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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담대 신규대출 속도 작년 5∼6월 수준 고가주택 은행대출 비중도↑ 과잉대출·대출규제 위회 사례여부 점검 착수

금리 하락 기대와 새 정부 출범에 따른 자산가격 상승 기대감이 겹치면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열기가 재점화되고 있다. 특히 고가 주택을 중심으로 대출 증가 속도가 가팔라지며, 하반기에도 가계대출 급증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금융당국은 전 은행권을 긴급 소집해 ‘대출 조이기’를 주문하고 나섰다.
5대 은행 가계대출 2조원 ‘껑충’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이달 12일 기준 750조792억원으로, 5월 말(748조812억원)보다 1조9,980억원 증가했다. 하루 평균으로는 1,665억원씩 늘어난 셈으로, 이는 작년 9월 이후 최대 수준이다. 가계대출은 지난해 8월 9조6259억원 증가하며 정점을 찍은 후 당국의 규제 강화로 감소세를 보였지만, 올해 2월부터 다시 상승세로 전환했다. 2월 3조931억원, 3월 1조7,992억원, 4월 4조5,337억원, 5월에는 4조9,964억원으로 증가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 포함)은 이달 들어서만 1조4,799억원 늘어난 595조1,415억원을 기록했고, 신용대출도 6,002억원 늘어난 103조9,147억원에 달했다. 특히 신용대출은 하루 평균 500억원 증가하며 전달(265억원)의 두 배 수준으로 뛰었다. 가계대출의 선행 지표인 대출 신청 규모도 급증하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주담대 신청 건수는 1월 4,888건에서 5월 7,495건으로, 금액은 1조1,581억원에서 1조7,830억원으로 약 50% 증가했다. 이달 12일까지도 이미 4,281건(8,261억원)이 접수돼, 이 같은 추세가 지속될 경우 하반기 대출 집행도 급증할 가능성이 높다.
은행 관계자들은 고객 상담 과정에서 하반기 금리 인하 기대와 함께 주택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주택시장 과열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주(9일 기준)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26% 올라, 지난해 8월 이후 가장 높은 주간 상승률을 기록했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는 물론, 마용성(마포·용산·성동)과 경기 과천·분당 등으로 상승세가 번지고 있다.
금융당국, 전 금융권 소집해 ‘대출조이기’
이에 금융당국도 긴급 대응에 나섰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16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본원에서 5대 은행 가계대출 담당 부행장을 대상으로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과도한 대출 증가와 부동산 과열을 진단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투기 수요나 규제 우회 시도 등으로 시장 질서가 훼손되거나 실수요자 자금이 위축돼선 안 된다”며 “은행들에 책임 있는 대출 관리를 주문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미 금감원은 최근 가계대출 증가 폭이 컸던 NH농협은행과 SC제일은행 등을 대상으로 현장 점검에 착수했으며, 추가로 세부 대출관리 계획 제출도 요구한 상태다. 또 당국은 은행별로 월별·분기별 관리목표 준수를 모니터링하고, 가계대출 증가 속도가 높은 은행에 대해선 관리방안 협의 등 구체적인 조치를 취할 방침이다.
아울러 최근 가계대출 증가세가 다소 확대된 제2금융권도 업권별 협회 등을 중심으로 대출 관행과 대출 추이 등을 면밀히 관리해 나갈 예정이다. 전세대출 보증 축소, 3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시행 등도 차질 없이 이행해 나갈 계획이다. 이어 보금자리론 지원 확대 등을 적극 검토하고, 서민·취약계층을 위한 서민금융 공급 확대 등도 추진해 나갈 방침이다.
이번 부동산 과열의 배경에는 금리 하락 기대, 공급 부족, 그리고 새 정부 출범 후 “세금으로 집값을 누르지 않겠다”는 시그널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도 지난 12일 기획재정부, 국토교통부,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참여하는 ‘부동산시장 점검 태스크포스(TF)’ 회의를 열고, “서울 부동산 시장이 엄중하다”며 전 부처가 가용한 정책 수단을 총동원해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임의경매행 부동산 증가 우려
문제는 이번 대출 급증이 단기적 수요에 그치지 않고, 내년 이후의 주택 경매시장 충격과 은행권 부실 리스크로 되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가 부동산 시장의 수요를 억제해 거래량 감소와 가격 하락을 초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 및 수도권은 중저가 아파트 중심으로 가격 조정이 예상되며, 강남·서초 등 고가 아파트는 현금 부유층 수요로 하락폭이 제한될 가능성이 있다.
지방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2024년 10월 지방 아파트 매물이 전년 대비 13.8% 증가하며 미분양이 급증했다. 이 같은 상황 속 대출 규제 강화는 매수 심리를 더욱 위축시켜 가격 하락을 가속화할 수 있다. 금융당국은 지방 건설경기 침체를 고려해 수도권(1.5%)과 지방(완화된 금리) 간 차등 적용 또는 시행 유예를 검토 중이나, 그 효과에는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이런 가운데 시장에서는 7월 시행 전 대출 규제 완화 기대감으로 6월 거래량이 일시적으로 증가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그러나 3단계 시행 후 대출 한도 감소로 자금 유동성이 악화되면 거래량이 급감하며 시장이 '개점휴업'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앞서 2024년 대출 급증으로 부동산 투자에 나섰던 영끌족이 자금 조달 어려움으로 매물을 내놓을 가능성도 크다. 이는 매물 증가와 가격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시장 일각에서는 가격 하락에 따른 영끌족들의 이자 비용 부담으로 내년부터 임의경매 건수가 크게 늘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임의경매는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린 채무자가 원금이나 이자를 석 달 이상 갚지 못했을 때 채권자가 대출금 회수를 위해 부동산을 경매에 넘기는 절차를 의미한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에 임의경매는 매년 급증 추세다. 저금리 시기인 2021년 6만6,248건, 2022년 6만5,586건이던 임의경매는 지난해 10만5,614건으로 전년보다 61% 늘었다. 당분간 부동산 시장이 다시 활성화할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4월 전국주택가격 동향조사'에서 전국 주택 매매가격지수는 0.02% 하락해 전월(0.01%) 대비 하락 전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