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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인수팀, 전기차 보조금 철폐 요구 현대차·배터리 3사 등 국내 기업 영향권 美 전기차 시장 성장 지연될 가능성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정권 인수팀이 전기차 지원을 대폭 축소하고, 배터리 소재에 대해 전 세계적으로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이에 업계는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국내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돌아올 타격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인수팀, 전기차 지원 '정조준'
17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트럼프 인수팀의 내부 문건을 인용해 “인수팀이 전기차와 충전소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중국산 자동차 및 부품, 배터리 소재 차단을 강화하는 방안을 권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문건에 따르면 인수팀은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 근거한 최대 7,500달러(약 1,070만원) 규모의 보조금(소비자 세금 공제)을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IRA는 미국에서 생산된 배터리와 이를 탑재한 전기차에 보조금을 주는 법안이다.
해당 문건에서는 배터리와 핵심 광물, 충전부품 등 ‘전기차 공급망’에 관세를 부과하자는 제안도 확인됐다. 전기차 배터리와 군 항공기 등에 동시에 사용되는 핵심 광물인 흑연과 리튬, 희토류 등의 채굴·정제를 중국이 지배, 미국의 전략적 취약성이 커지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문건에는 특정 품목의 수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고 판단될 경우 관세 등 조치로 수입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하는 무역확장법 232조를 동원할 수 있다는 내용도 담겼다.
이 밖에도 △적대국에 대한 전기차 배터리 기술 수출 제한 △미국산 배터리의 수출에 대한 수출입은행의 지원 △관세를 활용한 미국산 자동차의 수출 개방 요구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기업 타격은?
이 같은 인수팀의 결정이 실제 정책에 반영될 경우 현대차그룹 등 미국 시장에 투자를 단행한 국내 완성차 업체들이 직접적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그룹은 IRA 적용에 따른 혜택을 기대하고 76억 달러(약 10조9,100억원)를 투입해 지난 10월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생산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준공한 바 있다. 그런데 만약 트럼프 행정부 집권 이후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되면 전기차 판매 감소 가능성이 커지며 HMGMA의 가동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이 공장은 연간 최대 40만 대를 생산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될 시 현대차가 HMGMA의 라인을 조정해 하이브리드차 생산에 힘을 실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하지만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 생산을 늘릴 경우 국내 노동조합의 반발이 일며 노사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있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투싼 하이브리드 등은 현재 한국에서 만들어 수출한다"며 "메타플랜트에서 하이브리드차를 생산하게 되면 노조가 국내 일감이 줄어든다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전기차 배터리 제조사도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트럼프 2기 행정부가 해외에서 들어오는 배터리 소재에 대해 관세를 물리면 소재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이 크다. 전기차 배터리에는 양극재,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의 소재가 투입되는데, 미국에 공장을 둔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상당수 소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다만 트럼프 행정부 인수팀은 배터리 소재에 관세를 부과하되, 향후 동맹국들과는 개별 협상을 진행해 관세를 면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美 전기차 시장 가라앉나
일각에서는 인수팀의 결정이 현실화할 경우 미국 전기차 시장 전반이 가라앉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자동차시장 조사업체 글로벌데이터는 당초 2030년 미국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가 차지하는 비중이 33%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으나, 트럼프 당선 이후 해당 전망치를 28%로 하향 조정했다. 제프 셔스터 글로벌데이터 자동차 리서치 부회장은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미국의 전기차 전환을 방해할 것"이라며 “트럼프가 유가 하락, 연비 규제 완화 등에 집중하면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15~20%가량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컨설팅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마크 웨이크필드 글로벌 자동차 시장 총괄도 “2027년까지 업계가 예고한 전기차 투자 금액인 1,290억 달러(약 185조2,200억원)가량이 위험에 처해 있다"며 미국 전기차 산업이 위축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이어 “앞으로 5년 뒤 전기차 시장은 예상보다 더 작을 것"이라며 “공장에서 나오는 전기차뿐만 아니라 전기차 산업화 속도가 긴 시간에 걸쳐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에 대한 투자 속도를 늦추고, 새로운 전기차 모델 계획을 지연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