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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건설 지난해 영업손실 415억원, 부채비율 817% 기록
이수화학 지원 사실상 불가능, 결국 영구채 발행 나서
침체하는 건설 회사채 시장, 영구채 발행 금리도 상승 가도
부실 문제에 직면한 이수건설이 영구채 발행에 나섰다. 뒷배 역할을 하던 이수화학이 덩달아 침체에 빠지면서 외부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자구책을 마련한 것이다. 다만 이자비용 부담이 너무 커 추가 자금 조달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회사의 기초 현금이 부족한 만큼 당장의 이자비용을 지출하는 것만으로 재정 악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이수건설 영업손실 4,522% 급증
1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이수건설의 매출액은 5,388억원으로 전년 4,671억원 대비 15.3% 증가했다. 반면 영업손실은 415억원을 기록해 전년 9억3,000만원보다 4,522% 급증했다. 이수건설의 매출액과 영업손실액이 반비례를 이룬 건 고질적인 원가율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탓이다. 지난해 이수건설의 매출원가율은 5,497억원으로 매출액의 102%에 달했다. 2022년 매출원가율이 93%였음을 고려하면 1년 새 약 10%가량이 증가한 셈이다.
부채비율도 해가 다르게 커지고 있다. 최근 3년간 이수건설의 부채비율은 ▲2021년 297% ▲2022년 361% ▲2023년 817%였다. 매입채무와 장·단기차입금이 급증한 것이 원인이다. 이수건설의 매입채무는 2022년 584억원, 2023년 913억원으로 1년 새 56.2% 늘었다. 단기차입금은 지난해 563억원으로 전년 137억원 대비 무려 311%나 증가했고, 장기차입금 규모 역시 지난해 251억원으로 전년보다 30.2% 커졌다.
200억원 영구채 발행, 30년물에 금리 연 8.5%
이런 가운데 시장에선 그간 이수건설의 뒷배 역할을 해 온 이수화학이 이번에도 지원을 이어갈지 여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이수화학은 2009년 이수건설을 인수한 이후 2013년까지 이수건설에 1,760억원을 출자했다. 2018년과 2021년에도 각각 600억원, 700억원을 출자했다. 특히 2018년엔 출자금 마련을 위해 서울 반포의 본사 사옥을 매각하기도 했다. 이수건설에 대한 출자 금액을 합하면 약 3,000억원가량으로, 이수화학의 시가총액(1,904억원)보다 큰 규모다.
다만 앞으론 이수화학으로부터 자금을 조달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팽배하다. 이수건설의 자금난이 장기화하면서 이수화학의 부담도 커졌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1분기까지 이수건설 차입금에 대한 이수화학의 지급보증 규모는 890억원이었다. 과도한 재무 지원으로 부담이 커지면서 등급 전망도 하향 조정됐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 6월 이수화학의 신용등급을 BBB로 유지하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수건설은 자구책 마련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지난 10일 200억원 규모의 신종자본증권(영구채)을 발행한 게 대표적이다. 영구채는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인식되고 차환에 활용될 경우 부채 축소 효과를 함께 누릴 수 있어 재무 안정성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이번에 발행된 영구채는 30년물로 오는 2054년 9월 만기가 도래한다. 최초 이자율은 8.5%이며, 발행일로부터 5년이 지난 시점부터 3%씩 이자율이 가산된다.
이자비용 부담 확대, 저금리 영구채 발행은 사실상 불가능
문제는 이자비용 부담이 큰 탓에 영구채를 활용한 자구책 마련도 어려워졌단 점이다. 이수건설은 지난해에도 영구채 발행을 단행한 바 있다. 당시 이수건설은 800억원 규모 30년물 영구채를 발행해 이자비용으로 28억원을 지출했다. 이에 따라 회사의 연간 이자비용은 2022년 34억원에서 지난해 62억원으로 2배 가까이 급증했다. 지난해 말 기준 회사의 보유 현금이 252억원가량이었으니 이번 영구채 발행으로 인한 이자비용을 감당하는 것도 버거울 수 있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건설 회사채 수요가 하락하면서 금리가 높아지고 있단 점도 악재다. 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HL D&I 한라는 기관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회사채 700억원 발행을 위한 수요 예측을 진행했으나 한 건의 주문도 받지 못했다. 최대 연 8.5%의 고금리를 제시했음에도 수요가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시공능력평가 28위의 중견사 한신공영은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하며 연 9.5%의 금리를 내놓기도 했다. 한신공영 관계자는 "지난해 회사채 발행을 타진했으나 당초 목표치에 한참 모자란 바 있다"며 "회사채 흥행을 위해 특정 개인이나 기관 투자자를 대상으로 고금리를 보장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전했다.
물론 저금리에 회사채 발행을 성공한 경우가 아예 없는 건 아니다. 현대건설은 지난 1월 연 4.1~4.4% 금리의 회사채 수요 예측에서 당초 목표액 1,600억원의 4배가 넘는 6,850억원의 매수주문을 받은 바 있다. 같은 달 SK에코플랜트도 5.4~5.8% 정도의 금리로 7,000억원의 매수주문을 받았고, 4.7% 금리의 롯데건설 회사채 수요 예측엔 3,440억원이 몰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기업은 그룹사가 탄탄한 대형 건설사인 만큼 불확실성이 높은 중견사 수준인 이수건설과는 환경 자체가 다르다.
중견사 중에서도 4.2~7.3%의 저금리로 회사채를 발행한 KCC건설의 사례가 있긴 하나, 이는 본사 사옥을 담보로 조달 금리를 낮춘 결과다. 이수화학의 조력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담보를 내놔 리스크를 높이는 건 자충수가 될 우려가 있다. 결국 이수건설이 이 방안을 택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