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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메디치가(Medici family) 사례가 보여주는 ‘자본-권력의 결탁과 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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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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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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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 독점, 파벌 형성, 재산 증식’ 과정 적나라하게 보여줘
부정부패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도 심화
열린 민주 정치 체제하에서도 ‘동일한 역사’ 되풀이

더 이코노미(The Economy) 및 산하 전문지들의 [Deep] 섹션은 해외 유수의 금융/기술/정책 전문지들에서 전하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담았습니다. 본사인 글로벌AI협회(GIAI)에서 번역본에 대해 콘텐츠 제휴가 진행 중입니다.

메디치 가문은 거의 3세기 동안 막대한 부를 통해 피렌체 공화국(Republic of Florence)을 사실상 지배하면서 예술에 대한 아낌없는 후원을 통해 피렌체를 유럽의 문화 중심지로 발전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메디치 가문의 역사는 예술 발전에 대한 기여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막대한 부를 동원해 정치 제도를 사유화하고 부를 축적한 ‘부패’의 역사였다. 메디치 가문이 공직(public office)을 개인 재산 증식의 수단으로 이용해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킨 과정은 오늘날의 정치 지형에서도 되풀이되는 주제로 되돌아보고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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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EPR

메디치가, 막대한 재력 이용해 공직자 선발 ‘사유화’

1433년 9월 코시모 데 메디치(Cosimo de' Medici)는 공직자 선발 결과를 본인의 이익을 위해 조작하려 한 혐의로 시뇨리아(Signoria, 당시 피렌체 공화국 정부)에 소환되어 추방 위기를 맞았다. 코시모가 군대에 대한 재정 지원을 부각시키며 스스로가 공화국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해 한 말은 유명하다. “병사들에게 월급을 누구 돈으로 받았는지 물어보시오. 나는 정부에 돈을 갚으라고 재촉한 적도 없소.”

코시모가 추방에서 돌아오면서 메디치가의 피렌체 정치 지배의 막이 오른다. 재정적 영향력을 이용해 정치권에 사적 네트워크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공공재를 유용하기 시작하고, 이 과정에서 공화국 시민의 신성한 의무로 여겨졌던 공직은 사재 축적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한다. 오래된 역사적 사실이지만 아무리 열린 정치 체제라고 해도 독점 자본에 의해 오염되고 타락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는 교훈을 주기에 충분한 이야기다.

12세기에 세워진 피렌체 공화국은 선거와 ‘트라테’(Tratte)라고 불린 제비뽑기를 결합한 통치 제도를 운용해 다수의 정치 참여를 촉진하고 명망가들 간 힘의 균형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부패와 착취를 예방했다. 하지만 ‘롬바르디아 전쟁’(Lombardy Wars)으로 인한 군비 지출로 재정 위기가 찾아오며 코시모와 같은 재력가들에게 권력의 기회를 헌납하게 된다.

1420년대 초 메디치 가문은 시의 재정 궁핍 상황을 이용해 공화국의 주요 채권자로 자리매김하고 막강한 협상력으로 공직자 선출 과정을 사유화한다. 자료에 따르면 당시 공화국에 발행된 채권의 거의 절반이 메디치 가문과 파벌에서 나왔다고 하니 영향력이 어느 정도였을지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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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집단별 피렌체 공화국에 대한 채권 보유 규모(1427~1434년)
주: 채권 보유 비율(%)(좌측 Y축), 집단 구성원별 유동자산 보유액(1427년, 단위: 플로린)(Y축), 중도파(Split Loyalty), 메디치 반대파(Medici’s opponents), 메디치 가문 및 파벌(Medici’s faction), 1인당 정부 융자액(Per cap. loan, *집단 소속 개인이 정부로부터 빌릴 수 있었던 대출액), 플로린(fl.s, 당시 피렌체 공화국 화폐), 코시모 데 메디치 보유 채권(Cosimo de’ Medici)/출처=CEPR

‘정치적 파벌 형성’ 후 ‘개인 재산 축적’ 본격화

결국 메디치 가문의 영향력은 공직자 선발 과정을 체계적으로 사유화해 반대파 인사들의 선출 가능성을 낮추고 본인 파벌에서 더 많은 당선자가 나오게 함으로써 키워졌다. 이에 대한 증거로 또 다른 연구 자료는 메디치 가문 득세 이후 정치적 소속과 공직 진출 간 뚜렷한 상관관계가 생겼음을 보여주는데, 반대 파벌의 정치 참여가 줄어드는 반면 메디치가 충성파들의 재임 기간은 상당히 증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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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집단별 구성원들의 기간별 공직 재임 빈도 비율(%)(5년 단위)
주: 연도(X축), 확인된 집단 비율(좌측 Y축), 미확인 집단 비율(우측 Y축), 메디치 반대파(청색), 메디치파(갈색), 중도파(연두), 미확인 집단(주황)/출처=CEPR

한편 메디치 가문 지배하에서 만들어진 이러한 정치 지형의 변화는 개인 재산의 축적과도 뚜렷한 연관 관계를 보여준다. 메디치 지배 이전에는 공직 진출과 축적 재산 간 의미 있는 상관관계가 없었으나 메디치 득세 이후 공직자들에게 주목할 만한 부의 증가가 나타나는 것이다. 이 시기부터 공직 진출의 목적이 공익에 봉사하는 것이 아닌 개인적 치부로 변화했다는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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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 재임 기간과 재산 축적 간 상관관계
주: 연도(X축), *1427: 메디치 득세 전인 1393~1426년 기간, *1457, 1480: 메디치 득세 후인 1427~1456년, 1457~1480년 기간, 상관계수(Y축), 95% 신뢰구간/출처=CEPR

'독점 자본'과 '정치권력' 만나는 곳에 '부정부패' 무르익어

메디치 가문과 파벌들이 정치 제도를 사유화해 막대한 부를 축적하면서 부의 불평등은 한층 심화하고, 여기에 더해 공공재 횡령과 후원자 네트워크(networks of patronage) 형성을 통해 메디치 편 공직자들이 유리한 조건의 융자와 계약을 독점하면서 그들의 재산과 영향력은 더욱 공고화된다. 심지어 공화국이 지불하는 이자율까지 공직 재임 기간이 긴 가구에 더 높았다.

메디치가의 통치 시기는 예술과 문화 융성에 대한 기여로 칭송받는 경우가 많고, 실제로 피렌체 공화국을 유럽의 문화, 경제, 정치 중심으로 만드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치 제도를 사유화하고 부당하게 부를 편취해 소득 불평등을 영속화한 비난을 피할 수 없는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이러한 역사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막대한 부와 정치권력이 만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부패와 공권력 남용이 무르익을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디치가의 사례는 막대한 부의 편중이 정치 체제에 여전히 영향을 주고 있는 오늘날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아무리 견제와 균형이 보장된 열린 민주 정치 체제라 해도 공권력이 독점 자본과 결탁하여 부정과 부패로 이어진 사례는 넘치고, 가능성 또한 상존하기 때문에 정치 체제가 도덕성을 유지해 소수의 부자들이 아닌 공중의 이익에 봉사할 수 있도록 한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원문의 저자는 마리안나 벨록(Marianna Belloc) 로마 사피엔자대학교(Sapienza University Of Rome) 교수 외 2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he Medici’s quiet coup: How the wealthy bend politics without shifting institution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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