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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거래사, 국방부 동일제품 입찰 불허 양당 합의 조항, 연내 통과 전망 상무부 통제에 이어 방산조달 파워로 ‘이중 압박’
막대한 방위 산업 계약을 앞세워 글로벌 기업들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미국 국방부가 대중국 기술 통제에 뛰어들었다. 대중 봉쇄의 초입에서 거래 제한 중국 기업 리스트·품목을 관리하는 미 상무부에 더해, 국방부는 중국 기업과 거래 실적이 있는 기업에 아예 일감을 주지 않는 방식으로 이중 압박을 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방예산법 개정안 초당적 발의
10일(이하 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7일 새로 공개된 국방수권법(NDAA·국방예산법)에는 국방부 계약 업체가 화웨이나 그 계열사에 반도체와 반도체 제조 장비, 반도체 설계용 설비 등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관련 853항은 “국방부 장관은 고의로 화웨이에 반도체 제품·서비스를 제공하는 모든 기업에 대해 국방부를 위한 해당 반도체 제품 및 서비스 조달 계약을 체결하거나 갱신해서는 안 된다”고 적시하고 있다.
이 개정안이 통과되면 화웨이에 첨단 반도체 기술 등을 공급하는 기업은 국방부와의 거래가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개정안은 국방부와 계약을 원하는 업체가 화웨이와 거래 실적이 없음을 입증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통제 범위도 광범위하다. 화웨이라는 단일 기업과 관련 계열사는 물론, 화웨이에서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통제를 받는 기업들까지 통제 범위에 넣고 있어 추후 심사에서 이현령비현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계약 취소가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한국 반도체 업체인 A사가 화웨이의 통제를 받는 도매상인 B사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납품한 실적이 있으면 A사는 B사와의 거래 기록으로 인해 미 국방부에 해당 HBM을 공급하고 싶어도 자격 미달이 될 수 있다. 다만 미 국방부가 원하는 품목을 제공하는 A사가 과거 화웨이와 거래 실적이 있어도 시장에서 A사 품목을 대체할 수 없을 경우 예외적으로 거래 제한 조치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인텔·퀄컴, 화웨이 수출 허가 취소
미국 정부의 중국 반도체 제재는 갈수록 그 수위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앞서 미 정부는 화웨이가 인텔의 최신 AI 칩이 탑재된 노트북 '메이트북 X프로'를 공개하자, 인텔과 퀄컴의 반도체 수출 허가를 취소하기도 했다. 당시 공화당 의원들은 상무부가 인텔에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수출 허가를 해준 결과로 최신 제품이 출시됐다며 강도 높게 비난했다.
마이클 맥컬 미 하원 외교위원회 위원장은 퀄컴과 인텔에 대해 "이 회사들은 우리가 평소 중국과 너무 가깝다고 걱정한 곳"이라며 "이번 조치는 중국의 첨단 AI 개발을 막는 데 핵심적인 것으로, 화웨이에 판매되는 모든 칩을 차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미 정부의 수출 통제에 따라 미국 기업이 블랙 리스트에 오른 기업에 제품이나 기술을 수출하려면 정부의 별도 수출 라이선스를 받아야 하는데, 그 과정은 매우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전 정부를 포함한 미국 정부는 수출 통제 이후에도 화웨이에 수십억 달러 규모의 반도체 등을 수출할 수 있는 허가를 내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의 소비자 시장이 워낙 큰 만큼,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다. 퀄컴과 인텔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수출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화웨이 제품서 TSMC 반도체 발견
하지만 이번 법안이 승인되면 화웨이에 반도체 관련 기술 및 상품을 파는 기업들은 더 큰 압력을 받을 전망이다. 미국 회계감사원에 따르면 미 국방부는 2023 회계연도에 4,600억 달러(약 657조원) 규모의 계약을 기업들과 체결한 바 있다. 이 천문학적 조달 계약 권한을 대중 첨단 기술 봉쇄에 활용하겠다는 게 이번 개정안의 골자다.
반도체업계에서는 지난 10월 화웨이의 인공지능(AI) 칩에서 대만 TSMC가 만든 부품이 발견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해당 칩셋은 화웨이의 AI 가속기 반도체 ‘어센드 910B’로, 미국 수출통제로 엔비디아 AI 칩을 구할 수 없는 중국에서 어센드 910B는 엔비디아 대체재로 급부상하고 있다.
앞서 미국 정부는 2020년 화웨이를 기술 제재 목록에 올렸고 TSMC는 그해 9월부터 화웨이의 칩 제조 주문을 받지 않았다. TSMC는 “우리는 법을 준수하는 회사며 해당 수출통제를 포함해 모든 관련 규칙과 규정을 준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다만 화웨이가 어센드 시리즈를 처음 개발한 것은 2019년으로, 이번에 발견된 TSMC 부품이 제재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다.
그러나 이미 미 상무부는 TSMC가 제재 이후에도 화웨이를 위한 제품을 생산했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최근 화웨이 노트북에서 TSMC 5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에서 생산된 반도체가 발견되면서다. 여기에 더해 화웨이 AI 칩에서도 TSMC 제조 부품이 발견된 것이다. 이에 미 당국은 화웨이가 제3의 중개회사를 이용해 TSMC로부터 우회적으로 칩을 구매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앞서 지난해 화웨이가 출시한 스마트폰 ‘메이트60’에서는 SK하이닉스 D램이 발견된 바도 있다. SK하이닉스는 2020년부터 화웨이에 메모리 공급을 중단했기 때문에 이 역시 우회 루트를 통해 흘러 들어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