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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대·서강대 등 서울 소재 대학 등록금 줄인상 물가 뛰며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 함께 치솟아 대학가의 고질적 재정 위기 해소될까
서울 소재 주요 대학들이 줄줄이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 물가 상승 국면에 장기간 등록금을 동결하며 재정난이 가중된 만큼, 정부 지원이 일부분 끊기더라도 등록금을 올려 수익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대, 서강대 등은 이미 등록금 인상 사실을 공식 발표했으며, 연세대 등 다수의 대학도 인상을 고려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요 대학 등록금 인상 릴레이
6일 교육계에 따르면, 국민대는 지난 2일 등록금심의위원회(등심위)에서 올해 학부 등록금을 전년 대비 4.97% 인상하기로 의결했다. 국민대가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은 17년 만이다. 국민대 관계자는 "등심위에서 등록금 인상 방안을 의결했다"며 "학교 시설 개선이나 인프라 확충 등 교육 질 개선 부분에서 많은 동의를 얻었다"고 말했다.
등록금 인상 흐름은 대학가 전반으로 번지는 분위기다. 앞서 서강대도 지난달 26일 열린 등심위에서 올해 학부 등록금을 전년 대비 4.85%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서강대가 등록금을 인상하는 것은 13년 만이다. 등록금 추가 인상분 중 54%는 장학금에 투입할 예정이며, 시설 개선에 26%, 교원 확충과 우수 교원 확보에는 20%가 활용된다.
이 밖에도 동국대, 성신여대, 한양대, 연세대, 경희대 등 다수의 서울 소재 대학들이 올해 학부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등록금 인상 여부와 관련해 한양대 관계자는 "올해는 꼭 등록금을 인상할 수 있도록 마지막까지 협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연세대 관계자는 "등록금 인상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다만 아직 확정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 간접 규제 '무용지물'
대학들이 줄줄이 등록금 인상을 검토하고 나선 것은 최근 이어진 물가 상승세로 등록금 인상 상한선이 눈에 띄게 치솟았기 때문이다. 수년 전까지만 해도 1~2%에 그쳤던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은 지난해 5.64%, 올해 5.49%까지 뛰었다. 현행 고등교육법은 대학교의 등록금 인상 상한을 ‘직전 3개 연도의 평균 소비자물가 상승률의 1.5배’로 규정하고 있다.
정부는 2012년부터 등록금을 인상한 대학에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금을 제공하지 않는 방식으로 등록금 동결을 유도해 왔으나, 등록금 인상률 상한선이 상승함에 따라 이 같은 압박은 힘을 잃었다. 등록금을 인상했을 때 들어오는 수입이 국가장학금 Ⅱ유형 지원 금액보다 커지며 사실상 규제의 의미가 퇴색된 것이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권한 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현 정부 상황이 등록금 줄인상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현 정부가 등록금 인상을 결정한 대학을 막는 것은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다. 실제 구연희 교육부 대변인은 6일 세종청사에서 열린 정례브리핑에서 "물가 상황 등 경제 전반을 고려해서 가급적 (각 대학에) 등록금 동결을 요청하고 있지만, 별도 대응 방안이나 이런 건 없다”고 발언하며 정부 대책의 부재를 시인하기도 했다.
한국 대학교의 재정난
교육계에서는 등록금 인상 흐름이 보편화할 경우 국내 대학의 고질적인 재정난이 일부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국내 대부분의 대학교는 장기간 등록금을 동결하며 재정난에 허덕여 왔다"며 "학생을 가르칠 교수를 영입하는 것에서부터 제동이 걸리는 것이 현실"이라고 짚었다. 이어 “좋은 교수진을 확보하기 위해 논의를 진행해도 결국 급여로 인해 채용이 무산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비교적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사립대의 경우 인재 양성을 위한 투자에도 애를 먹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수도권의 한 대학 관계자는 “매년 환경미화원 등의 인건비가 상승하고 있고, 전기료도 2021년 대비 80% 올랐다”며 “고정 지출을 모두 제하고 나면 예산이 부족해 창업, 취업 지원 프로그램 지원 등에 힘을 쓸 수가 없다”고 호소했다. 학과별로 배분한 예산을 2학기에 회수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관련해 비수도권 소재 한 대학 관계자는 “학과 예산 반납을 요구하면 학생들 실험·실습비, 지원비가 부족해지겠지만, 학교 재정이 너무 어려워 방도가 없다”고 설명했다.
자금 부족으로 인한 시설 노후 문제도 심각하다. 대학가의 지지부진한 석면 철거 공사 상황은 이 같은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석면은 2009년부터 국내 사용이 금지된 1급 발암 물질로, 철거 공사에는 수십억원에 달하는 공사비가 투입된다. 국립대와 달리 정부의 석면 철거 예산을 지원받을 수 없는 사립대에는 막대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가격인 셈이다. 지난 2017년 환경부의 '사립대학 석면 현황' 분석 결과에 따르면 국내 332개 사립대학 석면 함유 면적은 768만3,870㎡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