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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 쌓이는 HD현대, 조 단위 M&A 여력 충분 기업가치 저평가된 회사 인수할 '적기' HMM 인수 위해 KDB산업은행과 접촉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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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현대가 조 단위 매물을 인수하기 위한 탐색전에 돌입했다. 주요 계열사들이 호실적을 내며 현금이 쌓이고 있어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회사를 인수하기에 적기라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HD현대가 지난해 매각이 무산됐던 HMM을 인수하기 위해 물밑에서 KDB산업은행과 접촉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HD현대, 조 단위 몸값 기업 물색
14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HD현대는 조 단위 몸값의 기업을 사들이기 위해 본격적으로 시장 조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일각에서는 HD현대가 사모펀드(PEF) 운용사 제이앤PE에 매각했던 현대힘스를 되살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오지만, 그보다 규모가 큰 매물도 인수할 의지가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HD현대가 관심 갖고 있는 매물 중에는 HMM도 포함돼 있다. 이를 위해 HMM의 경영권을 갖고 있는 산업은행 등과 물밑에서 접촉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IB업계의 한 관계자는 “HMM의 경우 몸값이 너무 커져 인수 후보군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지만, 최근 재매각에 관한 문의는 많다”고 말했다. HMM은 오는 4월 남은 영구채가 모두 주식으로 전환되면 산은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합산 지분율이 72%에 육박할 전망인데, 이 경우 매각가가 1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주요 계열사들 호실적, "말 그대로 떼돈 번다"
HMM은 앞서 하림그룹도 눈독을 들였던 매물이다. 하림그룹은 지난 2023년 자회사 팬오션과 재무적 투자자(FI)인 사모펀드 JKL파트너스 등으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HMM 인수를 추진했다. 하림은 HMM 인수가로 6조4,000억원을 적어내며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됐지만, 자금 조달 능력에 의심을 받았다. 현금성 자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하림은 최대 3조원 규모의 팬오션 유상증자, 2조원 이상의 인수금융, 자산 유동화와 영구채 발행, JKL파트너스 지원 등으로 인수자금을 마련할 계획이었지만 지난해 2월 주주 간 계열 조건 불일치와 자금력 부족 등의 문제로 최종 M&A(인수합병)가 불발됐다.
반면 HD현대는 조 단위 M&A에 나설 여력이 충분하다. IB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단 방산 및 조선업이 굉장히 잘 되고 있으며, 전력 기기 계열사 HD현대일렉트릭이 말 그대로 ‘떼돈’을 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HD현대일렉트릭은 매출액 3조3,223억원, 영업이익 6,690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20% 증가했다. 전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붐의 영향으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관련 전력 인프라 투자가 대폭 늘면서 전력기기 매출액이 증가한 것이다. HD현대일렉트릭은 HD현대가 지분 37%를 보유한 자회사로, 작년 3분기 말 기준 유동자산(1년 내 현금화할 수 있는 자산)이 2조3,600억원에 달한다.
조선·해양 계열사도 HD현대그룹에 현금다발을 안겨주는 효자들이다. 지난해 HD한국조선해양은 매출액 25조5,386억원, 영업이익 1조4,341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408%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HD한국조선해양의 실적 개선은 자회사들 덕분이다. HD현대중공업은 매출액 14조4,865억원, 영업이익 7,052억원을 기록했으며 HD현대삼호는 매출액 7조31억원, 영업이익 7,236억원을, HD현대미포는 매출액 4조6,300억원, 영업이익 88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HD현대마린솔루션도 매출액 1조7,455억원, 영업이익 2,717억원을 기록하며 그룹의 호실적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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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지분 정리했지만 잠재 인수후보로 지속 거론
또한 HD현대는 지난해까지 HMM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HD현대가 HMM 주식을 취득한 시기는 2006년으로, HD현대 전신이던 현대중공업그룹은 현대상선 지분 26.7%를 4,950억원을 들여 확보했다. 하지만 현대그룹은 현대중공업그룹이 당시 KCC 지분을 합하면 현대그룹에 앞서게 되는 상황이어서 경영권 분쟁을 우려했다. 실제로 현대중공업그룹이 현대상선의 지분 26.7%를 확보하면서 현대가 며느리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과 그 시동생인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의 경영권 분쟁으로 비화했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적대적 M&A 위협에 처한 현대상선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분을 매입했다고 설명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아 적대적 인수합병 가능성이 꾸준히 제기됐던 현대상선의 백기사로 역할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현대그룹 측은 백기사로만 보기엔 대규모 매수라는 점에서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뿐만 아니라 당시 현대상선 지분 6.26%를 보유하고 있던 범현대가 KCC와 현대중공업이 연대할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이 같은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2013년 현대그룹 측이 현대중공업 측 지분을 희석하기 위해 현대상선 주주총회에서 우선주 발행 한도를 확대하는 방안을 통과시키고 일단락됐다. 이후 해운업계 경영 환경 악화로 현대상선은 공적자금이 투입되며 산은으로 넘어가 국유화됐고, HMM으로 사명을 바꿨다.
HD현대가 HMM 지분을 전량 매각한 건 지난해 8월이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D현대의 조선 부문 중간 지주사인 HD한국조선해양은 HMM 주식 338만475주를 661억9,000만원에 매각했다. HD현대삼호도 HMM 주식 149만7,024주를 276억5,500만원에 처분했다. 다만 매각 이후에도 HD현대는 정부가 세계 8위 해운사로 경영 정상화를 이룬 HMM 매각을 추진하면서 잠재적 인수후보군으로 거론돼 왔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산을 이어받는다는 상징적 의미에 더해 주력인 조선업과 시너지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