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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서프라이즈에 금리 인상론 솔솔
美 차기 정부, 점진적 관세 인상안 검토
재정적자 막기 위한 추가 압박 가능성도
세계 금융시장의 중심 월가에서 미국 기준금리가 인상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이는 올해 기준금리 추가 인하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장의 예측에서 한발 더 나아간 것으로, 그 배경으로는 미국의 견조한 고용 지표와 인플레이션 우려 등이 꼽힌다. 미국 차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이 전 세계적인 경제 불확실성을 키우는 가운데 국내에서는 관세에 이은 추가 압박 수단이 등장할 것이란 전망도 고개를 들고 있다.
‘금리 인하 사이클 종료’ 공감대 형성
미국 경제 전문 매체 비즈니스위크는 13일(이하 현지시각) “월가가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올해 내내 금리를 더는 내리기 어렵다며 기대를 접기 시작했다”면서 “일부 전문가는 연준의 다음 행보가 금리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고 보도했다. 금리와 관련한 논의의 초점은 이제 인상으로 옮겨갈 때라는 게 비즈니스위크의 진단이다.
실제로 주요 금융기관들은 올해 추가 금리 인하가 없을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는 “이제 연준의 금리 인하 사이클이 끝났다”고 단언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목표치보다 높고, 경제 활동이 왕성하기에 추가적인 통화정책 완화 이유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연준의 다음 조처는 금리 인상으로 치우쳐 있다”고 바라봤다.
BNP파리바는 연준이 올해 금리를 추가로 내리지 않을 것이라는 기존 전망을 유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 정부가 대대적인 관세 정책을 동원하면서 대규모 인플레이션 압박이 있을 것으로 보이며, 이에 따라 1970년대 스타일의 장기 인플레이션이 고착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BNP파리바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가 이미 ‘매파 피벗(정책 전환)’을 선언했고, 연준 안팎에서도 이런 정책 기조에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전하며 “미국의 노동 시장이 계속 뜨거운 상태를 유지하면, 연준의 다음 행보는 금리 인상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BNP파리바의 설명처럼 월가가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을 점치게 된 시발점은 예상을 뛰어넘는 미국의 고용 지표다. 미 노동부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미국 비농업 일자리는 전월 대비 25만6,000명 증가했다. 이는 애초 전문가들의 전망치인 15만5,000명을 크게 상회하는 수치다. 실업률 또한 4.1%로 예상치(4.2%)를 밑돌았다.
이와 같은 ‘고용 서프라이즈’는 미국 경제가 우려했던 것보다 훨씬 탄탄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고용이 증가하고 실업률이 낮아지면 경제 과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각국의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인상하는 경향이 있다. 통상 금리 인상은 차입 비용을 높여 기업의 투자를 줄이고 소비를 억제함으로써 경제 성장을 둔화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견조한 고용 지표와 함께 이번 주 발표 예정인 지난해 12월 소비자물가 지표도 금리 인하 기대를 접어야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블룸버그가 집계한 경제학자 설문조사에 의하면 지난해 12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전월 대비 0.2% 상승할 것으로 예상됐다. 소비자들의 시각에서 물가 변동을 측정하는 CPI는 구매 동향 및 인플레이션의 변동을 측정하는 데 활용된다.
관세 인상 부작용 우려에 국제비상경제권법 ‘만지작’
차기 행정부의 고율 관세 정책이 과도한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가 잇따르자, 트럼프 당선인 측은 ‘점진적 관세 인상안’을 검토하고 나섰다. 당초 예고했던 관세를 단숨에 부과하지 않고 천천히 매달 점진적으로 올려 각종 부작용을 최소화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부터 모든 수입품에 10~20% 보편 관세를 적용하고, 중국산 수입품에 60% 이상의 관세를 물리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가장 유력한 점진적 관세 인상안으로는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을 포함한 행정권 행사로 매월 2~5% 관세율을 인상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IEEPA는 미국의 안보나 외교, 경제 등에 위협이 되는 국가 비상사태가 발생했을 때 대통령에게 외국과의 무역 등 경제 활동을 광범위하게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는 제도로, 복잡한 입법·행정절차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해당 논의에 참여 중인 차기 행정부 경제팀 인사들로는 스콧 베센트 재무부 장관 지명자, 케빈 해셋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 지명자, 스티브 미런 대통령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지명자 등이 있다. 이달 초 워싱턴포스트(WP)의 “차기 행정부는 미국의 국가·경제 안보에 핵심적이라고 여겨지는 특정 분야와 관련된 품목에만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는 보도에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던 트럼프 당선인도 IEEPA 발동과 관련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에 장기 차입 비용 상승
다만 이와 같은 논의도 경제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를 종식하기엔 역부족인 모습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지난 10일 공식 석상에서 “미국 경제의 규모와 역할을 고려할 때 전 세계적으로 곧 들어설 (트럼프) 정부의 정책 방향에 대한 관심이 높다”면서 “이는 곧 상당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관세 위협을 둘러싼 불안감으로 장기 차입 비용이 상승하고 있으며, 글로벌 공급망에 종속돼 있는 아시아 국가들은 더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게오르기에바 총재의 지적이다. 그는 “향후 미국의 관세, 세금, 규제 완화 그리고 정부 효율성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며 “이는 곧 상당한 불확실성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국내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관세 인상에 만족하지 않고 또 다른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을 점치는 분위기다. 미국 정부 전체 세수의 2% 남짓에 불과한 관세 인상만으론 막대한 재정적자를 상쇄하기 어려운 만큼 추가 압박 수단을 추진할 공산이 크다는 분석이다. 관세에 이른 유력 압박 수단으로는 환율이 거론된다.
이시욱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은 모리스 옵스트펠드 버클리캘리포니아대(UC버클리) 교수를 인용해 “트럼프 당선인이 1985년 플라자합의와 비슷하게 ‘마러라고(트럼프 당선인의 별장) 합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과거 미국 레이건 정부는 감세와 규제 완화를 추진하는 과정에 막대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라는 ‘쌍둥이 적자’ 문제가 생기자, 교역 상대국인 일본과 독일의 통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높이는 플라자합의에 나선 바 있다. 미국 차기 행정부의 정책이 어느 순간 관세에서 환율로 옮겨갈 수도 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