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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정책 효과, ‘대기업 거쳐’ 경제에 영향 경제 위기 양상도 ‘대기업에 달려’ 정책 효과성, ‘대기업 행동 유도’가 핵심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대부분의 중앙은행들은 지금까지 매우 편리한 가정에 의거해 통화정책을 실행해 왔다. 모든 기업들이 금리 변동에 평균적으로 반응한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정책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과정에서 경제 주체들의 역할은 전혀 동일하거나 평균적이지 않다. 규모가 대부분을 결정한다.

통화정책 효과, 대기업 역할 ‘압도적’
그러니까 산업도 아니고 지역도 아닌 기업 규모가 통화정책 효과에 가장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소수의 대기업이 임금, 수출, 투자 등 가시적인 변화를 모두 주도하기 때문이다.
독일의 경우를 예로 들면 0.25%의 금리 인상에 5,000명 이상의 직원을 거느린 대기업은 1년 6개월 내에 1.7%의 임금 인하로 대응한 반면 중소기업은 1% 감소에 그쳤다. 작은 차이가 아닌 것이 대기업 근로자들의 임금이 유로존 가구 소득의 40%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이 인플레이션에만 국한되지 않고 국내총생산(GDP), 세수, 금융 안정성에까지 모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경제 위기도 대기업 반응이 ‘양상 바꿔’
다른 경제 쇼크 상황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가격 폭등이나 글로벌 수요 감소가 일어나면 대기업이 훨씬 빠르고 급격하고 복잡하게 반응하는데 이는 대기업의 대응 수단이 다양하고 규모가 크기 때문이다. 바로 임금을 깎기 어렵다면 보너스를 내릴 수도 있고, 수출 물량을 다른 지역으로 돌릴 수도 있으며, 주요 투자 계획을 연기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이 충격에 그저 반응한다면 대기업은 적극적으로 규모와 방향에 영향을 미친다.

주: 긴축 정책에 따른 임금 축소, 에너지 위기에 따른 비용 흡수, 글로벌 수요 감소에 따른 수출 축소(좌측부터), 대기업(짙은 청색), 중소기업(청색)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도 증명됐다. 프랑스에서는 전체 수출업체의 0.1%에 해당하는 100대 기업이 2020년 2분기에 일어난 25% 수출 감소의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2008년 금융 위기에서도 양상은 비슷했다. 이들 대기업이 특별히 취약한 산업에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영향력이 국가 경제 전체를 위축시킬 만큼 크다는 얘기다.

주: 상위 0.1% 대기업(100대 수출 기업)(짙은 청색), 나머지(청색)
대규모 수출업체는 글로벌 수요 변화에 대응해 주문을 취소하거나 수출 경로를 우회하거나 투자를 연기할 수 있다. 모든 조치가 한 분기 내에 이뤄지기도 하며 영향은 소속 직원들만이 아니라 공급업체, 선적 회사, 지역 서비스 산업에까지 미친다. 소수의 대기업이 내리는 의사결정의 파급력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2021~2022년 유럽 에너지 위기도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전기 요금이 급등하자 음식·숙박 및 소매업을 포함한 중소기업은 가격을 인상하거나 영업을 중단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반면 대기업은 잔여 현금과 파생상품, 투자 종목 조정 등을 통해 비용의 절반을 흡수했다. 물론 이것이 소비자 물가 안정에 도움을 주기는 했지만 내부 직원들은 임금 동결 및 보너스 삭감을 피할 수 없었다. 그 결과 인플레이션은 주춤하는 듯 보였지만 전체적인 구매력은 줄어들었다.
대기업 위기 대응 수단 ‘크고 다양’
대기업들의 경제적 영향력이 커지는 이유는 다음과 같이 설명할 수 있다. 먼저 대기업은 현금, 채권, 대출 등 다양한 금융 수단을 통해 긴축 상황에 대응할 수 있다. 보너스와 스톡옵션 등 다른 방식을 동원해 정리 해고를 피하면서 인건비도 조정할 수 있다. 또 수요 변화에 대응해 생산 및 판매 지역을 변경하는 것도 용이하다. 규제 당국과 애널리스트들의 주목을 받기 때문에 정책 신호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속도가 빠른 영향도 있다.
하지만 중앙은행들의 의사 결정은 이러한 불균형을 잡아내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적 영향력이 큰 대기업 근로자들의 소득이 줄고 있는데 평균 임금 데이터를 보고 노동시장이 안정됐다고 생각하면 오판으로 이어지기 쉽다. 그 사이 중소기업들의 근무 시간 단축 및 감원은 지속된다. 대기업의 성과급 축소나 중소기업의 해고는 공식 통계에 선명하게 드러나지도 않는다.
평균이 아닌 ‘대기업 반응’ 고려한 정책 필요
이렇게 경제 충격이 소수의 대기업에 의해 불균형적으로 전파된다면 정책 수단도 현실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먼저 통화정책은 임금 압박과 실업의 근원지를 정확히 판단하기 위해 기업 규모를 고려한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 고용률과 인플레이션의 반비례 관계를 나타냄)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재정 정책도 일률적인 임금 보조보다는 기업 규모와 매출 변동에 맞춰 시행돼야 한다.
기후 및 에너지 정책도 기존의 에너지 소비량에 비례한 보조금이 대기업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배출량 축소를 기준으로 조정돼야 한다. 중소기업 중심으로 수출 물량을 다변화하는 것도 글로벌 요인으로 인한 국내 경제 충격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준다.
전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과 원자재 가격 급등, 금리 인상 시기를 지나며 ‘평균적 기업’을 상정한 경제 모델은 효용성을 잃었다. 다음 경제 위기가 지정학적 요인일지, 아니면 환경이나 금융 분야에서 촉발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가장 큰 충격파는 대기업들의 의사결정으로 전달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정책 당국이 대기업들을 덩치 큰 중소기업으로만 취급하면 위기 진단 및 대응에서 우를 범할 가능성도 커진다. 이제 거시경제정책은 추세 자체를 바꾸는 규모가 아니라 영향력을 가진 대기업들의 행동을 유도할 수 있는 ‘정확성’에 있다.
원문의 저자는 알리나 보바스(Alina Bobasu)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선임 이코노미스트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Effects of monetary policy on labour income: The role of the employer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