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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밸류업 프로그램 무용지물이었나" 금융당국, K증시 패닉에 2,000억원 투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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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증시 낙폭 과도하다" 밸류업 펀드 이번 주부터 집행
뒷걸음질하는 국내 기업 PBR, 밸류업 프로그램 '유명무실'
제도적 허점이 기업가치 부양 발목 잡아
18일 오전 서울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병환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이 최근 국내·해외 주요국 증시 동향과 국내 증시의 외국인·기관투자자 등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향후 대응방향을 논의하고 있다/사진=금융위원회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이 2,000억원 규모의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펀드 자금 집행을 시작한다. 최근 한국 증시 낙폭이 과도한 만큼 대규모 자금을 투입해 증시 수급을 개선하겠다는 구상이다. 당국의 증시 개입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시장에서는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증시 낙폭 과도" 당국 개입 본격화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8일 오전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 및 시장 전문가와 함께 '증시 상황 점검회의'를 개최, 최근 국내·해외 주요국 증시 동향과 국내 증시의 수급 상황을 점검하고 대응 방향을 논의했다. 회의에 참여한 유관기관과 시장 전문가들은 최근 미국 대선 이후 본격화한 '트럼프 트레이드'의 영향으로 글로벌 금융 시장의 투자 자금이 미국으로 집중되고 있으며, 전반적인 증시 변동성이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미국 증시가 최고점 경신 이후 다소 조정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향후 정책 동향에 따라 변동성이 높은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고 봤다. 국내 증시의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에 따른 불확실성은 있으나, 최근 낙폭은 다소 과다한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회의 참가자들은 외국인 투자자의 수급 변동성이 높은 상황인 만큼 기관 투자자가 중·장기적 관점에 따라 투자 관련 판단을 내리고, 국내 증시에서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이에 한국거래소 등 유관기관은 국내 증시 수급 개선을 위해 2,000억원 규모의 밸류업 펀드 조성을 확정하고 이번 주부터 자금 집행을 시작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3,000억원 규모의 2차 펀드 조성도 추진한다.

힘 못 쓰는 '밸류업 프로그램'

당국이 증시 부양을 위한 개입을 선언한 가운데, 시장은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지 1년이 다 돼가는 현시점에도 국내 증시가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밸류업 프로그램은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마련된 정책으로, 자발적인 기업가치 제고 계획에 따른 인센티브, 코리아 밸류업 지수·ETF(상장지수펀드) 조성 등을 골자로 한다.

문제는 밸류업 프로그램이 등장한 이후 국내 기업들의 주가순자산비율(PBR·Price Book-value Ratio)이 오히려 뒷걸음질 쳤다는 점이다. 한국거래소 정보데이터시스템에 따르면 정부가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한 2월 23일부터 이달 13일까지 PBR이 감소한 곳은 상장사 2,601곳 중 무려 72.0%(1,873곳)에 달한다. 분석 대상은 한국거래소에 상장된 전체 기업(2월 2,616곳, 11월 2,678곳) 중 비교가 가능한 2,601곳으로 한정했다.

PBR이 1배 이하인 기업도 늘었다. PBR이 1배가 되지 않는 기업은 2월 23일 1,085곳에서 이달 13일 1,372개로 26.5%(287곳) 증가했다. 밸류업 프로그램이 본격화한 올해 초보다 오히려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곳이 30%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상장사의 PBR이 1배 이하라는 것은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 못 미칠 정도로 저평가됐다는 의미다.

밸류업 프로그램의 허점

업계에서는 기업들의 밸류업 참여를 유도할 요인이 적은 상황에 증시 약세가 겹치며 밸류업 프로그램이 실효성을 잃었다고 본다. 실제 법인세 인하 등 기업의 밸류업을 유도할 만한 정책은 대부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지난 7월 정부는 밸류업 프로그램 참여 기업에 대한 법인세 인하와 배당소득 분리과세 혜택이 담긴 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해당 개정안은 야당의 반대로 의결되지 못했다.

한국거래소가 야심 차게 내놓은 코리아 밸류업 지수 역시 종목 선정과 관련해 비판을 받았다. 한국거래소는 시가총액 상위 400개 종목 중 △최근 2년간의 실적 △배당 또는 자사주 소각 여부 △PBR과 ROE(자기자본이익률) 등을 기준으로 100개 종목을 선정했다. 주목할 만한 부분은 선정된 100개 종목 중 배당수익률이 1.5% 미만인 기업이 전체의 절반에 달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기준 배당 성향이 20% 미만인 기업 역시 49개나 담겼다. 반면 밸류업 프로그램 '우수생'으로 꼽혔던 KB금융·하나금융 등 금융지주사는 밸류업 지수에 합류하는 데 실패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재벌 지배 구조 등 한국 산업계 특유의 문화가 밸류업의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 증시 전체 시가총액 중 대기업 집단이 소유한 주식이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문제는 대기업 지분 대부분을 소유한 재벌 일가가 주가 상승을 꺼린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관계자는 "주가가 오르면 재벌 일가가 경영권 방어에 투입하는 비용과 상속세가 늘어나게 된다"며 "주가가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이상, 시장 규모 성장도 더딜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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