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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역,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에 ‘결정적 기여’ 무역 효과의 국가 간, 국민 간 분배 문제는 ‘해결 과제’ 자유 무역 기반 ‘소득 재분배’ 위한 보완책 마련이 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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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무역은 전 세계의 경제 성장과 빈곤 퇴치에 결정적 역할을 해 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효과가 국가와 국민에게 균등하게 분배되지는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orld Trade Organization, WTO)가 발간한 2024년 세계무역 보고서(World Trade Report)는 무역과 ‘소득 재분배’(inclusiveness) 사이의 관계를 재조명하면서 핵심적인 문제가 일부의 지적과 같이 자유 무역 자체에 있기보다 각국의 정책 부재에서 기인한다고 지적한다. WTO가 무역 규정의 개선과 보완에도 힘써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유 무역의 부작용을 해소할 수 있는 각국의 보완책이라는 것이다.
국제 무역, 선진국과 개도국 간 소득 격차 축소에 ‘핵심 역할’
지난 30년간 국제 무역은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간 소득 격차를 줄이는 데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해 왔다. 1995년부터 작년까지 전 세계 1인당 국민소득 평균이 7,050달러(약 985만원)에서 11,570달러(약 1,616만원)로 65% 성장하는 사이 중저소득 국가들의 1인당 국민소득은 1,835달러(약 256만원)에서 5,337달러(약 745만원)로 3배 가까이 성장한 것이다. 이러한 현저한 격차 축소는 수출, 수입, 해외 직접 투자 등에 의한 글로벌 시장 경제의 통합에 기인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글로벌 공급망 참여가 규모의 경제, 경쟁, 기술 이전, 혁신 등을 촉진해 생산성을 끌어올린 덕분이다.
WTO는 1995~2020년 국가 간 거래 비용(trade cost)의 축소가 세계 각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평균을 6.8% 끌어올렸다고 추산하는데 이중 저소득 국가들의 성장률은 33%에 이른다. 일방적 무역 정책을 시행한 개발도상국들이 연간 1~1.5% 정도의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는 사이, 관세 무역 일반 협정(GATT) 및 WTO와 같은 다자간 무역 협정은 회원국 간 교역 규모를 평균 140% 끌어올렸다. 또한 WTO 가입 조건 달성을 위해 무역 제도 개혁에 착수한 국가들이 개혁을 요구받지 않은 기가입국들보다 가입 이전부터 이미 평균 1.5%P 더 높은 소득 성장률을 기록한 것은 물론 가입 이후에도 훨씬 가파른 성장률을 달성했다.
국제 무역 효과의 국가 간, 국민 간 재분배는 균등과 “거리 멀어”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무역으로 인한 소득 재분배는 고르게 이뤄지지 못했다. 아프리카, 카리브해, 라틴 아메리카, 중동 국가들은 낮은 무역 비중, 규제적 무역 정책, 부족한 인프라, 불리한 위치, 취약한 법 제도 등으로 인해 온전한 혜택을 누리지 못한 것이다. 최빈국(Least-developed countries, LDCs)의 경우는 고소득 국가에 비해 제조업은 47%, 서비스업은 50% 높은 거래 비용으로 인해 세계 시장에서 제대로 경쟁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원자재(commodity) 수출에 의존하는 국가들 역시 높은 무역 비중에도 불구하고 느린 소득 성장과 낮은 경제 다각화(economic diversification)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국제 무역 혜택의 개인 간 분배 역시 균등과 거리가 멀었다. 교역이 자원을 보다 생산적인 분야에 재분배해 전반적인 경제적 효용과 삶의 질을 개선했지만 특정 노동 인구에는 그 효과가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저숙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수입 상품들과의 경쟁에 맞서 고생산성 일자리로 옮겨가기에는 보유한 기술과 이동성(mobility) 자체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적절한 정책 대응이 없다면 이러한 노동 시장 붕괴는 장기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반면 자유 무역은 저소득 가구를 포함한 소비자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다양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하는 혜택을 제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부 가구들은 높은 운송 비용과 특정 기업들의 내수 시장 독과점으로 이러한 혜택에서마저 배제돼 왔다.
자유 무역 유지하되 소득 재분배 위한 보완 정책 필수
WTO 보고서는 국제 무역의 차별적 효과가 자유 무역 자체에서 기인하기보다는 각국의 정책 부재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소득 재분배 문제 해소를 위해 자유 무역 대신 보호 무역 조치를 채택할 경우 특정 산업 보호 효과는 기대할 수 있지만 물가 상승과 낮은 혁신 수준 및 수출 경쟁력으로 경제 전반에 더 높은 비용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역 상대국의 보복 조치가 이어질 경우 수출 산업 고용은 더욱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한편 자국으로의 생산기지 복귀(reshoring) 역시 자동화와 디지털화의 영향으로 충분한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데는 뚜렷한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결국 자유 무역이 보다 높은 소득 재분배 효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각국 정부의 보완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결론이다. 먼저 직업 및 직종 간 이동을 촉진할 수 있는 재교육 프로그램과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노동 시장 정책이 재수립돼야 한다. 변두리 지역과 주요 시장을 연결하는 운송망의 보완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재무 격차의 해소 역시 시급하다. 또한 글로벌 무역으로 오히려 벼랑 끝에 몰리는 개인과 지역 사회를 위한 복지 차원의 보상 프로그램도 절실하다.
한편 국제 무역이 소득 재분배에 미치는 역효과에 대한 우려로 많은 무역 협정에 소득 격차 축소를 위한 규정이 포함되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규정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역에 참여하는 업체들의 개별 성과는 물론 성별 격차, 고용, 가구별 소득 등 세부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재분배 효과를 높이기 위한 정책 개선이 반드시 필요하다.
국제 무역이 경제적 격차 축소와 사회적 평등에 지속적으로 기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협력도 필수적이다. 규칙에 기반한 다자간 자유 무역 체제를 유지해 지정학적 갈등으로 인한 세계 경제의 파편화를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이다. 글로벌 공급망 다양화와 디지털 거래의 확산, 신재생에너지 산업은 중저소득 국가들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효과 역시 온전히 발휘되려면 높은 서비스 거래 비용, 디지털 격차, 규제 환경 및 준수, 초거대 디지털 기업들의 시장 지배 등의 문제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모든 문제는 WTO를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참여와 각국의 협력으로 만들어지는 보완책으로 해소되거나 최소화될 수 있다.
원문의 저자는 호세-안토니오 몬테이로(José-Antonio Monteiro) WTO 이코노미스트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rade and inclusiveness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