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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파이낸셜] ‘귀향민 수용’, 그리스의 성공과 일본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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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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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학 전공에 관리자로 일했고 재무, 투자, 전략, 경제 등이 관심 분야입니다. 글로벌 전문가들의 시선을 충분히 이해하고 되새김질해 그들의 글 너머에 있는 깊은 의도까지 전달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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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귀향민 수용한 두 나라의 차이
그리스는 ‘기회로’, 일본은 ‘부담으로’
‘신속한 정착 지원’이 성패 갈라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그리스와 일본은 20세기 초반 비슷한 인도주의적 격변을 체험했다. 어려움에 처한 재외 교포들의 대규모 귀환이었다. 하지만 동일한 상황을 겪은 두 나라가 마주한 결과는 사뭇 달랐는데, 그리스에 기회가 됐다면 일본에는 크나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사진=ChatGPT

그리스와 일본, 대규모 귀향민 수용 경험

그리스는 1920년대 초 소아시아(Asia Minor) 및 흑해(Black Sea)에 거주하던 120만여 명의 그리스 정교회(Greek Orthodox) 동포들을 받아들여야 했다. 튀르키예와 국경 조정 및 인구 교환을 정한 로잔 협약(Lausanne Convention)의 결과였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일본도 비슷한 상황을 맞이한다. 제2차세계대전 이후 한국, 만주, 대만 등지에 살던 일본인 660만여 명이 돌아온 것이다. 그들이 마주한 고국은 폭격에 무너지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으로 살 곳도 음식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리스는 이 상황을 장기 경제 성장에 활용한 반면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 히키아게샤(引揚げ者, Hikiagesha)라고 불린 일본 귀향민들은 주변부에서 신음하는 삶을 살았는데 원인은 문화나 교육 수준이 아니었다. 양국의 차이는 이주민들의 복귀 후 국가가 얼마나 신속히 자금과 토지, 법적 지위를 부여했느냐에 따라 갈렸다.

그리스, 신속한 이주민 지원 ‘성공 사례’

그리스 정부는 사태의 규모와 심각성을 깨닫고 바로 움직였다. 국제 연맹(League of Nations, 유엔의 전신)의 도움을 받아 난민 정착 위원회(Refugee Settlement Commission)를 설치한 후 해외 채권을 발행하고 국내총생산(GDP)의 9%를 토지 매립과 주택 공급, 저금리 대출 등에 쏟아부었다. 귀향민들에게는 임시 대여가 아닌 토지 소유권이 제공됐고 이를 담보로 활용해 신용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결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십 년이 지나지 않아 귀향민 농장들이 그리스 전체 담배 생산량의 1/4 이상을 담당했다. 1938년이 되자 귀향민 거주지의 농업 생산성이 현지인을 17% 앞질렀다. 협동조합 대출은 이주민 가구들이 위험을 분산하며 생산 활동과 교육에 투자할 수 있도록 도왔다.

일본 귀향민, 부족한 보상으로 ‘주변인 전락’

하지만 일본은 기회를 잡는 데 실패했다. 전쟁 부채와 식료품 물가 상승에 억눌린 정부가 이주민들에게 해준 것은 해외에 남기고 온 자산의 10%에도 못 미치는 보상금을 지급한 것이 전부였다. 토지 제공은 거의 없었고 부실 채권에 시달리던 은행들로부터는 살인적인 금리로만 대출이 가능했다. 일부 가구는 50%를 넘는 이자율에도 불법 사채업자에게 손을 벌릴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10년이 지나자 이주민들의 40% 가까이가 실업 내지 불완전고용(underemployed)에 빠졌고 이런 그들에게 대학 교육은 소수만 누리는 사치였다. 1965년에 이주민 중 대학을 졸업한 이는 4.2%로 평균의 절반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스 귀향민, 교육 성과도 탁월

교육 측면에서도 그리스는 달랐다. 이주민 자녀들이 문해율에서 현지인 자녀들을 앞질렀고 평균 교육 기간도 더 길었다. 안정적인 기반과 신용이 미래를 위한 투자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반면 일본인 이주민들은 공직 등 안정적인 분야에 많이 진출했으나 임금 인상이나 사회적 이동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전후 산업 호황을 맞이하게 된다.

북부 그리스 문해율(1928년) 및 중학교 졸업률(2011년)
주: 문해율(좌측), 중학교 졸업률(우측), 평균(Average), 현지인(Natives), 이주민(Refugees), 현지인 주거지(Native villages), 이주민 주거지(Refugee villages)
북부 그리스 농촌 지역 연령별 인구 집단에 따른 문해율(1928년)
주: 현지인(Natives), 이주민(Refugees), 현지인 거주지(Native settlements), 이주민 주거지(Refugee settlements), 이주민 이동 전(Pre Populations Exchange), 그리스-튀르키예 전쟁(Wars), 이주민 이동 후(Post Populations Exchange)
이주민 자녀와 현지인 자녀 간 정규 교육 기간 차이
주: 이주 전후 차이(difference-in-difference), 거주지 요소 고려(Conditional on residence), 거주지 및 산업 요소 고려(Conditional on residence and Industry FE), 농촌 지역 전체(All Rural Sample), 동일 지역 비교(Local Sample), 90% 신뢰구간(90% CI)

한편 그리스 귀향민들은 농업에서 그치지 않고 도시로 진출해 산업 부흥과 신기술 소개에도 이바지한다. 새로운 제빵 도구를 도입하는가 하면 쇠락한 섬유 산업 조합을 되살려 내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다양한 직종에 진출해 경제적 자생력을 확보했다. 일본은 이 경우에도 달랐다. 이미 많은 인구에 전쟁으로 황폐해진 도시들은 이주민들을 포용하지 못했고 불평등은 심화했으며 귀향민들은 자영업 분야에서도 뒤처졌다.

이주민을 보는 관점의 차이

귀향민들을 대하는 현지인들의 태도에도 현격한 차이가 존재했다. 그리스 이주민들은 비잔틴의 후예들로 존중받았고 1935년이면 그리스 의회 의석수의 15%를 차지하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반면 일본 매체는 귀향민을 ‘부담’으로 여겨 하층민(下層民)이라는 표현을 서슴없이 사용했다. 교육이나 지역 등의 변수를 빼도 최대 12%의 임금 차별이 존재했고 사회적 낙인은 1970년대까지 지속된다.

두 나라의 사례는 정부가 이주민들을 기회와 부담 중 어느 것으로 볼 지에 따라 경제 성장에 장기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지금도 우크라이나 전쟁과 기후 변화 등으로 대규모 이주가 발행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각국 정부는 이주민들에게 토지 제공이 불가능하다면 신용과 보조금, 법적 지위 부여 등을 통해 안정과 성장의 토대를 신속히 마련해 줘야 한다.

원문의 저자는 스텔리오스 미할로풀로스(Stelios Michalopoulos)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 교수 외 3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How refugees continue to positively shape the Greek economy over a century after they arrived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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