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수정
'SMC' 법적 형태 놓고 대립 순환출자구조 적법성 '쟁점' 경영권 분쟁 2차전 '법정'서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주주총회에서 법정으로 옮겨갔다. 사법부가 어떤 판단을 내리느냐에 따라 경영권 분쟁 판도가 완전히 달라질 전망이다. 법원이 지난달 23일 열린 임시 주주총회 결과를 인정한다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이 승기를 굳히게 되지만, 반대의 경우 MBK파트너스와 영풍 영합은 오는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다시 표 대결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MBK·영풍 "SMC, 영풍 주식 차입금으로 취득"
3일 투자금융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 경영권 인수를 추진하는 MBK·영풍과 고려아연 측이 영풍 지분 매입에 사용된 선메탈코퍼레이션(SMC)의 자금 출처를 놓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MBK는 전날 "SMC가 고려아연의 지급보증을 통해 차입한 자본지출(CAPEX) 자금을 최 회장의 지시로 본업과 연관성이 없는 영풍 주식 매입에 활용했다"며 "SMC의 영풍 주식 취득이 고려아연에 적용되는 상호출자 금지를 회피하기 위해 고려아연의 계산으로 이뤄진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SMC가 최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해 아무런 인수 유인이 없는 영풍의 주식을 취득했다는 지적이다.
MBK는 SMC의 재무제표와 고려아연 연결·별도 감사보고서 등을 분석한 자료를 인용해 2023년 말 SMC의 단기차입금은 1,160억원 수준이며 이는 고려아연이 지급보증을 제공하고 호주 현지 ANZ은행 등에서 차입한 금액이라고 짚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으로 SMC는 1,160억원 차입금 중 300억원가량을 상환하고 나머지 850억원의 차입금을 부담하고 있던 상태였다는 설명이다. MBK는 "2024년 말 기준 SMC의 현금 보유액 대부분은 영업으로 인한 이익이 아니라 고려아연이 지급보증을 했기 때문에 존재한 셈"이라며 고려아연 임원을 겸하고 있는 박기덕 SMC 이사와 이성채 SMC 대표가 최 회장 지시로 영풍 주식을 매수했다고 주장했다.
SMC는 영풍 주식을 취득하는 데 575억원을 썼다고 공시했는데 이를 두고 MBK는 "575억원은 SMC의 2023년까지 직전 5개년간 평균 연간 CAPEX 투자액인 1,068억원의 약 54%에 해당하는 대규모 금액"이라며 "도저히 SMC가 스스로의 경영 판단에 의해 영풍 주식을 취득했다고는 보기 어려운 지점"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MBK에 따르면 SMC는 대규모 투자가 필요할 경우 모회사로부터 유상증자를 통해 추가 출자를 받아왔고, 2020년 고려아연으로부터 1억4,000만 달러(약 2,000억원)를 추가 출자받기도 했다. MBK 관계자는 "SMC 재무구조상 고려아연이 지급보증한 차입금을 활용했을 개연성이 농후해 SMC의 영풍 주식 취득이 고려아연의 계산으로 이뤄졌다는 점이 더더욱 명백해지고 있다"며 이는 공정거래법상 상호출자 금지를 회피하는 탈법 행위에 해당한다고 강조했다.
SMC "영풍 주식 취득은 적법하며 정당한 조치"
이에 고려아연과 SMC는 영풍 주식 매입이 MBK·영풍 연합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하고 사업의 지속성과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 조치였다고 반박했다. 영풍에 대한 주식매입은 주식회사로서 이사회의 의결을 거친 합리적인 재무적, 사업적 판단이라는 것이다. 해외 제련 사업 경험이 부족한 MBK·영풍에 고려아연 경영권이 넘어갈 경우 SMC의 사업 규모가 축소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SMC에 필수전력을 공급하는 고려아연의 호주 내 신재생에너지 사업 등에 차질이 생길 경우 현지 제련소 경쟁력에는 막대한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SMC는 영풍 지분 매입이 투자 측면에서도 합리적인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고려아연 최씨 일가로부터 종가 대비 약 30% 할인된 가격에 주식을 매입해 가격적 이득을 얻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영풍은 주가순자산비율(PBR)이 0.1~0.2배 수준인 저평가, 저PBR종목으로 최근 소액주주연대와 행동주의펀드 등의 지배구조개선 및 주주친화정책 요구에 따라 주가가 상승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여기에 영풍의 평균 배당 등을 감안할 때 매년 약 19억원의 배당 수입도 전망된다.
이어 SMC는 상호주 형성이 탈법행위라는 지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상호주 형성은 대법원 판례가 인정하는 적법하고 정당한 적대적 인수·합병(M&A) 방어 수단이라는 까닭에서다. 또 상호주 성립에 따른 영풍의 의결권 제한 역시 법의 테두리 내에서 이뤄진 합법적인 조치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SMC는 자사가 유한회사가 아닌 주식회사라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 MBK·영풍은 SMC가 상호주 의결권 제한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 유한회사라고 주장했으나 SMC는 자사의 회사 유형은 호주 회사법상 ‘Pty Ltd’로 50인 이하의 주주로 구성되는 ‘비공개 주식회사’라는 설명이다.
MBK·영풍, 공정위 고발 이어 검찰 고발
현재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공은 법정으로 넘어간 상태다. MBK·영풍은 3일 서울 남부지검에 최 회장과 박기덕 대표, 이성채 대표와 최주원 SMC 최고재무책임자(CFO) 등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배임) 및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MBK·영풍 측은 최 회장 개인의 자리보전을 위해 해외 계열사 SMC의 공금이 이용됐다는 점에서 배임이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MBK·영풍 측은 지난달 31일 최 회장과 박 사장 등 피고발인 4인을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고려아연이 SMC를 활용해 만든 ‘고려아연→SMH→SMC→영풍’의 순환출자 고리는 기업집단이 해외 계열사를 이용해 의도적으로 상호출자 제한 규제를 회피하려고 한 최초의 사례이자, 공정거래법의 입법 취지를 정면으로 훼손한 탈법행위라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MBK·영풍은 같은 날 서울중앙지법에 고려아연 임시주총 결의의 효력을 정지해 달라며 가처분도 신청했다. 양측은 오는 3월 정기주총에서 다시 표 대결을 벌일 예정인데, 가처분 결정에 따라 판세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법원이 영풍의 가처분 신청을 기각하면 최 회장의 경영권 수성이 가시권에 들어온다. 최 회장이 세팅한 룰대로라면 MBK·영풍 측이 경영권을 장악할 여지가 사실상 사라지기 때문이다.
고려아연은 이미 정관을 고쳐 이사회 정원을 19인으로 제한했다. 장형진 영풍그룹 고문을 제외한 17인이 최 회장 측으로, 이 중 5인(박기덕·최내현·김보영·권순범·서대원)의 임기가 오는 3월 종료된다. 설령 3월 정기주총에서 MBK·영풍 측 이사 후보들이 모두 진입하더라도 이사회 구도는 13대 6으로 경영권 장악이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특히 다음 주총부터는 집중투표제를 통해 이사를 선임하는 만큼 최 회장 측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 재계의 시각이다.
반면 법원이 가처분을 인용하면 상황은 정반대가 된다. MBK·영풍은 의결권이 온전히 부활하고, 표 대결도 원점에서 다시 이뤄질 것으로 관측된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의결권이 과반에 육박하는 MBK·영풍 연합의 승리가 불을 보듯 뻔하다. 법원 결정이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의 향배를 가르는 핵심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