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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등급 강등 이후 단기물 수요 예측 자금 이슈 발생 가능성 인지 후 회생절차 4,000억원 단기물에 발목 잡힌 유통 공룡

기업회생(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는 홈플러스와 관련해 채권 손실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짙어지는 모습이다. 특히 3개월 전자단기사채(ABSTB) 투자자들은 해당 채권을 상거래 채권으로 분류해 우선 변제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업계에서는 ABSTB를 상거래 채권으로 분류하더라도 홈플러스가 물품 대금을 지급해야 자금이 순환하는 만큼 기업회생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라는 시각이 주를 이룬다.
“매월 운전자본 용도 단기자금 조달” 해명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홈플러스 재무 담당자와 신영증권 기업금융(IB) 실무자는 홈플러스의 회생 신청 전 마지막 영업일이자 홈플러스의 단기신용등급이 하락한 지난달 28일 미팅을 진행했다. 당시 한국신용평가, 한국기업평가 등 신용평가사들은 홈플러스의 기업어음(CP)과 단기사채 신용등급을 ‘A3’에서 ‘A3-’로 강등했다.
단기자금 운영 수정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신영증권 담당자를 만난 홈플러스 관계자는 이 자리에서 CP, ABSTB 등 단기물에 대한 시장 수요를 문의했다. 홈플러스에 의하면 신영증권 담당자는 “A3- 등급 단기채는 인수자 규모가 작아 기존 발행 규모를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시장 조사 후에 다시 답변을 주겠다”고 했고, 이후 “최대한 발행 가능한 규모가 기존 발행 금액의 40%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답변을 전달했다.
단기자금 확보 규모가 크게 줄어들어 자금 이슈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홈플러스는 결국 회생 절차를 신청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등급 강등을 고지받은 이후 발행사로서 주관사를 만나 수요 변동 가능성에 대해 문의하는 건 당연한 절차”라고 말했다. 이 같은 증언은 홈플러스가 이번 기업회생 결정의 계기가 된 신용등급 강등 내지 강등 가능성을 사전에 알고도 직전까지 채권을 발행해 투자자들에게 손해를 끼쳤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한 해명으로 풀이된다.
신용평가사들의 고지 전까지 신용등급 강등을 예상하지 못했으며,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기로 결정한 시점은 신용등급 하향 조정 이후라는 게 홈플러스와 주주사 MBK파트너스의 일관된 입장이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MBK에 인수되기 전부 운전자본 용도로 최대 7,000억원 규모의 CP, 전단채 및 ABSTB 등 단기 대출자금을 활용해 왔다”며 “이는 수년간 매월 주기적으로 이뤄졌던 것으로, 필요에 따라 갑자기 기획하고 발행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신영증권은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ABSTB 시장은 신용보강 가능성, 유동성, 금리 등을 고려해 평가되는 시장인 탓에 신용등급 변동 한 가지 요소만으로 수요 변동을 예측하기는 어렵다는 주장이다. 다만 그러면서도 홈플러스에 대한 법적 고발을 준비 중이라는 항간의 소문에 대해서는 “고발보다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최우선 고려 중”이라고 밝혔다.

고금리 상품에 저위험 강요?
이 같은 적극 해명에도 불구하고 ABSTB 투자자들은 불안감을 호소하며 자신들의 채권을 상거래채권으로 분류해 줄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홈플러스 ABSTB 피해자 비상대책위원회’는 12일 금융감독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플러스와 주주사 MBK파트너스, 카드사들이 짜고 친 판에 속아 넘어갔다”며 “홈플러스 ABSTB는 물품 구입을 위해 판매하는 채권인 만큼 상거래채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홈플러스는 국내 2위 대형할인매장인데, 이렇게 큰 대기업이 하루아침에 회생신청을 한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주주사 MBK의 고의성 부도행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유통 업체의 ABSTB는 특정 업체가 구매전용카드로 물품을 구입함으로써 카드사가 갖게 된 카드대금채권을 기초자산으로 한 유동화증권이다. 발행 주관사가 카드대금채권으로부터 발생하는 현금흐름을 수령할 권리를 기초로 유동화 전단채를 발행하고, 이를 통해 카드사는 유통업체가 내야 할 카드대금을 일찍 수령하는 구조다. 홈플러스 ABSTB는 낮은 신용등급만큼 연 6∼7% 고금리를 제공하는 만기 3개월 상품으로, 현재 미상환 잔액은 4,019억원이다. 홈플러스는 이번 회생절차 개시로 금융채권 상환이 유예되면서 변제 의무는 사라졌지만, 상거래 채권은 정상적으로 상환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ABSTB 투자자들이 상거래 채권 분류에 열을 올리는 배경이다.
증권업계도 이번 사태를 엄중히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채권 판매 과정에서 개인 투자자에게 위험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는 불완전 판매 논란으로 이어질 공산이 큰 탓이다. 지난 10일에는 신영증권 주도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이 모여 홈플러스 사태에 대한 논의가 이뤄졌다. 이후 신영증권 관계자는 “홈플러스 ABSTB 발행에 대해 많은 시장 참여자가 의구심을 가진 상황”이라면서도 “형사고소 등 강경한 대응을 진행해달라고 요청하는 투자자도 있지만, 원만한 해결이 우선이라는 기조는 변함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상거래 채권도 상환 일정 차질 불가피
홈플러스는 유동화 상품 분류와 관련해 내부 논의가 한창이다. 이를 두고 법무법인·회계법인과 소통 중이라는 전언이다. 아직 회생계획안에 대한 인가 결정이 나오기 전인 만큼 실제 향방은 인가 결정 이후 정해질 전망이다. 만약 ABSTB가 금융부채로 분류되면, 자금은 기약 없이 묶여 있게 된다. 다만 채권 자체가 사라지는 게 아닌 만큼 홈플러스 회생에 총력을 기울이는 편이 가장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게 업계 중론이다.
나아가 상거래 채무로 분류되더라도 자금 회수 일정엔 일부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란 예측 또한 제기된다. 지금과 같이 유동화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홈플러스가 유형자산을 활용해 담보대출을 받거나 혹은 자체로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홈플러스는 지난해 11월 기준 매입채무만 4,680억원을 들고 있는 반면 현금성 자산은 1,500억원가량에 불과하다.
IB업계 관계자는 “초유의 상황이라 시장 참여자 사이에서도 여러 의견이 오가고 있다”면서 “ABSTB 상품 성격으로 보면 상거래성이 짙긴 한데, 카드사는 이를 금융상품으로 분류하고 있을 것이므로 아무래도 회생채권에 포함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쪽이든 결국 홈플러스가 카드사에 카드값을 내야 자금이 순환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