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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통신사 최초 자체 은행 확보 시도
통신사 데이터로 대안 신용평가 가능
일본 매각-한국 전략 뚜렷한 온도차

일본 최대 통신사 NTT도코모가 인터넷 전문은행인 스미신SBI넷은행 인수에 나서며 은행업에 출사표를 던졌다. 통신사가 보유한 가입자 데이터를 바탕으로 금융 소외 계층을 공략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한편, SBI는 일본 현지 금융 구조 재편과 동시에 한국에서는 SBI저축은행의 인터넷은행 전환을 추진하며 그룹 전반의 사업 재편을 서두르는 모습이다.
NTT그룹 금융 영역 확장 신호탄
30일 니혼자이게이신문(닛케이) 등 현지 매체에 따르면 NTT도코모(도코모)는 SBI홀딩스가 운영 중인 인터넷전문은행 스미신SBI넷은행(住信SBIネット銀行) 인수를 추진 중이다. 닛케이는 이를 위해 도코모가 주식 공개 매입(TOB)과 관련한 이사회 의결을 앞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인수전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도코모는 일본 통신사 최초로 자체 은행을 보유하게 된다.
도코모는 스미신SBI넷은행의 주식 3분의 2가량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 스미신SBI넷은행의 지분 약 34%를 보유한 SBI 홀딩스가 보유 지분 전량을 도코모에 양도할 예정이다. 미쓰이스미토모 신탁은행 역시 약 34%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나, 해당 지분은 유지한 채 주주를 도코모와 미쓰이 스미토모 신탁은행 2곳으로 한정해 스미신SBI넷은행을 비공개 회사로 전환한다는 계획이다.
그간 도코모는 주력 사업인 통신 수입이 감소함에 따라 금융 서비스, 포인트 결제 등 비통신 분야 사업 확장에 주력해 왔다. 이미 마넥스증권, 오릭스 카드론 사업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으며, 은행업 진출을 꾸준히 모색해 왔다. 이를 기반으로 금융과 통신의 융합 모델을 구축하고, 디지털 금융 플랫폼으로 거듭난다는 게 도코모의 구상이다.
금융 이력 부족 소비자 정조준
일본 내에서는 이 같은 결합을 예의주시하는 모양새다. 통신사는 가입자들의 통신 패턴과 데이터 사용량, 위치 정보 등 방대한 비정형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어 기존 금융기관이 다루기 어려웠던 고객군인 ‘씬파일러(Thin Filer)’를 겨냥한 대안 신용모델 활용이 가능할 것이란 관측에서다. 금융 거래 이력이 부족한 소비자를 의미하는 씬파일러는 일반 은행에서는 리스크가 높은 집단으로 분류되지만, 통신 데이터 기반 분석으로는 보다 세분화한 신뢰도 평가가 가능하다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대안 신용평가 방식은 이미 미국 등 주요국에서 핀테크 기업들을 중심으로 실험되고 있으며, 일본의 도코모 역시 같은 방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특히 일본은 개인정보 보호가 매우 엄격한 만큼 미국처럼 외부 데이터를 매입하는 방식으로는 신용모델을 구축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매우 경쟁력 있는 대안으로 평가된다.
일본 사회의 고령화와 청년층의 비정규직 확산이라는 구조적 요인도 이 같은 전략에 힘을 싣는다. 전통적인 금융기관이 외면해 온 사회 초년생과 프리랜서, 고령층 등 다양한 비표준 고객군이 통신 데이터를 통해 새로운 잠재 고객으로 떠오른 것이다. 이는 고객 접점 확대와 동시에 금융 포용성 증대라는 사회적 가치 창출 효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국 SBI저축은행, 온라인 전환 목표 지속
SBI홀딩스는 도코모에 스미신SBI넷은행을 매각하며 일본 현지 금융 구조 재편에 나서는 반면, 한국 자회사인 SBI저축은행에서는 정반대의 전략을 펼치고 있다. SBI저축은행은 수년 전부터 인터넷 전문은행으로의 전환을 준비해 왔으며, 최근에는 모바일 기반 비대면 채널 강화와 자체 앱 개편 등 디지털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내 사업은 정리하면서도 한국에서는 ‘온라인 전환’이라는 방향성을 더 명확히 가져가는 셈이다.
SBI저축은행은 이미 모바일 대출과 간편 비대면 계좌 개설 등 일부 기능을 중심으로 온라인 금융 인프라를 확대 중이며, 장기적으로는 인터넷전문은행 인가를 획득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행법’ 및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에 맞춰 오프라인 점포 중심의 기존 구조를 축소하고 고객 접점을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작업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 자사가 보유한 IT 기술력과 일본에서의 디지털 금융 운영 경험이 뒷받침되는 구조다.
여기에 국내 저축은행 업계의 디지털화가 더디다는 점도 SBI저축은행엔 기회로 작용할 전망이다.이처럼 일본 내 금융 포지션을 축소하는 동시에 한국의 사업을 확대해 가는 이중 전략은 국가별 규제 환경과 시장 상황을 반영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일본은 인터넷은행 시장 자체가 성숙기에 접어들며 경쟁이 과열된 반면, 한국은 아직도 성장 여력이 존재하고 비대면 금융 수요도 꾸준히 늘고 있다는 게 SBI의 계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