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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사 미수금 1년 새 4조 증가 매출 채권 73% 지방에 집중 자금줄 끊겨 줄도산 위기

건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는 가운데 지난해 국내 상위 20개 건설사의 공사 미수금이 15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불과 2년 새 4조원이나 늘어난 규모다. 지방 아파트와 지식산업센터 등 상업용 부동산을 중심으로 미분양이 늘어나면서 자금을 회수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건설업계 덮친 ‘미수금 공포’
2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 20곳의 공사 미수금은 총 15조1,700억원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년(12조9,000억원)보다 약 18% 증가한 수치다. 같은 기간 매출에서 미수금이 차지하는 비율도 10.8%에서 11.4%로 확대됐다. 미수금은 건설사가 공사를 완료하고도 조합이나 시행사로부터 받지 못한 돈이다. 이들은 보통 분양 수익으로 공사비를 마련하는데, 미분양이 발생하거나 대출금을 갚지 못해 사업이 중단되면 건설사는 소송을 통해 대금을 받을 수밖에 없다.
중견·중소 건설사 상황은 더 심각하다. 중견·중소 건설사들의 미수금은 4배 이상 증가했고, 영업이익률 역시 지난 2022년부터 적자 행보를 지속하고 있어 정상적인 영업활동만으로 이자 비용과 미수금에 대한 부담을 벗어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시공 능력 평가 50∼70위권의 중견 건설사들이 잇따라 회생절차를 신청하면서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건설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시공능력평가순위 58위의 신동아건설과 경남지역 2위 건설사인 대저건설(103위), 삼부토건(71위), 안강건설(138위), 대우조선해양건설(83위) 등 중소·중견 건설사 7곳이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올해 들어 지난 2월 말까지 폐업을 신고한 종합건설업체도 109곳이나 된다. 하루에 종합건설사 1.8곳이 문을 닫은 셈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79곳)과 비교하면 30곳이 늘어난 것이자, 2011년(112곳) 이후 최고치다. 또 지난해 종합건설업체의 폐업 신고는 총 641건으로, 조사가 시작된 2005년(629건) 이후 최대다.
미청구 공사비도 17조 쌓여
건설사들의 공사 미수금이 쌓이는 가장 큰 요인은 지방 주택과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장기 침체다. 분양 실적이 저조하자 대출금조차 갚지 못하는 개발업체가 늘었고, 공사 맡은 시공사에도 제때 돈 지급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올해 3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 총 6만8,920가구 중 악성 미분양으로 불리는 준공 후 미분양은 2만5,117가구로 전월 대비 5.9% 늘어났다. 지난해 주요 건설사의 분양률 70% 미만 사업장 관련 매출 채권 규모는 총 2조7,000억원(나이스신용평가 자료)으로, 이 가운데 수도권 외 지역 비율은 73.6%에 달했다.
생활숙박시설도 건설사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정부의 규제로 실거주가 어려워진 이후 수분양자들이 사기분양과 부실공사를 주장하며 잔금을 치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서울 강서구 ‘롯데캐슬 르웨스트’ 시행사는 결국 올해 초 수분양자의 약 80%에게 계약 해제를 통보했고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상업용 시설도 골칫거리다. 태영건설은 지난해 6월 고양시 향동지구에 지식산업센터를 준공하고도 250억원의 공사비를 수금하지 못했다. 올해 2월 기업회생을 신청한 시공능력평가 71위의 삼부토건도 지난해 8월 공사를 마친 경산 물류창고 신축공사 사업장에서 120억원의 미수금이 발생했다.
건설사가 발주처에 아직 청구하지 못한 미청구 공사비도 증가세다. 지난해 건설사 20곳의 미청구 공사비는 17조원을 기록했다. 1년 전보다는 소폭 감소했지만, 2023년(14조6,000억원)보다는 16% 증가하는 등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다. 건설사는 공사 기간을 맞추기 위해 예상외에 발생한 자잿값이나 인건비를 선(先) 투입하는데, 이를 미청구 공사비로 부른다. 건설 경기가 좋을 때는 자산으로 평가받지만, 침체기에는 ‘받지 못할 가능성이 있는’ 우발부채 성격을 띤다.

‘도미노 부실’ 우려 확산
현재 건설사들은 올해 입주율 및 분양률을 제고해 못 받은 공사비를 원활하게 수금하겠다는 자신감을 보이고 있지만, 전문가 사이에선 비관론이 우세한 분위기다. 오는 7월부터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도입되는 등 대출 규제가 강해지면서 주택 시장 역시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신용평가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지방을 중심으로 분양성과가 현저히 떨어짐에 따라 건설사 운전자본부담이 확대되고 있다”며 “주요 16개 건설사의 지난해 말 공사 미수금 잔액은 약 29조원으로 2023년 말 대비 3조원가량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아울러 “2022년 하반기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신규물량이 공급된 만큼 공급된 프로젝트들의 분양성과 대금 회수가 신용도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고 덧붙였다.
기업 투자와 창업 인원이 감소하면서 상업용 시설도 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부동산플래닛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전국 지식산업센터 거래량은 672건, 거래금액은 2,569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5년 내 가장 저조한 성적이다. 반면 공급은 앞으로 더 늘어날 전망이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지난달 말 전국에서 건축 중인 지식산업센터는 총 84건, 미착공 물량은 223건으로 집계됐다. 한 중견 건설사 관계자는 "아파트와 상업용 부동산 수주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전면 중단한 상태"라며 "매출이 줄어들면 부채 비율이 커질 수밖에 없어 재무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