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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거품이 끌어올린 가계부채, 소비·내수 회복 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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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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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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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메랑으로 돌아올 민간부채
절반이 부동산, 금리 인하 발목
성장 떨어뜨리고 내수 부진 가속화

우리나라 국민의 가계부채가 소득보다 약 1.7배 높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즉, 빚 갚는 데 쓰는 돈이 늘었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등을 겪고도 구조개혁을 통한 ‘부채 다이어트’ 없이 부동산으로 자금 쏠림이 지속된 탓이 크다. 이 같은 가계대출 증가는 부동산 거품만 일게 할 뿐 장기적으론 독약이나 다름없다. 가계대출 상환 부담이 커지면 소비 여력이 줄고 결국 내수 침체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韓 가계부채, 작년 말 기준 174.7%

16일 국회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이 한국은행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우리나라 가계 및 비영리단체의 처분가능소득 대비 금융부채 비율은 174.7%에 달했다. 처분가능소득은 1,356조5,000억원, 금융부채는 2,370조1,000억원으로 집계됐다. 처분가능소득은 소상공인을 포함한 가계와 민간 비영리단체의 총소득에서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 의무지출, 대출 상환 등 비소비성 지출 등을 뺀 순처분가능소득을 뜻한다. 금융부채는 한은의 자금순환 통계상 수치로, 시장 가격으로 평가된 비연결기준 가계부채 규모를 나타낸다.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21년 말 194.4%로 치솟았다가 △2022년 말 191.5% △2023년 말 180.2% △지난해 말 174.7% 등으로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가계부채 규모를 보면 2023년 말 2,316조9,000억원에서 작년 말 2,370조1,000억원으로 2.3% 증가했으나 소득이 1285조8,000억원에서 1,356조5000억원으로 5.5% 늘어 부채 비율이 낮아졌다.

하지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는 여전히 높은 수준이다. OECD 통계에서 2023년 말 한국의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86.5%(잠정치)로, 미국(103.4%), 일본(124.7%), 독일(89.0%), 영국(137.1%), 프랑스(121.4%), 이탈리아(82.0%) 등을 가뿐히 넘어섰다.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높은 나라는 32개 회원국 중 스위스(224.4%), 네덜란드(220.3%), 호주(216.7%), 덴마크(212.5%), 룩셈부르크(204.4%) 등 5개국에 불과했다.

부동산 과잉투자 관행 떨쳐내야

전문가들은 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높으면 소비·내수 회복 부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 민간 소비가 1.1% 정도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며 "가계부채 같은 구조적인 요인 때문에 회복되더라도 1.6% 정도"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 연장선으로 지난 12일 한은 창립 기념사에서 손쉽게 경기를 부양하려고 부동산 과잉투자를 용인해 온 관행을 떨쳐내야 한다고 거듭 주장하기도 했다.

실제 부동산 투자를 기반으로 한 경기 부양책은 한은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내리지 못하는 이유기도 하다. 이달 12일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가계대출 잔액은 750조791억원으로 지난달 말(748조812억원)보다 2조원 가까이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가 월말까지 유지되면 이달 가계대출 증가액은 5조원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5대 은행의 가계대출은 지난 4월(4조5,337억원)과 5월(4조9,964억원) 등 연이어 4조원 이상 불어났다.

이는 진보 정권 출범에 따른 집값 상승 기대와 오는 7월 시행하는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이 맞물린 데 따른 결과다. 규제 강화 전 막판 수요를 자극했다는 얘기다. 이에 부동산 가격 역시 꿈틀대고 있다. 최근 서울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와 마용성(마포·용산·성동) 집값 급등이 강북권과 경기 과천·분당으로 확대되면서 가계대출 증가 폭 확대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은이 기준금리를 크게 낮추면 자산가격이 더 치솟으며 거품이 낄 우려가 있다. 특히 최근처럼 전 세계적으로 구조적인 저성장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중앙은행이 경기 부양을 위해 선제적인 금리 인하 카드를 써야 하는데 부채 리스크에 발목이 잡히면 적기에 대응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최근 침체된 부동산 시장까지 다시 들썩일 수 있다는 점에서 금리 인하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 됐다.

