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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2 전차 ,폴란드 2차 수출 계약 난항 개량 후 현지 생산으로 가격 인상 정책금융 부족에 따른 출자 지연도 발목
현대로템이 생산하는 K2 전차의 폴란드 2차 수출 계약 절차가 늦어지는 가운데, 현지에서 가격이 비싸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있다. 현대로템은 2차 계약 물량부터 폴란드 군의 요구에 맞춰 성능을 개량하고 일부는 현지에서 생산할 계획이지만, 초기 수출 모델보다 가격이 높아지면서 협상 과정이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2차 계약, 6조원 이상 추정
26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폴란드는 지난 2022년 8월 K2 전차 180대를 수입하는 4조5,000억원 규모의 1차 계약을 현대로템, 방위사업청 등과 체결했다. 이후 연내 계약 체결을 목표로 2차 계약 관련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 1차 계약분인 180대는 K2GF(K2 Gap Filler)로 불리며, 우리 육군이 사용하는 장비와 동일한 사양으로 현대로템 창원사업장에서 생산해 폴란드에 납품하고 있다. 현대로템은 내년까지 1차 계약분 납품을 마무리할 방침이다.
2차 계약이 체결되면 성능 개량형 모델인 K2PL(K2 Poland)이 납품된다. 이는 최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나타난 전투 양상에 따라 새로운 기술적 요구 사항이 발생하면서 폴란드 군이 요청한 각종 장비가 추가된 제품이다.
폴란드 측은 K2PL에 적군의 대전차 무기를 탐지·파괴하는 하드킬 능동방호장치(APS)와 상부에 장착된 포탑을 무인화할 수 있는 원격사격통제체계(RCWS) 등의 탑재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외부에 장갑을 덧대 방호력을 높이고 적군의 드론 공격을 방해하기 위한 재머(전파교란장치·Jammer)도 추가될 예정이다.
구체적인 단가는 알려진 바가 없으나, 각종 장치가 추가되고 현지 생산 조건이 붙은 K2PL의 가격은 K2GF보다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증권업계는 2차 계약 시 현대로템의 수주 규모를 6조원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KB증권의 안유동 연구원은 “차체에 능동방호장치(APS)가 탑재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군의 K2 전차 4차 양산 사업 규모가 약 30% 증액된 것을 감안하면 폴란드 2차 계약분 역시 K2 180대(약 5조8,000억원)와 기타 장비(약 3,900억원) 등을 포함해 6조원이 넘어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폴란드 언론 "한국이 높은 가격 제안"
다만 최근 현지에서는 K2PL의 가격이 비싸다는 여론이 나오는 분위기다. 폴란드 일간지 제치포스폴리타(Rzeczpospolita), 군사 전문 매체 디펜스24 등은 “K2 전차를 폴란드화하는 데 드는 가격은 수십억 즈워티(폴란드 화폐· 1즈워티는 약 3.4원)에 달한다"며 "PGZ(폴란드 국영방산그룹)는 공장 개조, 생산 라인 구축, 직원 교육 등에 발생하는 비용을 이유로 높은 가격을 제안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이 같은 여론이 2차 계약 협상에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금융 정책 지원이 부족한 점도 계약 성사를 늦추는 요인이다. 일반적으로 방산 계약은 수출 금액이 크고 정부 간 계약(G2G) 성격이 강해 수출국에서 정책금융과 보증보험을 지원하는 것이 국제적 관례다. 폴란드는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국방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방산업체로부터 K2 전차 1,000대, K9 자주포 672문, 천무 288문 등을 도입하겠다는 기본 계획을 발표하면서 한국 무기 계약을 잇따라 체결했다. 이들 계약에는 올해 11월 말까지 양국 당국 간 별도의 금융 계약이 체결돼야 효력이 발생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었다. 이에 따라 그해 1차 계약(전차 180대, K9 212문, 천무 218대) 때 한국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는 계약액의 80%가량인 124억 달러(약 17조3,000억원) 규모의 대출과 보증을 지원했다.
이후 양국 정부 간 협의가 이어졌지만 앞서 이뤄진 1차 계약과 관련한 지원으로 한국의 정책금융 보증 한도가 소진돼 2차 계약에서는 추가 보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우리 정부는 5대 시중은행을 동원한 민간 '신디케이트론(공동대출)'을 제안했으나 폴란드는 시중은행보다 조달금리가 낮은 정부의 정책금융을 강력하게 희망했다. 이에 정부가 최근 수출입은행법 개정을 통해 자본금 한도를 기존 15조원에서 25조원으로 늘렸지만 여전히 수출을 지원하기엔 역부족이다. 여기에 특정 대출자에게 자기자본(25조원)의 40%(10조원) 이상을 대출할 수 없도록 한 수은법 규정 등도 걸림돌이다.
수출지원 금융시스템 선진화 시급
결국 폴란드는 2차 계약의 시작인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천무 구매와 관련해서는 한국의 수출금융 요구를 일단 접고, 유럽계 글로벌 은행과 자금 마련에 관한 협의를 진행 중이다. 통상 공급자와 구매자 간 가격 흥정이 안 맞으면 계약은 깨지기 마련이지만, 폴란드는 자금 조달 비용이 한국 정책금융보다 비싼 유럽 금융기관을 통해서라도 한국산 무기를 구매할 의향이 있어 보인다. 이는 러시아발 안보 불안 때문이다. 러-우 전쟁 장기화 등 자국 안보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국방력 보강을 더 늦출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K2 전차 구매 계약 체결과 관련해선 여전히 한국에 수출금융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저리의 정책금융을 지원하지 않으면 대형 2차 방산 수출 계약을 온전히 성사시키기 힘들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방산 수출액이 수천억원에 머물던 과거와 달리 수십조원 규모로 커진 만큼 수출금융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수은 자본 확충 외에 민간 신디케이트론 확보, 정부의 금리 보전 제도 등 보다 정교한 금융 제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뒤따른다.
그도 그럴 것이 미국은 해외군사재정지원(FMF) 제도를 통해 무기 구매국에 원조, 차관 형식으로 수출금융책을 지원하고 있으며, 프랑스는 방산 등 국가전략사업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신용등급과는 별도의 무기 수출금융을, 스웨덴은 정부 수출보증위원회에서 방산 수출을 전략적으로 지원한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는 무기 경쟁력을 갖추고도 수출금융 지원책 경쟁에 밀려 2017년에는 태국 잠수함 사업(중국)과 말레이시아 다연장 로켓 사업(중국)에, 2020년에는 필리핀 잠수함 사업(프랑스) 수주에 실패한 전례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