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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타워 가치만 6조원 상당
계열사와 사업적으로 긴밀히 연결
호텔롯데와 합병 가능성 ‘솔솔’
롯데물산이 안정적인 재무 체력을 기반으로 계열사 지원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그룹의 자산재배치 전략에서 우량 자산을 연이어 담보로 제공하면서다. 시장에서는 롯데그룹의 유동성 위기 극복 방안으로 롯데물산과 호텔롯데의 합병 가능성을 조심스레 점치는 분위기다.
부동산 기반 안정적 수익
16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물산은 최근 계열사 롯데케미칼에 회사채 기한이익상실(EOD) 선언 사유가 발생하자, 보유 중인 롯데월드타워와 롯데월드몰을 담보로 제공했다. 총 담보금액은 2조4,818억원으로 롯데케미칼이 보유하고 있는 14개 회사채 가격인 2조682억원을 소폭 웃돈다. 롯데물산은 롯데월드타워 지분을 100% 소유하고 있으며, 해당 물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6조원에 달한다.
업계에서는 롯데물산이 소위 ‘알짜 부동산’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계열사 추가 지원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실제로 롯데물산은 잠실롯데타워와 오피스, 잠실 롯데몰을 분양 및 임대하고 있으며, 베트남의 롯데센터하노이, 롯데몰떠이호 등 해외 쇼핑몰을 관리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을 올리고 있다. 주요 자산 규모는 올해 3분기 기준 7조9,036억원에 달한다. 내년에는 이천과 안성의 물류센터 매각을 계획 중인 만큼 추가 수익도 예상된다.
아울러 롯데물산은 과거에도 롯데건설의 이자에 대한 자금 보충과 대여금을 지원하는 등 그룹 내 궂은일을 도맡아 왔다. 나아가 롯데쇼핑·호텔롯데로부터 롯데월드몰과 타워에 대한 임대 수익을 받는 등 계열사와 사업적으로 긴밀히 연결돼 있기도 하다. 한국기업평가가 “롯데물산의 월드타워는 롯데백화점 잠실점, 롯데월드호텔 등 계열사와 긴밀한 연계성을 가지면서 사업 안정성이 강화된다”며 신용평가에 반영한 배경이다.
무엇보다 롯데타워의 부동산 가치가 6조원에 달하는 만큼 롯데케미칼에 활용한 담보 가치 2조4,818억원을 제외한 추가 담보 활용 또한 가능한 상황이다. 다만 이에 대해 롯데그룹은 “롯데물산은 롯데케미칼의 2대 주주이기 때문에 담보를 제공했을 뿐,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원은 아직 계획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
신용에 ‘빨간 불’ 롯데, 만기 분산으로 리스크 축소
앞서 롯데는 이달 초 계열사 인사를 마무리한 직후부터 그룹의 전반적인 자금 조달 구조를 개선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주요 계열사의 채무 만기가 1년 내로 몰리면서 신용 위험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채 만기를 늘리면 금리가 올라가고 기준금리 인하 등 금리 변동이 심할 때는 만기를 짧게 해 발행하는 게 유리하지만, 이를 감수하더라도 그룹 전체의 만기를 분산해 차환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11월 말 기준 롯데케미칼, 호텔롯데, 롯데쇼핑, 롯데건설 등 롯데 주요 계열사가 발행한 회사채 중 1년 내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 규모는 약 7조원이다. 여기에 만기가 3개월에서 1년 미만인 단기사채와 기업 어음, 또 장기부채 중 만기가 1년 앞으로 다가온 것까지 합치면 13조 3,071억원까지 늘어난다. 이 때문에 주요 계열사가 지출한 이자만 올해 3분기 말 기준 1조2,457억원에 이른다.
롯데는 내년부터 만기가 3개월에서 1년 미만으로 남은 회사채와 단기사채·기업어음 등의 차환을 위한 재발행 시 3년 이상 중장기물을 우선할 계획이다. 이 경우 만기가 분산돼 차환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 이 계획이 차질 없이 진행되면 내년 7조원 수준인 만기 도래 회사채는 2026년에는 6조7,000억원, 2027년에는 3조9,000억원가량으로 단계적 축소된다.
경영진 교체에 호텔롯데·롯데물산 합병 가능성 대두
이런 가운데 그룹 내부에서는 호텔롯데와 롯데물산 합병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고 있다. 애초 롯데그룹은 호텔롯데를 상장시킨 후 2017년 설립한 롯데지주와 합병시켜 일본 롯데홀딩스의 지배력을 희석하고자 했다. 하지만 호텔롯데 상장이 무기한 연기됨에 따라 대안을 마련해야 했다. 이와 함께 계열사 간 얽혀 있는 지분구조를 정리하기 위한 대책도 함께 논의됐다. 처음 호텔롯데와 롯데물산의 합병 논의가 시작된 배경이다.
롯데는 2022년 정기인사에서 호텔군HQ 총괄대표로 외부 출신의 안세진 사장을 선임하며 밑그림을 그려나갔다. 이후 롯데쇼핑과 호텔롯데가 보유한 유형 자산을 롯데물산으로 이동하는 등 자산을 재배치했다. 이 과정에서 호텔군HQ를 중심으로 호텔롯데·롯데쇼핑·롯데물산 재무담당자 회의체를 구성하기도 했으나, 그룹 내 고위 임원 간 의견이 충돌하면서 자산 재배치 작업이 무기한 연기됐고, 회의체 또한 해체되는 수순을 거쳤다.
그러는 사이 호텔롯데는 영업환경 악화에 따른 영업이익 적자를 피하지 못했다. 롯데는 호텔롯데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구원투수로 롯데지주의 사업지원실장이었던 정호석 부사장을 낙점했다. 롯데물산은 장재훈 대표 체제를 유지했다. 올해 2월부터 롯데물산을 이끌고 있는 장 대표는 글로벌 자산관리 종합서비스기업 JLL코리아 출신으로 20년 넘게 부동산 관련 업무를 폭넓게 수행한 바 있다.
주요 경영진이 교체된 만큼 호텔롯데와 롯데물산 간 합병 논의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호텔롯데 상장을 대안 없이 무기한 연기만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룹의 유동성 위기에 대한 타개책이 시급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물산이 그룹과 긴밀한 협의를 해나가면서 역할과 목표 등을 설정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는 수익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과 이를 통해 마련한 자금에 대한 활용 방안을 모색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