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中 양자의학硏 출범, 톈옌-504 출시도 美 구글, 105큐비트 '윌로' 공개 韓은 20큐비트급 양자컴퓨터에 머물러
양자컴퓨터 기술을 두고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내년은 UN(국제연합)이 정한 ‘국제 양자 과학기술의 해’로, 업계에서는 양자기술 개발과 상용화에 속도가 붙는 ‘양자원년’으로 여겨진다. 이런 가운데 미국은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초격차 기술을 선봬는 한편 중국도 민·관 공조로 추격에 나선 모습이다.
중국, 504큐비트급 양자컴퓨터 칩 출시
11일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양자컴퓨터 기업 ‘오리진퀀텀컴퓨팅 테크놀로지’는 벙부의대와 함께 양자컴퓨터를 의학 연구에 활용하는 자국 최초의 연구기관 ‘허페이 양자컴퓨팅·데이터 의학연구소’를 출범했다. 방대하고 개인정보 유출에 민감한 의료 데이터를 양자컴퓨터로 분석·관리하고 신약 연구 등에도 응용해 의학 분야에서 양자컴퓨터 상용화를 앞당기겠다는 구상이다.
오리진퀀텀은 1월 자체 양자컴퓨터 ‘오리진우콩’을 출시해 137개국에 보급했다. 또 다른 기업 퀀텀시텍은 중국과학원과 504큐비트(양자정보처리 단위)급 양자칩 ‘샤오홍(Xiaohong)’를 개발하고 이를 탑재한 양자컴퓨터 ‘톈옌-504(Tianyan-504)’를 6일 출시했다.
톈옌-504는 500큐비트의 벽을 넘어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큐비트는 양자컴퓨터의 성능을 나타내는 기본 단위로, 큐비트 수가 많을수록 더 복잡한 계산을 수행할 수 있다. 중국텔레콤양자그룹(CTQG)에 따르면 톈옌-504는 큐비트 수명, 판독 충실도 등 주요 성능 지표에서 IBM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양자컴퓨팅 플랫폼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이번 톈옌-504 개발은 양자 기술 분야에서 중국의 급성장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받는다. 중국은 정부의 막대한 투자를 통해 양자컴퓨팅, 양자통신, 양자센싱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러한 추세를 이어갈 경우, 머지않아 양자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두 주자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도 최신 양자 칩으로 승부수
미국은 빅테크를 중심으로 초격차를 꾀하고 있다. 9일(현지 시간) 구글은 최신형 양자칩 ‘윌로’를 공개했는데, 윌로는 양자컴퓨터의 상용화를 가로막는 고질적 난제인 ‘오류정정’ 문제를 30년 만에 처음으로 해결, 큐비트를 늘리면서도 ‘임곗값 이하(Below Threshold)’의 오류율을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자컴퓨터 성능을 높이려면 양자정보처리 단위인 큐비트 수를 늘려야 하지만 동시에 계산 오류도 잦아진다는 모순이 있다. 앞서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도 등장했으나 1,000번 계산에 1번꼴로 발생하는 잦은 오류를 정정을 통해 1조 번의 1번꼴로 줄이지 못하면 상업적 활용은 어렵다.
그런데 윌로는 큐비트들을 사각형 격자 구조인 ‘표면 코드’로 묶어 서로 오류를 보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통해 이 모순을 풀었다. 큐비트가 많아질수록 오히려 오류율은 기하급수적으로 낮아지도록 설계한 것이다. 구글은 큐비트를 17개에서 49개, 97개로 늘릴 때마다 오류율이 거의 절반씩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또한 윌로는 특정 작업에서 현존 최강의 슈퍼컴퓨터 ‘프론티어’로도 10셉틸리언(10의 24제곱)년이 걸리는 작업을 5분 만에 해낼 수준의 연산 속도를 자랑한다. 앞서 구글은 2019년 양자 칩 ‘시카모어’를 활용해 기존에 1만 년 걸리던 문제를 몇 분 안에 풀 수 있다고 발표했는데, 5년 만에 연산 속도를 천문학적으로 끌어올린 것이다. 하트문트 네벤 구글 퀀텀AI 대표는 “10자년은 우주의 나이를 훨씬 초월한 시간”이라며 “수많은 평행 우주에서 양자 계산이 이뤄지고 있고, 우리는 다중우주에 살고 있다는 물리학자 데이비드 도이치의 생각과도 맞아 떨어진다”고 말했다.
IBM도 지난달 최신 양자칩 ‘퀀텀 헤론’을 공개했다. IBM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연세대학교 송도캠퍼스에 도입된 127큐비트급과 비교해 동일한 연산 작업에 걸리는 시간을 기존 112시간에서 2.2시간으로 50배 향상시킨 현존 최고 성능의 제품이다. IBM은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과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등 고성능 연산이 필요한 글로벌 연구기관을 집중 공략 중이다.
엔비디아는 직접 양자컴퓨터를 만들지는 않지만 그래픽처리장치(GPU) 기반 슈퍼컴퓨터 ‘에오스’를 앞세워 구글과 손잡았다. 실제처럼 양자칩 성능을 떨어뜨리는 노이즈(잡음) 환경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해 성능 시험을 지원한다.
한국 양자 컴퓨터 기술 2.3점 '꼴찌'
반면 한국은 양자기술을 인공지능(AI), 바이오와 함께 선점이 필요한 신기술인 3대 게임체인저로 정했음에도 글로벌 경쟁 대응에 발 빠르게 나서지 못하고 있다. 올해 초 국내 자체 기술로 개발한 20큐비트급 성능의 양자컴퓨터를 선보인 이후, 2030년대 1,000큐비트 양자컴퓨터 개발로 미국과 중국을 추격하기 위해 내년 초 국가 컨트롤타워 ‘양자전략위원회’를 출범하고 본격적인 연구개발(R&D)과 산업 육성에 나선다는 방침이지만 탄핵 정국으로 이마저도 차질이 예상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미국의 양자 컴퓨터 기술을 논문, 특허 등의 질을 따져 100점이라고 할 때 한국은 겨우 2.3점에 불과하다. 중국은 35점으로 미국에 이어 2위에 올랐고, 독일(28.6점)과 일본(24.5점), 영국(24점)이 뒤를 이었다. 캐나다(23.2점), 스위스(19.6점), 네덜란드(17.9점), 프랑스(16.1점)도 한국을 크게 앞질렀다.
양자 센서 분야에서도 한국의 점수는 고작 2.9점이었다. 중국(40.9점)이 독일(40.7점)을 근소한 차이로 제치고 2위를 차지했고, 영국(33.6점), 일본(31점), 스위스(29.3점) 순이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이번 사태로 과학계도 위기에 놓였다”며 “리더십 재정비와 정책 재검토가 시급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