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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허용’ 무역 허점 없애려는 목적
미국 현지 물류센터 구축 가속 전망
중국 ‘보복 관세’ 강경 대응에 맞불
미국 우정국(USPS)이 중국과 홍콩에서 미국으로 배송되는 모든 소포의 배송을 잠정 중단했다. 이번 조치를 계기로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테무·쉬인)’를 비롯한 중국 전자상거래(이커머스) 기업들의 글로벌 시장 공략에도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800달러 미만 패키지도 통관 절차 거쳐야
4일(이하 현지시각) USPS는 공식 홈페이지 통해 “추가 공지가 있을 때까지 중국과 홍콩 우체국에서 오는 모든 소포의 배송을 일시적으로 중단한다”며 “다만 편지와 대형 봉투 등 ‘플랫’ 요금을 적용받는 우편물은 이번 배송 중단 조치에서 제외된다”고 밝혔다. 해당 조치는 발표와 동시에 즉각 발효됐다.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2일 중국과 멕시코, 캐나다에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직후 발표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서는 25%의 관세 부과를 30일 동안 유예했지만, 중국산 제품에 대한 추가 10% 관세는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이번 행정명령의 핵심이 최소허용(de minimis)으로 규정된 무역 허점을 없애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최소허용은 수출업체가 800달러 미만의 패키지를 미국에 배송할 경우 세금을 면제하는 규정이다. 알리와 테무, 쉬인 등은 의류부터 가구, 가정용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초저가로 판매하며 해당 규정을 적극 활용했다.
미국 세관 및 국경 보호 기관 데이터에 의하면 미국은 지난해 13억 건 이상의 최소허용 물품을 처리했다. 미국 하원 중국 공산당 특별위원회는 2023년 보고서에서 “테무와 쉬인은 중국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최소허용 물품에 거의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무역 관리들 또한 최소허용 패키지를 ‘문서화 및 검사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테무와 쉬인은 그간 자사의 사업 모델이 최소허용 규정에만 의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지만, 이번 조치로 인해 미국 시장 성장 전략에도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이들 회사는 미국에 유통 센터를 구축해 현지 창고에서 바로 발송하는 등의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웬 비아오 첸허로지스틱스 총괄 매니저는 “주요 플랫폼들이 미국의 무역 제한에 대비하기 위해 현지 창고를 마련하는 추세는 작년부터 있어 왔다”며 “이번 조치로 더 ‘폭발적인’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펜타닐에 물든 미국, 책임은 어디에?
미국 정부와 USPS는 최근 국제적 문제로 떠오른 펜타닐 등 신종 마약이 자국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이유 또한 내세웠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1기 취임 당시부터 펜타닐(마약성 진통제)이나 그 원료 물질이 세관 절차가 허술한 소액 면세 제도의 구멍을 이용한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 역시 “펜타닐 원료 물질은 인터넷에서 200달러 안팎이면 살 수 있다”며 소액 면세 제도가 악용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뜻대로 펜타닐 문제를 관세와 연동해 완전히 해결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미국 정부는 중국에서 보낸다는 원료물질의 양도 가늠하지 못하고 있으며,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얼마나 많은 펜타닐이 들어오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 또한 전무하기 때문이다. 특히 펜타닐을 구성하는 원료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탓에 그 출처가 반드시 중국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게 국제사회의 중론이다.
중국 또한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중국 공안부 대변인은 “미국 펜타닐 위기의 근본 원인은 미국 그 자체에 있다”면서 “국내 마약 수요를 줄이고 법 집행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일갈했다. 그러면서 “중국은 세계에서 마약 퇴치 정책이 가장 엄격하고 실행이 가장 철저한 국가”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관세엔 ‘보복 관세’로, 보복 관세엔 ‘기업 옥죄기’로
트럼프 대통령이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관세에는 30일의 유예 기간을 두면서도 중국에는 USPS까지 동원해 제재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캐나다·멕시코 정상의 경우 관세 유예를 위해 미국의 요구를 적극 수용하겠다는 태도를 보였지만, 중국의 경우 기다렸다는 듯 즉각 전방위 보복 조치를 발표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미국으로서는 더 강력한 제재 수단이 필요했던 셈이다.
중국 국무원 관세세칙위원회는 4일 미국산 석탄 및 LNG에는 15%, 원유, 농기계, 배기량이 큰 자동차와 픽업트럭 등 총 72개 품목에 대해서는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 정부의 일방적인 관세 부과는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정상적인 경제 및 무역 협력을 해한다”고 날을 세웠다.
또 중국 국가시장감독총국은 미국 빅테크 구글이 자국의 반(反)독점법을 위반한 혐의가 드러나 조사 중이라고 밝혔으며, 상무부는 캘빈클라인 등 유명 패션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PVH그룹, 유전체 분석 기업 일루미나 등 미국 기업을 ‘신뢰할 수 없는 기업 명단’에 올렸다. 해당 명단에 오르면 중국으로의 수출이 금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멕시코 관세 유예 소식을 전하며 “시진핑(중국 국가주석)과도 24시간 내 대화할 예정”이라며 협상의 여지를 열어뒀지만, 이후 실제 대화가 오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