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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관세 조치에 한중일 협력 강화 ‘미 정부 압박’ 및 ‘3자 간 무역’ 통해 관세 회피 ‘자국 이익’이 우선하는 ‘미디어용 협력’
본 기사는 VoxEU–CEPR(경제정책연구센터)의 칼럼을 The Economy 편집팀이 재작성한 것입니다. 원문 분석을 참조해 해석과 논평을 추가했으며 본 기사에 제시된 견해는 VoxEU 및 CEPR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음을 밝힙니다.
지난 4월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의 "해방의 날"(Liberation Day) 관세 발표는 전 세계 무역 양상을 뒤집고 공급망을 흔들고 있다. 그리고 한국과 중국, 일본의 관계를 조금은 더 가깝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과연 정말 그럴까?

트럼프 관세가 ‘동아시아 협력’ 강화?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부과한 10% 일괄 관세와 핵심 분야에 대한 145%의 관세는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를 한 달 만에 55% 줄이는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숫자 뒤에는 복잡한 현실이 자리하고 있는데 한중일 3국이 미국 관세에 대비한 모종의 연합을 통해 일부 비용을 미국 소비자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작년 한중일 3자 간 무역 규모는 9% 가까이 증가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증가분이 대부분 웨이퍼, 음극 분말(cathode powder) 등을 포함한 중간재에 몰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대부분 미국으로 향했다.
예를 들면 한국의 대일 반도체 수출이 갑자기 증가했는데 일본산 장비에 내장돼 미국으로 재수출되는 칩이 대부분이었다. 강력한 관세 대상인 중국산 흑연은 한국의 배터리 제조 시설로 보내진 후 한국 라벨을 달고 미국 전기차 공장에 도착했다. 모두 관세 부과를 피하려는 조치들로 실제 최대 50%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주: 3자 간 무역 규모(청색), 재수출 비중(하늘색)
이러한 재수출 물량을 빼면 동아시아 3국 간 수출 성장률은 3.3% 정도로 트럼프 관세로 인해 늘어난 미국 가구의 비용과 대략 일치한다. 줄여 말하면 관세는 각국의 우회 수단을 통해 목적성을 잃은 채 미국 소비자에게 부담을 준 셈이다.
‘보여주기 정상회담’ 통해 미국 압박
작년 5월 5년 만에 열린 3자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 중국, 일본의 지도자들이 모였다. 완벽하게 연출된 행사였지만 실제 정책상의 뚜렷한 성과는 별로 없었고 함께 사진 찍기와 인적 교류를 활성화하자는 모호한 약속이 중심을 이뤘다. 외교관들조차 정상회담이 진지한 의사결정보다는 PR 목적의 행사였다고 인정했다. 대만 관련 갈등이나 북한 같은 이슈는 의제에 오르지도 않았다.
회담이 끝나고도 각국 정부는 각자의 이익에 맞게 회담의 성과를 각색했다. 중국은 미국의 경제 압박에 대한 동아시아의 일치된 대응이라고 했고 일본은 ‘신뢰 구축’이라고 표현했는데 심각한 얘기는 하지 말자는 뜻이었다. 한국은 회담의 의미를 미국의 정책적 양보를 얻기 위한 ‘보여주기 행사’(camera-oriented strategy) 정도로 설명했다.
실제로도 3자 회담을 위한 제도적 중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사무국이라든가 분쟁 조절 기구라든가 공동 기금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2008년 이후 실제 3국 간 정상회담을 분석해 봐도 정부 간 오간 수많은 약속 중 실행으로 연결된 것은 15%를 넘지 못한다.

주: 약속된 의제(청색), 실행된 의제(하늘색)
‘라벨 바꿔 달고 사진찍기 정상회담’, 달라진 무역 양상
그런데 재미있게도 미국은 동아시아 국가들의 전략에 넘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4월 관세 인상 발표 이후 진행된 산업별 예외 협상에서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 부품을 인정해 준 것이다. 시장은 미국 정부가 압력에 굴복한 것으로 해석했다. 심지어 연준(Fed) 관료조차도 관세 조치가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인정해, 해당 조치가 정책 목적이 아닌 정치적 필요성 때문임을 암시하기도 했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미국의 모습에 힘을 얻었다. 단합을 연출하는 것으로만 미국의 양보를 얻어냈으니 말이다. 적대국들 사이를 이간질하라는 헨리 키신저(Henry Kissinger)의 냉전 시대 전략을 동아시아 국가들이 반대로 이용한 셈이다.
동아시아의 협력이 시늉인 것은 이들이 실제 전략적 자산이 걸린 문제에서 보인 행동을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관세 선언에 대한 중국의 대응은 희귀 광물 수출품에 대한 수출 허가를 새로 발급하겠다는 것이었는데, 한국에는 아무도 모르게 급행 허가를 주고 해당 광물이 한국 라벨을 달고 재수출되도록 했다. 하지만 일본은 희귀 광물 취득을 위해 호주에 20억 달러(약 2조7천억원)를 투자해야 했다. 지역 협력보다 각자의 이익이 우선함을 선명하게 보여준 장면이다.
동아시아의 보여주기 전략이 얼마나 유효한가를 보여주는 분석도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한중일 정상회담 한 번으로 8억 달러(약 1조890억원)에 해당하는 미국의 관세 양보를 얻어내고 있다고 한다. 또 UN 보고서에 따르면 1970년 이후 무역 변동성이 최고조에 달한 현재 시점에서 동아시아가 글로벌 무역 경로 변경의 절반 가까이를 담당하고 있기도 하다.
라벨 바꿔 달기와 미디어 보여주기가 주요한 전략이 되는 무역 양상의 변화를 실감하게 한다.
원문의 저자는 밍 가오(Ming Gao) 룬드 대학교(Lund University) 연구원입니다. 영어 원문 기사는 Trump’s return drives closer cooperation in East Asia | EAST ASIA FORUM에 게재돼 있습니다.