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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매출·반값 상장 이슈 부각 FI LLH와 풋옵션 계약 등 셈법 복잡 공모가 하단 미만 강행 시 보전금만 3,000억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오는 5월 유가증권시장(코스피) 상장을 앞둔 가운데, 시장에선 회사 측이 자진해서 낮춘 몸값을 시장 참여자들이 받아들일지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현재 롯데글로벌로지스 공모는 흥행에 불리한 요소를 다수 갖추고 있다. 재무적투자자(FI)의 엑시트(투자금 회수) 목적이 강한 데다, 이미 모회사가 상장사라는 점에서 중복 상장 논란도 불가피하다. 더군다나 롯데쇼핑, 롯데렌탈(현재는 매각), 롯데이노베이션 등 상장 계열사도 공모 당시 주가가 부진했던 전례가 있어 투심을 약화시키고 있다.
IPO 공모자금 ‘사업 고도화’ 투자
2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지난달 24일부터 오는 30일까지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 중이다. 내달 12~13일엔 일반 청약을 진행한다. 삼성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이 대표 주관사며, 공동 주관사는 KB증권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희망 공모가 밴드를 1만1,500~1만3,500원으로 제시했으며,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은 약 4,789억~5,622억원이다. 공모 예정 금액은 밴드 상단 기준 2,017억원으로, 신주 모집과 구주 매출이 각 50%씩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이번 공모로 모은 자금을 △택배 인프라 구축 △스마트 물류 구축 △DT(디지털전환)·IT(정보기술) 고도화에 쓴다는 계획이다. 물류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고, 데이터 기반의 정확한 의사결정과 빠른 대응을 하는데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먼저 택배의 경우 신규 집배센터(택배를 모으는 중간거점지) 구축과 수원, 용산 등 기존 집배센터의 기계장치 구입 등에 70억원을 사용한다는 목표다. 또한 택배 사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동분류기, 상차대스캐너 등의 설비 구입에도 60억원을 지출한다.
스마트 물류는 물류센터의 자동화 설비 구축에 전액 사용한다. 피킹(화물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작업), 패킹(화물을 묶어 주거나 재포장하는 작업)을 보조하는 디지털 분류시스템(DAS, DPS)과 보관의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자동화보관설비(Auto Store) 등을 구입(90억원)해 생산성 향상을 도모한다. 이를 진천 풀필먼트센터와 그룹사 물류센터 등에도 도입한다는 방침이다.
차세대 전사운영시스템(ERP)과 통합물류시스템(L-lis) 고도화에는 128억원을 투입한다. 통합물류시스템은 △창고 관리 △차량관리 △재고관리 등을 통합적으로 할 수 있는 종합 물류 시스템으로, 이를 확대·구축해 물류 효율성을 끌어 올리겠다는 것이다. 택배뿐 아니라 국내물류, 국제물류·포워딩(FIS) 등 전체 물류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극대화하기 위함이다. 앞서 강병구 롯데글로벌로지스 대표는 IPO 기자간담회에서 “상장 이후에도 자본시장에서 최고의 성장주로 자리매김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매번 실망 안겼던 롯데 공모주
하지만 시장에선 상장 이후를 걱정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롯데글로벌로지스에 앞서 상장한 같은 롯데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모두 부진했기 때문이다. 롯데렌탈의 경우 2021년 8월 상장 당시 시가총액(공모가 5만9,000원)을 높게 잡았으나 공모 흥행에 실패하며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롯데쇼핑(40만원), 롯데이노베이트(옛 롯데정보통신·2만9,800원) 등도 상장 이후 공모가를 크게 밑돌고 있다.
LG CNS 등 상장 이후 부진한 주가를 이어가는 새내기주(株)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것도 우려 사항이다. 우선 롯데글로벌로지스는 총 공모주식 가운데 절반이 구주매출이다. FI인 사모펀드 에이치프라이빗에쿼티(PE)가 설립한 유한회사 엘엘에이치(LLH)가 보유주식 전량인 747만2,161주(21.9%)를 구주매출한다. 구주매출은 회사로 자금이 유입되지 않아 IPO 흥행의 걸림돌로 지적된다. 주요 주주가 상장 전에 주식을 팔아버린다는 점도 투자 심리에 부정적이다. LG CNS 역시 공모 구조가 신주, 구주 각 50%로 이뤄졌고, 구주매출엔 지분 35%를 보유한 맥쿼리PE가 참여했다.
사모펀드 엑시트 위한 IPO
공모 시장이나 업황이 좋지 않음에도 FI의 엑시트를 위해 상장을 추진한다는 점도 LG CNS와 닮아 있다. 당초 시장에선 롯데글로벌로지스의 기업가치가 1조원을 웃돌 것이란 예상이 나왔었다. LLH가 2017년 롯데글로벌로지스에 2,860억원을 투자했을 때 맺은 풋옵션(주식매도청구권) 계약 때문이다.
계약에 따라 롯데지주와 호텔롯데는 이번 IPO에서 LLH의 구주매출 단가가 사전에 합의된 주당 5만720원에 미치지 못하면 그 차액을 보전해줘야 한다. 현재 제시된 희망 공모가 밴드(1만1,500~1만3,500원)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보전해야 할 금액만 2,800억~3,000억원에 달한다. 이는 롯데글로벌로지스가 이번 신주 모집으로 조달하는 금액 약 848억원의 3배가 넘는 수준이다. 물론 이는 예정대로 5월 상장에 성공했을 때를 가정해 산정된 금액이다. 일정이 밀릴 경우 추가 금액이 붙게 된다.
이에 롯데글로벌로지스는 몸값을 낮춰 FI에 3,000억원가량을 물어주는 대신, 상장 완주에 초점을 맞췄다. 회사 측은 비현금성 비용인 감가상각 비중이 높은 물류업 특성상 EV/EBITDA(시장가치에서 삼가상각전영업이익을 나눈 값) 평가법을 활용했다. CJ대한통운과 한진을 비교그룹으로 선정했고, 12~25%의 할인율을 적용했다. 이에 따라 EV/EBITDA로 산정한 주당 평가액 1만5,263원에서 공모가액은 1,763~3,763원 낮아졌다.
그러나 일각에선 여전히 몸값이 고평가됐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택배업계는 독보적인 1위 CJ대한통운을 빼고, 롯데글로벌로지스와 한진이 2·3위를 놓고 경쟁하고 있다. 지난해 롯데글로벌로지스의 매출은 3조5,733억원으로 한진(3조155억원)보다 5,000억원가량 많지만, 영업이익은 902억원으로 한진(1,001억원)보다 100억원가량 적다. 이런 한진의 시가총액이 2,800억원 수준이다. 공모가 하단으로 가격이 정해져도 한진 시총을 2배 가까이 웃도는 것이다. 또 비상장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한국장외주식시장(K-OTC)에서 롯데글로벌로지스는 희망 공모가와 큰 차이가 없는 1만5,000원대에 거래 중이다. 기존 주주들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단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