프 계약 갱신을 요청하는 등 친중 기조로 급선회한 것이다. 다만 국방과 방산 분야에서는 여전히 미국을 동맹국이라고 강조하며 서방과의 파트너십을 강화하는 등 미·중 간 '줄타기 외교'를 확장하는 모습이다.
中과의 단교 선언했던 밀레이, 차이나 머니에 변심
18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중국에 대해 실용적인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극우 성향의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밀레이 대통령은 그동안 공산주의와 공산당에 대해 확고한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그는 지난해 선거 기간 내내 중국 공산당 지도부를 '암살자'라고 칭하거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중국과 단교하겠다고 주장하는 등 반공·반중 발언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취임 직후 밀레이 대통령의 대중 기조는 180도 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보낸 취임 축전에 감사 인사를 전하며 화해 제스처를 보냈고 시진핑 주석의 특사로 취임식에 참석한 우웨이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 부위원장과의 면담에서는 경제·무역·인문 등 각 영역에서 양국 간 교류·협력이 심화·발전하기를 희망한다고 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중국의 투자와 무역이 아르헨티나의 미래에 필수적이라고 언급하는 등 대중 실리 외교로의 전환을 시사했다.
밀레이 대통령의 스탠스 변화는 아르헨티나의 열악한 재정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12월 중국 정부는 밀레이 대통령의 반중 발언에 반발해 65억 달러(약 8조7,000억원) 규모의 양국 간 통화스와프 협정을 중단했다. 그러다 밀레이 정부가 친중 기조로 선회하자 중국은 지난 6월 통화스와프 계약을 갱신했다. 외환 보유고가 고갈된 아르헨티나 입장에서는 차이나 머니 덕분에 국제통화기금(IMF) 차관 상환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에 밀레이 대통령은 "이번 스와프 연장이 재정적 안정을 제공했다"며 중국 정부에 감사를 표했다.
아르헨 2대 교역국 中, 광업 등 해외 직접투자 확대
중국은 아르헨티나의 무역에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실제로 중국은 브라질과 함께 아르헨티나의 2대 교역국이다. 지난해 양국 간 무역액은 200억 달러(약 26조7,000억원)로 대미 무역액 140억 달러(약 18조7,000억원)를 크게 상회했다. 중국이 아르헨티나의 광업, 석유·가스, 금융, 건설 등에 대한 투자를 늘리면서 2015년 이후 대아르헨티나 해외 직접투자가 5배 늘었고 총투자액은 30억 달러(약 4조원)를 넘어섰다. 아르헨티나의 대중 수출도 최근 20년 동안 8배 증가했다.
중국 기업의 현지 투자도 확대됐다. 2019년 중국 상하이전력건설유한책임공사(SEPCC)는 아르헨티나 북부 후후이 지역에 300MW(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건립했고, 중국 기업 골드윈드는 아르헨티나 남부 추부트와 미라마 지역에 풍력 발전소를 세웠다. 2022년에는 남미 주요국 중 처음으로 중국과 '일대일로 양해각서'를 체결해 현재 중국 기업 칭산, 쯔진마이닝, 간펑리튬 등이 현지에서 대규모 리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농·축산업도 친중 실리 외교에 힘입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는 세계 5대 대두·옥수수 생산국임에도 지난해 극심한 가뭄을 겪으면서 수확량이 급감한 데다, 페소화 평가 절하를 우려한 농부들이 대두와 옥수수를 판매하지 않으면서 사실상 수출이 중단됐다. 하지만 올해 들어 중국이 15년 전 교역을 중단했던 아르헨티나산 옥수수와 함께 대두의 수입을 재개했고, 축산업 부문에서도 지난해 아르헨티나산 소고기 44만6,000톤을 수입한 것으로 파악됐다.
美 전투기 도입 등 국방·방산 분야에서는 '탈중국'
다만 그렇다고 아르헨티나가 완전히 친중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밀레이 대통령은 전통적인 우방국인 미국이 여전히 아르헨티나 최고의 동맹국이라고 강조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NATO) 가입도 이러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앞서 지난 4월 루이스 페트리 아르헨티나 국방부 장관은 벨기에 브뤼셀 나토 본부에서 미르체아 제오아너 나토 사무부총장을 만나 글로벌 파트너십 수립을 요청하는 의향서를 전달했다. 이날 회동에서 페트리 장관은 "나토 표준에 따라 군대를 현대화하는 연결고리가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전했다.
밀레이 정부는 나토 가입을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주요국과의 접점을 확보하는 최적의 방안으로 보고 외교·안보 네트워크의 확장을 기대하고 있다. 이는 전임 정부의 기조와는 상반된다.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은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브릭스(BRICS·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 가입에 공을 들였다. 하지만 밀레이 대통령은 1월로 예정됐던 브릭스 가입을 철회한 데 이어 2월에는 이스라엘 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로 하는 등 외교·안보의 기축이 서방과의 동맹에 있음을 분명히 했다.
방산 분야에서도 탈중국 행보를 보였다.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페르난데스 정권에서는 노후 전투기 교체 사업에서 중국산 전투기 도입이 유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극심한 재정난으로 전투기 구매가 보류됐고 이후 밀레이 대통령은 덴마크에서 퇴역한 미국제 F-16을 구매하기로 했다. 현지 언론 인포에바는 "중국산 신형 전투기보다 훨씬 저렴한 F-16을 구매한 데다 미국 정부가 지정학적 이유로 아르헨티나의 전투기 구매에 대해 수년간 제재를 가해 온 영국 정부를 설득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