한국 민간부채, 日 버블기 수준 “부동산 편중은 더 심각”

한은은 우리나라의 민간 부채 수준이 일본의 1990년대 버블기 붕괴 직전에 근접했다고 보고 있다. 한은이 5일 발표한 ‘일본 경제로부터 되새겨 볼 교훈’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가계와 비금융 기업이 진 빚을 국내총생산(GDP)과 비교한 값은 2023년 기준 207%를 기록했다. 일본의 거품 붕괴가 본격화한 1992년(208%)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의 GDP 대비 민간 부채 비율은 1985년까지만 해도 162%였다. 그러나 ‘부동산 불패’처럼 자산 가격이 계속 오르리라는 기대와 일본은행의 금리 인하가 겹쳐 민간 부문이 급격히 빚을 늘리기 시작했다. 결국 1989년 3월 일본은행이 연 2.5%였던 기준금리를 이듬해 8월까지 6%로 올리자, 빚으로 쌓은 부동산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고, 이후 일본 경제는 ‘잃어버린 30년’이라고 불리는 긴 침체로 빠져들었다. 2005년 도쿄의 주택 가격은 거품의 정점이었던 1990년과 비교해 40%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한국이 가계부채를 잘 관리하지 않으면 이런 일본의 길을 걸을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국의 민간 부채는 일본보다 악성으로 평가된다. 우선 민간 부채 중 가계부채 비율이 절반에 육박한다. 버블 붕괴 전 일본의 가계부채는 전체 민간 부채의 3분의 1 정도였다. 기업의 빚은 투자 자금 성격도 있지만, 가계의 빚은 소비 여력을 줄여 경기 침체를 부르기 쉽다. 성장률이 떨어지면 임금과 소득이 낮아지고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에 빠진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기준 한국의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90.7%로 조사 대상 44국 중 다섯째로 높았다. 미국(70.5%), 일본(65%) 등 G20이라는 주요 20국 평균(61.2%)을 웃돌았다.

한국 민간 부채가 일본에 비해 부동산에 너무 쏠려 있다는 점도 문제다. 부동산에 대한 대출 집중도(업종별 대출 잔액을 업종별 GDP로 나눈 값)가 2023년 기준 3.65로, 일본(1992년 1.23)을 크게 웃돈다. 작년 말 기준 부동산 부문에 투입된 빚은 1,932조원으로 전체 민간 부채의 절반가량이다. 부동산 빚은 2014년 이후 연간 100조원 이상 증가해 10년 만에 2배 이상으로 부풀어 오른 상태다. 일반적으로 금융회사의 대출이 부동산과 같은 생산성 낮은 부문에 집중될 경우 경제의 중장기 성장 동력이 떨어진다. 만약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하락할 경우에는 담보 가치가 하락하고 연체율은 오르며, 국가 경제의 건전성마저 망가진다.

한국의 이런 상황과 관련해 '빚으로 지은 집(House of Debt)'의 저자이자 세계적인 거시경제학자인 아티프 미안(Atif Mian) 미국 프린스턴대 경제학과 석좌교수도 “가계부채 급증이 당장 금융위기로 이어지진 않더라도 소비를 제약해 경제성장을 둔화시키는 건 확실하다”고 짚었다. 이어 “결국 부채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국 부동산 기업 에버그란데(헝다그룹) 파산처럼 부동산 관련 위기가 터지고, 성장의 발목을 잡힐 수 있다”면서 “한국도 이미 그런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집값이 폭락하면 빚을 낸 사람일수록 더 큰 타격을 입고 소비를 급격히 줄이는데, 이는 결국 나라 경제 전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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