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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공공 부채, GDP의 154% 재정 적자 해소 위한 긴축이 투자 부족으로 GDP 축소가 부채 비율 늘리는 ‘악순환’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그리스의 공공 부채 규모가 국내총생산(GDP)의 153.6%에 이르며 유럽연합(EU)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이렇게 되자 부채 위기는 예산상의 제약을 넘어 경제적 마비를 부르고 있다. 그리스의 모든 지출 결정은 유권자가 아닌 채권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사회 기반 시설과 혁신, 기후 문제 해결을 위한 투자가 시장 신뢰 유지를 위한 긴축에 자리를 내주고 침체의 악순환이 바닥을 향하고 있다.

그리스 공공 부채, EU 최고 수준
전통 경제학에 따르면 정부는 공공 부채 상환의 방법을 선택할 수 있다. 고통이 따르는 단기 상환과 경제 여건을 고려한 장기 상환이 그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시장의 압력 때문에 선택권이 사라진다. 그리스의 10년 만기 채권 수익률은 신용 등급 상승 후에도 3.3%로 여전히 높은데 이는 성장 가능성에 대한 멈추지 않는 의심을 입증한다.
높은 차입비용은 정부로 하여금 대규모 기본 재정 흑자(primary budget surpluses, 이자 비용을 제외한 재정 흑자)를 지향하게 하는데, 이는 경제 활동을 억누르고 GDP 성장을 제한해 오히려 부채 비율을 높이는 결과로 작용한다.
이탈리아가 대표적인 사례인데, 1980년대 이후 지속적인 기본 재정 흑자를 기록했음에도 공공 부채가 급증하고 생산성 증가는 경쟁국에 뒤처지는 결과를 기록한 바 있다. 즉 부채 수준이 이미 높으면 재정 건전성(fiscal prudence)만으로는 시장을 설득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만연한 투자 부족을 불러, 부채 규모가 크면 기술 수준에서 뒤처지는 ‘유럽 내 이중 구조’(two-speed Europe)를 고착화하게 된다.

주: 공공 부채, 기본 재정 흑자, 생산성 증가(좌측부터), 이탈리아(청색 선), 선진국 평균(적색 선)
투자 부족과 두뇌 유출 ‘만성화’
그리스의 투자 가뭄은 공공과 민간 부문을 가리지 않는다. 작년 그리스의 공공 투자는 GDP의 2%로 유로존 평균인 3%에 한참 못 미치며 민간 부문 역시 2010년 이후 총 자본 형성(total capital formation, 특정 기간 획득하거나 창출한 신규 자산의 총 가치)이 GDP의 13%로 유럽 평균을 크게 밑돈다.
경기 침체가 만성화되는 것은 당연하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2010~2014년 기간 그리스의 긴축 정책이 2015년까지 GDP의 1/4을 지워버렸다고 추산한다. 이는 현재 그리스 부채의 두 배에 해당하는 규모다.
비용은 유로로만 계산되지 않는다. 많은 교육받은 그리스 청년이 이민을 택하고 있다. 2022년에만 33,000명이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독일 등으로 떠났다. 청년층을 포함한 그리스의 공식 실업률이 개선된 것은 일자리 창출 때문이 아닌 인구 감소에 더 큰 원인이 있다. 그리스 인구는 2050년에 900만 명 이하로 줄어 경기에 상관없이 GDP가 축소될 것으로 예상된다. 일자리 감소, 해외 이민 증가, 세수 감소, 재정 지출 축소, 이민 증가가 반복되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주: 공공 부채(좌측), 3년 기간(X축), GDP 대비 비중(%)(Y축) / 생산성 증가(중앙), 3년 기간(X축), 연간 증가율(%)(Y축) / 기본 재정 흑자(우측), 3년 기간(X축), GDP 대비 비중(%)(Y축), *적색 선은 재정 위기로 인해 경기 침체에 빠진 국가들의 패턴, 청색 선은 경기 침체를 벗어난 국가들의 패턴
‘재정 흑자’ 집착 버리고 성장에 집중해야
그리스의 사례는 독일과 견주어 보면 더 큰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독일은 올해부터 전통적인 재정 지출 제한을 풀고 기반 시설과 국방 관련 지출을 늘리고 있다. 시장의 반발에도 투자자들은 독일의 회복력을 신뢰하고 있다. 하지만 부채의 덫에 걸린 그리스는 비슷한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EU가 앞장서 거론하는 국방 예산 예외(defense fiscal holiday, EU 예산 한도 이상으로 국방 지출을 늘릴 수 있도록 일시적으로 면제)도 그리스에는 적용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악순환을 깨기 위해 그리스는 재정 정책을 경기 순환에 맞출 필요가 있다. 기본 재정 흑자 목표를 성장 지표에 연동해 실질 GDP 성장률이 2%를 넘었을 경우에만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부채를 지속 가능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투자를 우선순위에 올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U 지원 없이는 ‘회복 어려워’
규제 완화가 무책임한 재정 정책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이는 EU 차원의 구조적 도움을 통해 해소될 수 있다. EU 기구들의 공동 출자를 통해 투자 부족을 겪고 있는 국가들에 조건부 보조금을 제공하는 것이다. EU 수준의 차입 비용만 적용해도 납세자들의 부담을 덜고 수혜국 정부에 재정 개혁을 요구할 수 있다. 그리스로서는 올해까지의 재융자(refinancing) 규모를 절반으로 줄이면서 경제 성장을 촉진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스의 사례는 공공 부채 관리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 어떻게 투자와 혁신, 인적자본을 포함한 성장 동력을 마비시킬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EU의 재정 정책이 성장을 지원하지 않고 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만 기능한다면 부채에 허덕이는 회원국을 영원한 경기 침체에 가두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성장 지향의 개혁을 지원하고 투자 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시스템만이 해법을 제시할 수 있다.
원문의 저자는 루카 포르나로(Luca Fornaro) 바르셀로나 경제대학(Barcelona School Of Economics) 겸임 교수 외 1명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Fiscal stagnation | CEPR에 게재돼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