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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T, 1.2조 들여 SK브로드밴드 지분 인수 인수 조건으로 붙었던 SKB IPO 추진 안 하기로 "급변하는 시장에 IPO 추진보다는 시너지 확보"
SK텔레콤이 2020년 내줬던 자회사 SK브로드밴드 지분을 4년 만에 회수한다. 지분 인수대금 약 1조1,500억원 가운데 일부는 회사채 발행을 통해 충당한다는 방침이다. SK텔레콤이 미래에셋그룹에서 SK브로드밴드 투자를 유치할 때 조건으로 내걸었던 기업공개(IPO)는 추진하지 않기로 했다.
SKT, SKB 지분 회수
18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SK텔레콤은 태광산업과 미래에셋그룹이 보유하고 있는 SK브로드밴드 지분 24.76%를 인수할 예정이다. 총 거래금액은 1조1,459억원이며, 취득 예정일자는 내년 5월 14일이다. 거래가 완료되면 SK텔레콤은 SK브로드밴드 지분 99.14%를 확보하게 된다.
태광산업은 보유하고 있던 SK브로드밴드 지분 16.75%를 SK텔레콤에 넘기면서 7,776억원을 받을 예정이다. 미래에셋그룹은 지분 8.01%를 매각해 3,706억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은 거래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9월 말 SK텔레콤의 별도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은 1조446억원이다. 이 중 일부는 회사채 발행 규모를 늘려 확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SK브로드밴드에도 11번가 그림자?
그간 시장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IPO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 2020년 2월 티브로드와 합병하면서 미래에셋그룹과 태광산업으로부터 4,000억원을 투자받았는데, 당시 SK브로드밴드는 5년 내 IPO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2020년 예정됐던 IPO가 코로나19로 1년 미뤄졌으나 이후에도 구체적인 상장 시도는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앞선 11번가 손절에 분노한 투자자들 달래기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비등하다. 지난해 SK그룹은 11번가에 대한 콜옵션을 포기했다. 11번가 최대주주(지분율 80.26%)인 SK스퀘어는 올해 초까지 FI가 보유한 11번가 지분을 살 수 있는 권리가 있었지만 이를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에 당시 SK그룹은 배임 소지가 있어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실상은 11번가의 사업 가치가 떨어져 떼어내기로 결정했을 뿐 배임은 핑계에 불과하다는 시각이 팽배했다. 해당 사태 후 투자업계에선 앞으로 출자자(LP)들이 앞으로 콜앤드래그(call and drag) 구조를 허용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까지 제기됐다. 기업 입장에서는 풋옵션 밖엔 선택권이 없어지게 됐으며, 이미 콜앤드래그 구조를 짜놓고 투자한 곳들은 서둘러 회수 추진에 나설 것이란 얘기도 나왔다.
투자자들, 재무부담-이익기여 놓고 셈법 복잡
이 때문에 SK브로드밴드 투자자들의 셈법도 복잡해졌었다. 실적이 부진한 11번가와 달리 SK브로드밴드는 안정적인 이익을 내고 있어 상황은 다르지만, 양사 모두 IPO를 약속하는 등 투자유치 조건이 유사했던 탓에 SK브로드밴드 입장에선 회수 전까진 SK그룹의 행보를 예의주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실제 SK브로드밴드의 사정은 11번가와도 상당 부분 닮아 있다. SK그룹 측은 2018년 보장수익률 3.5%, 5년 내 IPO, 콜앤드래그 조건으로 11번가 FI를 유치했다. 올해 상장에 실패하더라도 SK그룹이 FI 지분을 사줄 것이란 예상이 많았지만, SK그룹은 콜옵션을 포기했다. 그간 경영 환경이 크게 달라졌고, 콜옵션 행사 시 배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와 관련해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SK스퀘어 경영진과 이사회는 FI를 유치할 당시의 기업가치로 11번가 지분을 되살 경우 배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로 콜옵션을 행사하지 않았다"며 "이 같은 논리는 SK텔레콤과 SK브로드밴드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