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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광, 흥국생명 본사 리츠편입 LG·대신 등도 속속 뛰어들어 전체 매각보다 유동성 확보 유리
국내 기업들이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 설립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부동산을 전체 매각하는 것보다 리츠에 편입시켜 주주 자리를 지키는 한편 손쉽게 현금을 쥘 수 있어서다.
태광·대신파이낸셜·LG 등 리츠 사업 진출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태광그룹은 최근 리츠 사업 진출을 위해 KB스타리츠의 투자운용을 담당하던 원광석 KB자산운용 리츠본부장을 영입했다. 원 본부장은 태광그룹 리츠 AMC(자산관리회사)의 핵심 인물로, 스폰서 리츠 설립을 위한 본격적인 업무에 착수할 예정이다.
태광그룹은 섬유·석유화학, 금융, 미디어, 레저 사업을 영위하는 국내 대기업집단으로, 그중 금융 계열사인 흥국생명에서 보유한 부동산 자산을 리츠로 편입시키는 데에 주력할 것이라고 IB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대표적인 부동산 자산은 광화문에 위치한 흥국생명 본사사옥이다. 서울 핵심 업무권역(CBD)의 오피스로 자산가치가 높게 평가된다. 이외에도 흥국생명 남대문사옥, 흥국생명 강남금융플라자, 흥국생명 대전·부산사옥 등도 모두 흥국생명이 보유한 부동산 자산이다.
태광그룹 외 다른 기업들도 리츠 설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신파이낸셜그룹은 최근 국토교통부로부터 서울 주요 지역 부동산 자산을 담은 ‘대신밸류리츠’ 영업인가를 받았다. 대신밸류리츠는 서울 본사사옥인 ‘대신343’을 자산으로 담는 국내 최초의 금융·디벨로퍼형 스폰서 리츠가 될 전망이다. 이미 KB증권, 한국투자증권, 하나증권, 신한투자증권 등 국내 굴지의 증권사들이 자체 지분투자를 결정했거나 인수의사를 타진 중이다.
LG그룹의 자산관리 계열사 D&O도 현재 인수를 추진하는 서울 상암동 LG헬로비전 본사 사옥 편입을 위한 리츠 설립을 진행하고 있다. LG헬로비전 본사 사옥은 연면적 3만8,075㎡ 규모의 오피스빌딩으로 매도자인 이화자산운용과 1,700억원 안팎 가격에서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다. 최근엔 리츠 AMC추진 TF(태스크포스) 총괄로 부동산 투자 베테랑인 이학구 전 다올자산운용 부사장을 선임하기도 했다.
삼성, SK, 한화, 롯데그룹은 일찍이 리츠 사업에 진출한 상태다. 리츠 AMC를 통해 각각 삼성FN리츠, SK리츠, 한화리츠, 롯데리츠 등의 상장리츠를 운용 중이다. 삼성FN리츠는 대치타워, 에스원빌딩, 판교사옥 등의 오피스 자산을, 롯데리츠는 롯데백화점 강남점, 롯데백화점 광주점, 롯데프리미엄아울렛 이천점 등의 리테일 자산을 갖고 있다.
‘리츠 배당확대법’ 통과에 리츠 시장 화색
그간 국내외 부동산 위기와 함께 지지부진했던 리츠 시장에 화색이 도는 배경엔 '리츠 배당확대법'이 있다. 부동산 자산의 평가손실을 배당 한도 계산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배당확대법이 통과되면서 리츠 시장도 조금씩 회복하는 모습이다.
현행 법인세법상 리츠는 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할 경우 법인세를 면제받을 수 있지만, 리츠 수익이 줄지 않더라도 자산 평가액이 하락하면 그에 따른 미실현 손실분을 빼고 배당해야 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에 대한 배당을 하지 못하고 법인세 면제 혜택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다. 그러나 내년 상반기부터는 리츠가 보유한 부동산 자산에서 평가손실이 발생해도 이를 이익 배당 한도에서 제외해 법인세를 감면하고 배당을 늘릴 수 있게 됐다. 부동산 수익을 온전히 투자자에게 나눠 줄 수 있게 된 셈이다.
이와 함께 리츠와 관련된 불필요한 규제도 대폭 완화됐다. 우선 리츠 자산을 운용하는 AMC 예비인가 제도를 폐지해 AMC 설립 기간을 단축했다. 이제까지 AMC 설립은 예비인가 이후 본인가까지 2단계로 절차가 중복돼 시간이 많이 소요됐는데, 이 때문에 그사이 금리가 변동되는 등 자산 매입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인가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AMC 설립 기간도 단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75%는 非공모, "그들만의 리츠"
이처럼 리츠 투자에 유리한 정책이 속속 도입되자 시장에서도 리츠 투자 매력이 다시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리츠협회에 따르면 2022년 상장한 리츠의 배당수익률은 연 7.8%에 달했다. 지난해 상장한 리츠 배당수익률도 연 6.4%로 집계됐다. 부동산투자회사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리츠 투자로 기대해 볼 수 있는 배당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미국발 기준금리 인하도 호재다. 금리가 내려가면 부동산 대출 이자인 조달 비용이 줄고 리츠 수익성이 개선된다. 또한 배당 매력이 커지는 등 리츠 영업 환경도 개선된다.
문제는 사실상 공모 의무가 없는 리츠가 전체 리츠의 75% 수준이라는 점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총 373개 리츠 중 50%는 공모나 상장보다는 주택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공공지원 민간임대 리츠며, 전체 리츠의 25%는 기금이나 공제회의 자금으로 설립된 리츠다. 그런데 이들은 공모성이 있다고 인정돼 공모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상 90개 리츠만 공모 의무가 있는 셈이다. 최근 국토부에서 도입한 기업구조조정(CR) 리츠도 부동산투자회사법에 따라 공모 의무가 없다. 이처럼 공모를 해야 하는 리츠 수가 적은 탓에 리츠 공모 활성화의 길도 멀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리츠협회 관계자는 "리츠 시장의 활성화를 위해 리츠 주식 거래량이 늘고 리츠 시장이 커져야 한다"며 "리츠 활성화를 위해 리츠 간 인수, 합병(M&A)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상장 리츠는 상장 리츠만, 비상장 리츠는 비상장 리츠만 인수할 수 있다. 한국리츠협회 관계자는 이어 "시장이 크려면 상장 리츠가 비상장 리츠도 인수하도록 해야 한다"며 "상장 리츠가 소규모 비상장 리츠를 인수하면서 덩치를 키워야 시장 규모도 커지고 공모도 활성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