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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1기 때는 中 원자재 우회 수출 타깃 2기에서는 멕시코서 조립하는 中 부품 겨냥 고관세 부과 시 '자유무엽협정' 폐기될 수도
취임을 2주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멕시코를 '중국의 트로이 목마'로 생각하고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멕시코를 이용한 중국의 원자재 우회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멕시코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고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바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고관세가 현실화할 경우, 미국·캐나다·멕시코 3국 간 자유무엽협정의 폐지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미국과 멕시코 간 통상 관계가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으로 보인다.
'메이드 인 멕시코'는 '메이드 바이 차이나'?
6일(현지 시각) 영국 시사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메이드 인 멕시코(made in Mexico)는 메이드 바이 차이나(made by China)을 의미하는가'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트럼프 당선인은 중국이 미국 시장을 공략하는 데 있어 멕시코가 '중국의 트로이 목마'라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 이는 멕시코가 중국이 미국 시장에 침투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작용하는 상황을 경계한 것으로, 트럼프 당선인은 "1월 20일 첫 행정명령 중 하나로 멕시코와 캐나다로부터 들어오는 모든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서류에 서명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임기 첫해인 2018년 중국과의 무역 전쟁을 선언하며 중국산 제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이에 중국 기업들은 관세를 피하기 위해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을 맺은 멕시코를 생산지로 선택했는데, 이듬해인 2019년 미국은 중국 수출업체들이 철강과 알루미늄을 미국에 수출하기 위한 경로로 멕시코를 악용하고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이에 멕시코 정부는 중국산 금속 수입에 관세를 부과했다. 특히 철강에 대해선 미국에 수출되기 전에 멕시코에서 '실질적으로 변형'돼야 무관세를 적용받을 수 있는 규정을 마련했다.
멕시코, 중국 제치고 미국 최대 교역국으로
1기와 달리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새로운 관세 정책은 미국 내 판매를 위해 멕시코에서 제품을 조립하거나 제조하는 중국 기업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멕시코를 우회해 무관세로 진입하는 중국 제품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제재의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2023년 멕시코는 미국을 상대로 4,901억 달러(약 715조5,000억원)어치를 수출하고 2,554억 달러어치를 수입해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교역국 자리에 올랐는데 공교롭게도 이 시기 중국의 멕시코 수출도 급증했다.
다만 수치만 보면 멕시코를 우회한 중국산 제품의 유입이 줄어든 것으로 보인다. 멕시코의 대미 수출에서 중국산 부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0년 21%에서 2023년 5% 미만으로 급락했다. 멕시코에서 중국산 부품을 미국에 수출하는 규모가 줄어든 것이다. 이에 대해 이코노미스트는 "현재 중국 기업들이 멕시코에서 확장하는 영역은 자동차 생산 공급망의 아랫단"이라며 "멕시코 내 중국 자동차 부품 업체들은 2018년 8개에서 2023년 말 기준 최소 20개로 늘었다"고 짚었다. 멕시코에서 조립해 미국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관세를 피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멕시코에 진출한 중국 부품 업체들은 배터리 케이스는 물론 운전자 지원 소프트웨어 같은 첨단 기술 요소도 생산한다. 중국산 부품을 사용해 멕시코에서 제조된 많은 자동차가 '차량의 75%가 멕시코에서 제조돼야 한다'는 USMCA 규정을 충족하고 있다. 그럼에도 트럼프 당선인이 협정 체결 상대국에 일방적으로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면 이는 협정 위반이 될 수 있으며 나아가 협정 파기의 조건이 된다. 이와 관련해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당선인이 취임 후 멕시코산에 25%의 관세를 부과한다면 USMCA는 폐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USMCA 폐기는 미국의 입장에서도 나라의 산업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USMCA는 미국 내 제조업을 보호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기여해 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는 원산지 규정을 강화해 미국산 부품 사용을 촉진했다. 하지만 협정이 폐기되면 외국산 제품의 유입이 증가해 미국 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미국 기업의 수출을 위축시키고, 수입 물가 상승을 초래해 소비자의 실질 소득 감소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美 제제 후 중남미 국가의 中 의존도 높아져
이에 최근 트럼프 당선인도 일률적인 고관세 정책에서 후퇴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6일 워싱턴포스트(WP)는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의 보좌진이 미국의 국가·경제 안보에 핵심적인 수입품만 포함하는 보편적 관세 계획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간 모든 수입품에 대해 10~20%의 관세를 물리겠다는 입장에서 후퇴한 것이다. WP는 "보편관세가 공약대로 적용된다면 식품이나 값싼 전자제품 등의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정치적으로 인기 없는 정책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미국의 과도한 자국 우선주의가 무역 시장에서의 미국 입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중국은 미국이 중남미 국가들을 뒷전으로 미뤄둔 사이 현지 인프라 프로젝트와 자원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면서 영향력을 키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멕시코와 콜롬비아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남미 국가가 미국이 배제된 인프라 프로젝트에 중국과 협약을 맺었다. 중남미의 주요 경제국들이 공개적으로 주요 무역 파트너로 미국 대신 중국을 택한 셈이다.
일례로 지난해 말 개항한 페루 창카이항은 중국의 일대일로 자금 36억 달러를 지원받아 건설됐다. 미국 윌리엄앤메리대학의 조사에 따르면 페루 창카이항, 에콰도르 수력발전 댐 등 중남미의 중국 프로젝트 규모는 2,861억 달러(약 417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중국의 아프리카 일대일로 프로젝트와 맞먹는 수준이다. 멕시코와 콜롬비아도 국가 단위의 협약을 체결하지 않았을 뿐 개별 도시 차원에서는 협력이 확대되고 있다. 두 나라의 수도인 멕시코시티와 보고타의 지하철 노선 개보수 및 확장 사업에도 최근 중국 자본이 투입됐다.
자원 개발에 대한 투자도 확대되고 있다. 중국은 중남미에서 구리, 리튬 등 중요 원자재 채굴권을 보유하고 있는데 각국 국영 기업과 합작 회사를 운영하는 방식으로 자원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 중국 배터리 기업 CATL은 볼리비아 정부와 10억 달러 규모의 리튬 개발 계약을 체결했고 전기차 제조 기업 비야디(BYD)는 칠레 정부와 1억2,100만 달러 규모의 리튬 채굴 계약을 체결했다. 이 외에도 중국은 아르헨티나 리튬, 베네수엘라 원유, 브라질산 철광석과 콩 등을 대량으로 구매하며 중남미 국가들의 '큰손'으로 불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