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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 이후 15년 만에 직접 매입
“세제 혜택 등 실효성 낮다는 판단”
시장 양극화 심화에 회의론적 시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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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방 미분양 해소에 팔을 걷어붙였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통해 ‘악성 미분양’으로 분류되는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하고, 이를 공공임대주택으로 활용한다는 구상이다. 매입 금액은 임대수요 등을 고려해 분양가보다 낮은 수준으로 책정될 전망이다.
악성 미분양 11년 만에 최대치
국토교통부는 19일 발표한 ‘지역 건설경기 보완방안’을 통해 LH의 미분양 아파트 매입 계획을 밝혔다. LH가 임대수요 등을 고려해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지방 준공 후 미분양 아파트 3,000가구를 직접 매입하고, 매입한 주택은 ‘든든전세주택’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든든전세주택은 시세의 90% 수준 전세금으로 최소 6년간 임대받아 살다가 분양받을지 여부를 선택하는 공공임대주택의 한 유형이다.
정부가 직접 지방 미분양 아파트 매입에 나선 것은 건설이 끝난 후에도 수분양자를 찾지 못한 악성 미분양이 11년 만에 최대치로 쌓이면서 지방 건설경기 침체의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말 기준 전국 준공 후 미분양은 2만1,480가구로 2014년 1월(2만566가구) 이후 가장 많았다. 이 가운데 약 80%에 해당하는 1만7,200가구가 지방에 분포한 것으로 파악됐다.
LH는 이번 지방 미분양 매입에 기축 매입임대주택 확보 예산 약 3,000억원을 활용할 예정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난해 1·10 대책 등을 통해 1가구 1주택 특례, 주택 수 제외 등 지방 미분양 매입에 세제 혜택을 부여했으나, 추가 세제 혜택을 준다고 해도 실효성이 낮을 것이란 판단을 내렸다”면서 “LH가 직접 매입하는 편이 낫겠다는 정책적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예산을 활용하는 만큼 추가로 투입되는 예산은 없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같은 듯 다른 2010년·2025년
LH가 지방 미분양 직접 매입에 나서는 것은 2010년 이후 15년 만의 일이다. 앞서 LH는 2008부터 2010년 사이 악성 미분양이 5만 가구를 웃돌자, 7,000여 가구를 매입한 바 있다. 악성 미분양 적체라는 점에서 2010년과 작금의 상황은 비슷하지만, 과거 미분양 물량은 대형 주택이 주를 이뤘다는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2008년 분양가상한제 시행을 앞두고 건설사들은 앞다퉈 ‘국민평형’(전용면적 84㎡)보다 큰 대형 주택들을 쏟아냈고, 이들 대형 주택은 전체 미분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짧게는 4년, 길게는 10년 이상 악성 재고 신세를 면치 못했다. 당시 대형 주택이 시장의 외면을 받았던 배경에는 건설사들의 수요·공급 예측 실패도 있었지만, 저출생과 핵가족화라는 사회 구조의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측면도 컸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2010년 분양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서 중소형 미분양 물건이 급감했다는 점도 이 같은 해석에 힘을 보탠다. 1~2인 가구가 늘어난 데다 전용면적 59·84㎡도 ‘방 3개·화장실 2개’ 구조로 효율화되는 등 굳이 대형 주택에 큰 자금을 투입할 유인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국토교통부의 미분양 현황 통계를 보면 2007년 11만2,254가구였던 미분양은 2008년 16만5,599가구로 정점을 찍은 뒤 2009년 12만3,297가구로 감소했다. 이 중 전용면적 60~85㎡ 주택 비율은 47.7%→42.2%→38.8%로 점차 감소한 반면, 85㎡ 초과 주택 비율은 47.2%→53.4%→56.5%로 꾸준히 증가했다.
일각에서 이번 LH의 악성 미분양 매입이 유의미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견해를 내놓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평형별 양극화가 심했던 2008년 이후 미분양과 달리, 최근의 미분양은 지역별 양극화에 그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중요한 것은 공급 대비 수요”라고 꼬집으며 “2008년과 달리 서울과 수도권은 여전히 주택 공급이 부족한 만큼 지방의 미분양이 수도권으로 번지는 등 전체 경기를 끌어내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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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제 완화·대출 문턱 낮추기, 미분양 해소엔 역부족
이 같은 회의론적 시각에도 정부가 미분양 매입에 나설 수밖에 없었던 배경에는 부동산 및 건설 경기 부양을 위해 추진한 대부분 정책이 모두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위기감이 짙게 작용했다. 일례로 2022년 8월에는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80%로 상향하고 생활안정자금을 2억원으로 완화하는 등 파격적인 금융 제재 완화를 시행했으나,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사실상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들만 받을 수 있는 혜택이라 기대한 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데 의견이 일치했다. 기존 주택 보유자는 기존 LTV에 걸려 한도가 나오지 않았고, 심지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3단계(대출 총액 1억원 초과 시 DSR 40% 적용)로 강화되면서 이전보다 대출 문턱이 더 높아졌다는 지적이다.
주택업계는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경우 취등록세를 감면해 주고, 1주택자가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할 경우 2주택자에서 제외해 양도소득세를 중과하지 않는 방안을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도 이를 적극 수용해 지난해 1월부터 올해 12월까지 미분양 아파트(전용 85㎡·취득가액 6억원 이하)를 개인이 최초로 취득하는 경우 취득세 산출 시 주택 수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에도 경기 부양은 요원한 실정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지방 분양시장의 경우 규제 지역 해제에도 미분양 적체가 심각하다”고 진단하며 “현재 미분양 물량은 2008년과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지만, 증가세는 매우 가팔라지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