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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중은행 외국인 전용점포 확대 추세
높은 니즈에도 신용대출 불가능 가까워
대안 신용평가 모델 구축 움직임도

성장 둔화 국면에 진입한 금융사들이 앞다퉈 외국인 고객 모시기에 뛰어드는 모습이다. 국내 체류 외국인이 260만 명에 육박하는 만큼 적극적인 공략으로 주요 고객층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입출금 계좌 개설이나 해외 송금 등 기초적인 서비스에만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인 탓에 외국인 금융 소비자들의 불만은 끊이지 않고 있다.
해외 송금 및 계좌 개설 등 기초 서비스가 대부분
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신규 외국인 소비자 수는 23만9,822명으로 집계됐다. 2023년(37만7,882명)에 이은 가파른 증가 폭이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최근 3년간 신규 외국인 소비자는 100만 명에 달할 것이란 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이 같은 증가세는 국내 체류 외국인이 늘면서 이들을 겨냥한 금융 서비스가 연이어 출시된 데 따른 결과다. 일례로 신한은행은 지난해 10월부터 ‘외국인 전용영상통화 실명확인 서비스’를 시작했다. 전담 상담사가 영상통화를 통해 실명확인을 하는 방식으로 외국인 고객이 편하게 입출금 계좌·체크카드 등을 발급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신한카드와 손잡고 외국인 전용 신용카드인 ‘E9페이 신용카드(가칭)’를 내달 선보일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외국인 근로자가 많은 경기 평택 등에 ‘외국인 전용 점포’를 열었고, 외국인 근로자 밀집 지역에 위치한 16개 영업점을 일요일에도 연다. 우리은행 또한 외국인 전용 창구 3곳을 일요일에 열어 소비자 편의를 증대했고, 국민은행은 외국인 소비자가 많이 찾는 8개 지역에 외환송금센터를 운영하며 주말에도 환전과 송금 등을 서비스 중이다.
다만 이 같은 외국인 대상 금융 서비스는 대부분 해외 송금 및 계좌개설 등 기초 서비스에 그친다는 평이 주를 이룬다. 은행 상품의 핵심인 대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 소위 억대 연봉을 받는 대기업 임원마저 신용대출을 이용할 방도가 전무하다는 지적이다. 과거 유일하게 ‘외국인주거래우대론’이라는 전용 대출을 판매하던 하나은행도 2022년 해당 상품 취급을 중단하면서 시중 은행에서 외국인 소비자가 대출을 받을 길은 모두 막혔다.
은행권은 회수 가능성이 낮은 데 따른 불가피한 조치라고 입을 모은다. 대출 소비자가 갑자기 본국으로 돌아가 버리면, 은행으로서는 자금 회수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을 기점으로 외국인 소비자에 대한 대출 태도가 굉장히 보수적으로 변했다”며 “외국인들이 대거 귀국하면서 부실이 속출했고, 수익성 악화로 외국인 고객 담당 부서의 추진력이 많이 상실됐다”고 전했다.
불법 사금융 내몰리는 외국인들
업계에서는 외국인 금융 소비자를 위한 유연한 신용평가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갈수록 증가하는 대출 니즈에도 은행의 문턱은 막혀 있어 많은 외국인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현재 외국인들이 국내 시중은행에서 이용할 수 있는 대출은 ‘SOL 글로벌 전세대출’(신한은행), ‘아파트론’(우리은행), ‘웰컴 플러스 전세자금대출’(국민은행) 등 담보대출뿐이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외국인이 불법 사금융으로 내몰리는 실정이다. 네이버를 비롯한 포털사이트에서 ‘외국인 대출’을 검색하면 ‘비대면 대출 가능’, ‘국적 무관 최대 3,000만원 대출’ 등 문구를 내건 대부업체 광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은행권 이용이 어려운 외국인들로선 급전이 필요할 때 불법 대출 시장에 유입될 가능성이 높다는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은행들이 외국인 소비자를 확보해 성장 둔화에 대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금융 접근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외국인 신용 대출 수요가 꾸준히 있는 만큼 신용도를 판단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면서 “소액으로 카드를 만들어주고 이를 금융 거래 이력으로 반영해 주거나 연체율 등을 책정해 신용평가 모델에 반영하는 등 구체적인 노력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씬파일러’에도 기회는 필요
이 같은 시도는 미국에서 그 전례를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신용 이력이 없고, 소득 증빙이 어렵더라도 사용자가 담보금을 제공하고 해당 금액만큼의 한도를 가진 ‘담보신용카드(SCC)’를 발급받을 수 있다. 소액 한도로 SCC를 사용한 후 일정 기간 신용 점수를 적립하면 미국 신용평가 점수인 페어아이작(FICO) 점수 등이 부여되고, 이후 정식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식이다.
일부 금융사는 미국의 사례를 참고해 외국인 대상 신용평가점수 모형 개발에 나서기도 했다. 신한카드 사내 벤처 ‘하이크레딧’은 2019년 국내 금융사 최초로 외국인 전용 신용평가 모형을 개발했다. 해당 모형은 소득 추정 규모, 연체 일수 등 기존 신용도 측정 요소에 고객 생활 정보를 활용한 비금융 정보를 추가해 신용도를 측정하는 게 특징이다. 다만 해당 모형은 보조적 지표로만 활용된다는 한계점을 가지고 있다. 신한카드 관계자는 “외국인 신용평가 모형은 대안으로 봐야 한다”며 “본 지표라기보다는 기존 신용평가에 더해 보조지표로 활용하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통신 3사(SK텔레콤·KT·LG유플러스)도 대안평가에 돌입했다. 외국인을 포함한 ‘씬파일러(Thin Filer)’에 대안적인 신용평가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씬파일러는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해 기존 신용평가 모델로는 신용도를 정확하게 평가하기 어려운 금융 소비자를 의미한다. 통신 3사 합작법인 통신대안평가는 연내 대안신용평가 서비스 ‘이퀄(EQUAL)’을 시중은행과 신용카드사·저축은행 등 금융사에 공급한다는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