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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대기업, 관세 전쟁 대응 본격화 캐나다 110개, 멕시코 91개 해외법인 미국 현지 생산, 생산지 다변화 예상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전쟁이 본격화하면서 대기업-중견기업-중소기업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제조업 생태계가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한국 주요 수출기업의 생산 거점이 포진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한 관세 위협이 이어지면서 한국 핵심 산업 생산지의 미국 이전이 가속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캐나다·멕시코 관세 부과, '관세 전쟁' 우려 현실화
5일 산업계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멕시코, 캐나다, 중국산 제품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예고함에 따라 멕시코와 캐나다에 주요 생산라인을 둔 국내 대기업들은 미국 현지 생산 또는 생산지 다변화 전략으로 대응에 나서고 있다. 멕시코, 캐나다산 25% 관세에 대해 관세 부과를 한 달 유예하기로 했지만 ‘관세 장벽 쌓기’는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멕시코 캐나다에 진출한 국내 대기업 업종은 가전, 배터리 등이다.
멕시코와 캐나다는 한국 기업들의 최대 시장인 미국과 지리적으로 인접해 물류비가 적게 드는 데다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덕에 미국 수출시 무관세 혜택을 볼 수 있다. 또 멕시코의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원가를 절감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특히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기업들은 미중 무역갈등이 심화했던 트럼프 1기 행정부 때부터 멕시코와 캐나다로 생산 기지를 옮기면서 니어쇼어링의 혜택을 누려 왔다.
국내 대기업들, 북미 생산거점 이전 등 검토
국내 대기업들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200곳 가량의 해외법인을 갖고 있다. 4일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가 공정거래위원회 지정 88개 대기업집단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세운 해외법인 현황을 조사한 결과, 25개 그룹이 캐나다와 멕시코에 설립한 해외법인이 각각 110곳, 91곳으로 집계됐다.
삼성이 68곳으로 가장 많았다. 캐나다에선 태양광, 풍력,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고 멕시코에선 TV,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만들어 미국에 수출한다. 현대차그룹은 28곳(멕시코 16곳, 캐나다 12곳)을 뒀는데 현대차, 기아, 현대모비스는 멕시코 법인 등을 통해 완성차와 부품을 생산한다. LG에너지솔루션이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배터리 공장을 보유하고 있고, 포스코퓨처엠과 에코프로비엠은 퀘백주에 각각 배터리 소재 공장을 짓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관세 부과 방침에 따라 멕시코와 캐나다 지역에 둥지를 튼 한국 기업들은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게 됐다. 삼성전자는 멕시코 공장에서 생산 중인 건조기 물량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뉴베리 공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LG전자도 일부 멕시코에서 생산하는 냉장고 물량을 미국 테네시주 공장으로 옮기는 방안을 고민 중이다. 기아는 누에보레온 공장에서 생산하는 준중형 세단 ‘K4’ 판매처를 일부 캐나다로 돌릴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신규 투자비, 고임금 부담에 당장 이전은 힘들 듯
다만 일각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트럼프의 관세 부과에 대응해 멕시코와 캐나다의 생산시설을 곧바로 미국 혹은 제3의 지역으로 옮기기는 어려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미국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할 경우 막대한 신규 투자비가 드는 데다, 멕시코의 8~10배에 달하는 미국의 고임금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고관세 정책이 얼마나 지속될지도 불확실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인상에 나선 배경에는 캐나다와 멕시코 정부를 대상으로 무역수지 불균형 및 불법이민, 마약 억제 정책 등의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한 전략이 깔려 있는 만큼 협상 진행상황에 따라 관세 압력이 조기에 완화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주요 기업들의 미국 현지 투자가 늘면서 수출 대기업과 중소·중견기업 간 분업 구조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현지에 투자하는 온쇼어링을 압박하고 있는 만큼 결국 국내 기업들은 미국 현지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는 것은 물론 소재·부품까지 현지에서 조달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