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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의경매 개시 결정 등기 신청, 전년 대비 27.5% 증가 혼합형 주담대 변동금리 전환으로 영끌족 '치명타' 노·도·강부터 강남까지 각지에서 경매 매물 급증

부동산 임의경매 건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5년 전 집값 상승기에 서둘러 내 집 마련에 나섰던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들이 이자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영끌족, 변동금리 전환에 '휘청'
9일 법원 등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4월 기준 전국 부동산(집합건물·토지·건물) 임의경매 개시 결정 등기 신청은 총 1만8,563건으로 집계됐다. 전년 같은 기간(1만4,564건)과 비교하면 27.5%, 2023년 같은 기간(1만104건)과 비교하면 83.7% 급증한 수치다. 임의경매는 은행 등 금융기관에서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이나 이자를 석 달 이상 갚지 못했을 때 대출금 회수를 위해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다.
특히 해당 기간 접수된 아파트·오피스텔 등 집합건물 임의경매 신청은 7,726건으로 전체의 41.6%를 차지했다. 전년 같은 기간 5,947건에 비해 29.9% 늘었다. 지역별로는 경기도에서 가장 많은 매물(2,102건, 27.2%)이 발생했다. 이어 서울 788건(10.2%), 부산 778건(10.1%), 인천 662건(8.6%) 순이었다.
이처럼 부동산 임의경매가 급증한 것은 2020년 연 2%대 고정금리로 이뤄진 혼합형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올해 5년 고정금리 기간을 마치고 변동금리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국내 4대 시중은행의 주담대 변동금리(6개월)는 연 4.07~5.59% 선에서 형성돼 있다. 고정금리에서 변동금리로 전환되며 이자 부담이 두 배 이상 확대된 셈이다.
영끌족 몰린 노·도·강 '직격탄'
경매 건수 증가세는 '영끌족의 성지'로 불리는 노원·도봉·강북구(노·도·강)에서 한층 두드러진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노·도·강 지역에서는 총 657건의 아파트 경매가 진행됐다. 이는 5년 전인 지난 2019년 170건 대비 4배 가까이 폭증한 수준이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 경매 건수는 3.18배(1,064건→3,386건) 늘어났다.
지난 201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부동산 폭등기' 시절, 상대적으로 중저가 아파트가 많은 노·도·강 지역에는 1인 가구, 신혼부부의 영끌 수요가 대거 몰렸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저금리 여파로 시장에 대거 풀린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으로 흘러 들어간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지난 2019년 노·도·강 내 아파트 거래 건수는 1만3,398건이었으며, 2020년엔 무려 2만1,513건에 달했다.
문제는 당시 아파트 가격이 '고점'이었다는 점이다. 5년 혼합형 주담대를 받아 노·도·강 지역 아파트를 매입한 영끌족들이 5년 만에 엄청난 이자 부담에 시달리게 됐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노·도·강은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만큼, 주택을 매입할 때 대출에 의존하는 집주인들이 많다"며 "대출을 끼고 중저가 아파트를 찾아야 할 만큼 여유 자금이 부족한 가구가 변동금리 전환 이후 고점에 매입한 주택을 감당하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고 짚었다.

강남권도 예외 없다
노·도·강 등 서울 외곽지를 넘어 강남권을 중심으로 밀집해 있는 '고급' 아파트 단지들도 속속 경매에 넘겨지고 있다. 지난해 4분기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총 150건으로, 2015년 2분기(184건) 이후 9년 6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치동의 ‘래미안대치팰리스’ 전용 38평형은 지난 3월 16일 감정가 40억2,000만원보다 약 1억 원 비싼 41억1,900만원에 단독 응찰로 낙찰됐다. 해당 아파트는 2016년 집주인이 13억원대의 대출을 받은 뒤 만기 상환에 실패하며 법원 경매에 넘어간 사례다.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35평형도 채권액이 35억원을 넘긴 상태에서 감정가보다 높은 36억5,100만원에 팔렸다.
전문가들은 고가 자산 경매가 빈번해진 배경으로 경기 침체 장기화, 고금리 부담, 수익률 하락 등을 지목한다. 한 시장 전문가는 "임대료는 오르는데 공실이 늘고, 수익률은 줄면서 유지비를 감당하지 못하는 자산가들이 늘어난 것"이라며 "중저가 아파트를 넘어 자본가들이 보유하는 초고가 자산까지 경매 시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는 것은 결국 경기 하강 속도가 한층 빨라졌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