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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구지은 전 부회장에 지분 매각 내용증명 보내 앞서 MOU에 제시한 주당 6만5,000원에 매각 타진 정관이 정한 우선매수권도 사실상 소멸됐다는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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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지은 아워홈 전 부회장이 한화호텔앤드리조트로부터 보유 지분에 대한 마지막 매각 기회를 통보받았다. 한화 측이 아워홈 지분 100% 인수를 목표로 하는 만큼 2대 주주인 구지은 전 부회장의 지분 인수가 인수전의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식자재·급식업체 아워홈은 고(故) 구자학 회장이 GS리테일(옛 LG유통) 푸드서비스 사업부에서 분리해 매출 2조원 규모로 키운 회사로 구자학 회장의 4남매(구본성·구미현·구명진·구지은)가 지분을 나눠 가지고 있다.
구지은 전 부회장, 23일까지 매각 입장 통보해야
14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최근 구지은 전 부회장은 구미현 아워홈 회장과 한화호텔앤드리조트 측으로부터 아워홈 지분 40.27%에 대한 매각 의사를 묻는 내용증명을 받았다. 매각 대상은 구지은 전 부회장의 지분과 구지은 전 부회장과 뜻을 함께하는 구명진 전 이사의 지분이다. 내용증명에 따르면 구지은 전 부회장 측은 오는 23일까지 매각에 대한 입장을 통보해야 하는데 내용증명에는 '마지막으로 매각 기회를 드린다'는 문구가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지난해 8월 한화호텔앤드리조트는 아워홈 지분에 대한 주식거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한화그룹 3세 김동선 부사장이 주도하는 이번 인수 작업에서 한화 측은 아워홈 지분 100% 인수를 목표로 주당 6만5,000원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아워홈 지분은 최대 주주인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이 38.56%, 2대 주주인 삼녀 구지은 전 부회장이 20.67%, 차녀 구명진 씨와 장녀 구미현 회장이 각각 19.6%, 19.28%를 보유하고 있다.
한화 측이 구지은 전 부회장에게 제시한 매각 조건은 주당 6만5,000원으로 MOU에 명시한 금액과 같다. 한화로의 지분 매각은 사남매 중 둘째인 구미현 아워홈 회장이 주도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구 회장의 지분 매각 가격도 동일한 가격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이미 한화 측과 MOU를 체결한 구본성 전 부회장도 주당 6만5,000원에 매각하는 것에 동의했다. 만약 구지은 전 부회장 측이 이번 내용증명에 응하는 답신을 보낼 경우, 한화는 아워홈의 지분 100%를 인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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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책정 가격 높아 우선매수권 행사도 어려워져
구지은 전 부회장이 한화 측으로부터 지분 매각에 관한 최종 제안을 받음에 따라 아워홈 인수전도 막바지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지난해 말 실사를 마치고 최종 거래 조건을 조율 중이다. 조만간 협상을 마무리하고 아워홈 지분 100%를 1조5,000억원에 매입하는 주식매매계약(SPA)을 체결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구지은 전 부회장의 경우 지난해 6월 언니 구미현 회장에게 경영권을 빼앗겨 실질적인 영향력은 제한적이나, 여전히 2대 주주로 남아있는 만큼 인수전의 향방에 일정 부분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지난해 말 한화가 아워홈 인수에 처음 뛰어들었던 때만 하더라도 아워홈 정관이 규정한 우선매수권이 변수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우선매수권은 외부 투자자보다 기존 주주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아워홈 정관 제9조 제3항에 따르면 기존 주주가 주식을 양도할 경우 주주 명부상 다른 주주에게 우선적으로 주식을 양도해야 한다. 즉, 한화가 제시한 가격을 구지은 전 부회장이 감내할 수 있다면 한화보다 먼저 구미현 회장과 구본성 전 부회장의 지분을 매입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한화가 아워홈에 제시한 주당 6만5,000원, 기업가치 1조5,000억원이란 가격은 경쟁사로 꼽히는 현대그린푸드, CJ프레시웨이, 신세계푸드와 비교해 상당히 높게 책정됐는데 경영권 확보를 위한 주주 설득과 우선매수권을 고려한 전략적 조치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한화의 매수 가격은 아워홈이 자사주 매입을 위해 스스로 평가한 가치(3만8,000원)보다도 1.7배 가량 높다. 또한 한화는 주가수익배율(PER)을 11.0으로 산정했는데 아워홈의 4개 분기 실적 기준 PER 평균이 2.91인 점을 감안하면 현재 시장 평가의 약 3.8배에 해당하는 높은 수준으로 가격을 책정한 셈이다.
우선매수권도 더 이상 변수가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법조계는 이번 내용증명에서 '마지막 주식 매각 기회'라고 표현한 점에 주목한다. 한화는 MOU 체결 당시 주당 매각 가격을 명시했고 충분히 우선매수권을 행사할 기회를 줬으므로 우선매수권 행사 기회가 이미 소멸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매수권 행사의 절차를 따로 정하지 않았을 경우, 실질적으로 방해할 목적 없이 행사 기간을 충분히 줬는지, 우선매수권 행사 방해를 위해 지나치게 허황된 가격을 부른 것은 아닌지 여부로 결정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구지은 전 부회장 향후 행보에 다양한 가능성 제기
구지은 전 부회장 측은 종전까지 우선매수권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입장을 유지해 왔다. 주식 매각 의사를 묻는 마지막 내용증명을 받기 전까지 구지은 전 부회장 측 관계자는 "실사도 완료하지 않은 상태에서 MOU를 추진 한다는 내용만 고지받았다"며 "현재 다양한 방법으로 상황에 대비하고 있으며 제대로 제안을 넣으면 그때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전한 바 있다. 현재 구지은 전 부회장은 이번 내용증명에 대해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다만, 최근까지 구지은 전 부회장은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미현 회장이 보유한 아워홈 지분을 매입해 경영권을 탈환하고자 재무적투자자(FI)를 물색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그룹이 제시한 아워홈의 기업 가치(1조5,000억원)를 기준으로 추산하면 구 전 부회장이 두 남매의 지분을 가져오기 위해 마련해야 하는 인수 자금은 8,700억원에 달한다. 금융권 대출로 조달 가능한 최대 인수 금융이 6,100억원임을 감안하면 모자란 인수 자금을 메우기 위해 FI로부터 2,600억원을 추가로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다.
업계에서는 구지은 전 부회장의 향후 행보에 대해 다양한 관측이 제기된다. 구지은 전 부회장의 보유 현금을 감안하면 우선매수권 행사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만큼 당분간 아워홈 대신 캘리스코 경영에 집중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가능성이 있다. 구지은 전 부회장은 현재 캘리스코 사내이사로 활동 중이다. 캘리스코 최대 주주는 린드먼아시아인베스트먼트로 구 전 부회장이 향후 린드먼아시아인베스트먼트의 캘리스코 지분을 매입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구지은 전 부회장이 매각 절차나 우선매수권 행사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며 법적 대응에 나설 가능성도 존재한다. 이 경우 우선매수권 행사를 다투기 위한 목적보다는 더 유리한 조건을 끌어내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있다. 매각 기한인 23일까지는 경영권 참여를 포함한 다양한 조건을 협상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외에도 일부 지분만 매각하고 소액주주로 남아 회사의 미래 가치 상승에 베팅하는 방안도 고려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