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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우리은행 정기검사 결과 발표 현 경영진 체제 부실도 속속 드러나 평가등급 강등 유력, 생보사 인수 불투명
우리금융지주의 숙원 사업인 생명보험사 인수가 난항에 부딪혔다. 금융당국의 정기검사 결과 우리은행 부당 대출을 비롯한 부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경영실태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여기에 인수합병(M&A)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의 흠결까지 확인되면서 동양·ABL생명 인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350억원→730억원
4일 금융감독원은 우리은행에 대한 정기검사 결과 총 101건의 부당대출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금액으로는 2,334억원에 달하는 규모다.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관련 친인척 불법대출은 기존에 알려진 350억원 외에도 추가로 380억원이 적발되면서 총 730억원 규모로 파악됐다. 금감원은 이 가운데 61.8%에 해당하는 451억원이 임종룡 회장 등 현 경영진 취임 이후 취급됐다는 점을 명시했다.
손 전 회장 친인척 불법대출 관련 건에 대한 부실화 정도도 높은 수준을 나타냈다. 730억원 중 46.3%인 338억원에서 부실이 발생했다. 2023년 3월 이후 발생한 부당대출 451억원 중에서는 27.3%인 123억원이 부실로 분류됐다. 금감원은 연체 악화 가능성도 제시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현재 시점에서는 정상 분류된 328억원에서도 일부 연체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현직 고위 임직원 27명이 단기 성과 달성을 목적으로 부당대출 1,604억원을 취급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 중 61.5%(987억원) 현 경영진 체제에서 취급됐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홍콩 H지수 급락으로 손실이 확대되자, 의도적으로 평가데이터를 왜곡하는 방식으로 손실액을 숨긴 점도 발각돼 지적을 받았다. 금감원은 “새로 확인된 부실 위험을 모두 반영하면 우리금융의 보통주 자본비율은 0.1%p~0.2%p 하락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우리금융의 보통주 자본비율은 11.96%로 금감원의 권고 수준(12%)에 미치지 못한다.
이번 검사 결과는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 인수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가운데 나온 것으로 눈길을 끈다. 국내 4대 금융그룹(KB·신한·하나·우리) 중 유일하게 보험 계열사를 보유하지 못한 우리금융은 이번 인수를 포트폴리오 확장의 승부수로 삼고 있다. 지난해 8월 이사회에서 동양생명과 ABL생명 지분 각각 75.34%, 100%를 총 1조5,494억원에 인수하기로 한 우리금융은 지난 1월 15일 금융위원회에 인수 승인 신청서를 제출한 상태다.
관건은 우리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경영실태평가 결과다. 금융지주회사감독규정에 따르면 금융지주가 자회사를 편입하기 위해서는 경영실태평가에서 2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 우리금융은 지난 2022년 진행된 종합검사에서 2등급을 받았지만, 이번 검사에서 부실이 대거 드러나면서 3등급으로 떨어질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영실태평가 도출 서두르는 당국, 우리금융 ‘초긴장’
금감원은 이번 정기검사 결과를 토대로 최대한 이른 시일 내 경영실태평가를 도출할 방침이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되도록 이달 내 금융위에 정기검사 결과를 송부하고, 3월 정도에는 금융위가 (인수 승인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경영평가 등급 도출 일정은 매우 이례적인 단축으로, 통상 금융기관 검사 이후 최종 등급 도출까지 1년 6개월가량이 소요된다. 우리은행 역시 2022년 11월 진행된 검사 결과를 지난해 6월에야 받은 바 있다.
업계에서는 빠듯한 일정 속에서 우리금융의 반론권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등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2020년 이후 실시한 20회의 은행 검사에서 경영평가 등급을 미리 통보한 사례가 7회 있으며, 특히 이번 우리금융의 경우 이미 종합검사가 진행된 만큼 이를 인수 심사에 반영하는 게 타당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금감원은 우리금융이 동양·ABL생명 인수와 관련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 준수에 미흡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임 회장이 자회사 M&A 안건을 논의하기 위한 리스크관리위원회가 개최되기도 전에 해당 안건을 이사회에 부의하기로 미리 결정했다는 것이다. 내규에 의하면 M&A를 비롯한 중요 경영사항 추진 시에는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 심의를 받아야 하고, 해당 심의 결과를 이사회 의사결정에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금융은 지난해 8월 주식매매계약 당일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를 불과 20분 간격으로 개최했고, 심의 내용 또한 이사회 안건에 전혀 반영하지 않았다. 특히 금융당국의 인허가를 받지 못해 계약이 파기되는 경우, 계약금을 몰취하는 조항이 주식매매계약에 포함됐음에도 이를 이사회 석상에서 논의하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의 주장이다.
이 같은 지적에 우리금융은 억울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우리금융 관계자는 “리스크관리위원회와 이사회에 소속한 이사진들이 같다”며 “일정을 맞추기가 힘들어 같은 날 소집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별 안건에 대해서는 미리 이사진에게 설명을 충분히 하고, 리스크관리위원회에서 부결된 안건은 이사회에 올라가지도 못한다”면서도 “금감원이 지적한 내용을 정리해 바로잡을 부분이 있다면 즉시 바로잡겠다”고 밝혔다.
임종룡 회장 거취에도 촉각
지난해 우리금융은 다자보험과 동양·ABL생명 패키지 인수 계약을 체결하며 인수 가격의 약 10%에 해당하는 1,550억원의 계약금을 지불했다. 그러면서 12개월 안에 인수를 완료한다는 단서 조항 또한 포함했다. 원칙상으로는 9개월 안에 절차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이지만, 부득이한 경우 최대 3개월을 연장한다는 내용이다. 만약 이행 불능 상태가 되면 앞서 언급했듯 계약금은 몰취된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인수전의 성패에 따라 임 회장의 입지 또한 변화가 있을 것이란 평이 우세하다. 임 회장은 2023년 3월 취임과 동시에 우리금융의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을 선언한 데 이어 동양·ABL생명 인수전의 선봉에 서는 등 비은행 부문 강화 전략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그러나 금감원이 우리은행의 잇따른 금융사고가 현 경영진과도 무관치 않다고 적시한 만큼 이번 인수가 무산될 경우 임 회장으로서는 책임론을 회피할 방도가 없는 실정이다.
임 회장의 책임론은 비단 보험사 인수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말 투자매매업 예비인가를 받은 우리투자증권 또한 아직 본인가 승인을 받지 못한 탓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금융당국이 부당대출 건으로 모회사인 우리금융의 대주주 적격성을 문제 삼은 것이란 시각이 주를 이룬다. 투자증권사는 예비인가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본인가 신청서를 금융위에 제출해야 하며, 만약 신청서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 예비인가마저 효력을 상실한다. 결국 우리투자증권은 1월 말께 본인가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승인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임 회장의 ‘비은행 강화’ 청사진이 은행의 부당대출로 빛을 잃을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